"분쟁, 1심재판에서 한 번에 해소해야"
"분쟁, 1심재판에서 한 번에 해소해야"
  • 기사출고 2016.01.06 08: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양승태 대법원장 2016년 시무식사
◇대법원이 1월 4일 2016년 한 해를 여는 시무식을 갖고 힘찬 출발을 다짐했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친애하는 전국의 법원 가족 여러분!

2016년 새해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여 법원 가족 여러분이 각자 소망하는 바를 모두 이루시고, 여러분의 가정에도 언제나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먼저, 끊임없이 밀려오는 사건의 홍수 속에서도, 늘 자신의 직무에 최선을 다하는 법원 가족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세계 유수의 국제기구가 우리 형사 재판절차의 효율성과 신속성, 그리고 상사 분쟁 해결 능력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은 바로 여러분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만족할 것이 아니라, 사법절차가 이와 같이 우수하게 운영되고 있음을 국민들로 하여금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하여 우리의 진정한 마음을 국민의 가슴에 온전히 전달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아무리 사법절차가 우수하다고 하더라도, 국민의 신뢰가 쌓이지 않고 우리가 들인 모든 노력과 정성도 빛이 바래게 됩니다. 이 점에서 행동경제학을 연구하여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니얼 카너먼 교수가 한, "인간의 경제적 의사결정은 합리적 이성보다는 감정에 좌우된다"라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말은 '차가운 머리는 따뜻한 가슴을 이길 수 없다.'는 표현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즉,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 직감적으로 느껴지는 법원의 모습이 사람들의 감성을 울릴 때, 법원의 재판으로 사회정의가 구현되고 있다는 생각이 사람들의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을 때 비로소 법원에 대한 믿음이 확고해질 수 있습니다. 새해는 그동안 우리가 해왔던 다양한 소통의 과정이 과연 국민의 눈높이에 부합하는 것이었는지, 우리의 진정성이 국민에게 얼마나 효과적으로 전해졌는지 등을 차분히 되짚어 봄으로써, 국민에게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는 방안을 재점검하는 내실 있는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법원 가족 여러분!

다양성을 특징으로 하는 현대 민주사회에서 가치관 사이의 갈등이 증가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갈등을 자율적으로 해소하는 대화와 타협의 문화가 성숙되지 못한 우리 사회에서 많은 대립관계가 조금의 양보도 없이 격렬한 분쟁으로 이어져 법원의 문턱을 넘어오고 있습니다. 실타래처럼 엉켜 극심하게 다투는 분쟁을 슬기롭게 해결함으로써 법의 지배 아래 사회통합과 평화를 이루는 것은 사법부에 부여된 새로운 중요한 책무입니다. 또한 각종 기술과 기법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삶의 방식과 가치관이 급격히 변화함에 따라, 과거에 보지 못했거나 그리 위험시되지 않았던 범죄가 개인과 사회 전체에 대한 위험 요소로 부각되기도 합니다. 이에 따라 많은 국민들은 기본권을 보장하는 최후의 보루인 사법부가 공정하면서도 엄정한 재판을 통해 국민들의 평온한 일상과 행복을 지켜주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법부는 법치주의의 수호자로서 그 원칙을 준수하는 가운데, 과거에 경험해보지 못했던 사건을 슬기롭게 해결하기 위하여 법령을 해석하고 적용함에 있어 국민 의식과 사회가 변화하는 흐름을 감지할 수 있는 세심한 감수성과 혜안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결코 기계적으로 법을 적용하는 메마른 법률가가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사법부에 요구되는 특별한 헌법적 사명을 분명히 인식하고 국민의 기대에 귀를 기울이는 적극적인 자세와 따뜻한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 다시 한 번 우리의 임무를 돌아보며,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이를 완수하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것으로 한 해를 시작하여야 할 것입니다.

사법부 구성원 여러분!

사법부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재판에 의해 분쟁을 해소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재판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는 것은 사법부가 맡은 바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는지 여부를 결정짓는 우리의 핵심 과제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당사자의 절차적 권리를 충실히 보장하며 법과 원칙에 따른 합리적인 결론으로 분쟁을 1회적으로 해결하는 재판이 가장 바람직한 재판이라는 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특히 심급제도에 관하여 인식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분쟁의 1회적 해결을 위해 가장 역점을 두어야 할 부분은 제1심의 재판일 것입니다. 이를 위해 사법부는 그동안 인적 · 물적 자원을 제1심에 집중하면서 사실심의 강화와 1심 충실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해왔습니다. 제1심이 충실한 심리를 통해 강화됨을 전제로 항소심의 역할에 대하여도 성찰이 있어야 합니다. 항소심은 '두 번째의 1심'이 아닙니다. 항소심의 사건은 이미 법관에 의해 한 단계의 사법적 판단을 거친 사건이라는 점을 무겁게 생각해야 합니다. 대법원은 이미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하여 '제1심과 비교하여 양형의 조건에 변화가 없고 제1심의 양형이 재량의 합리적인 범위를 벗어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이를 존중함이 타당하며, 제1심의 형량이 재량의 합리적인 범위 내에 속함에도 항소심의 견해와 다소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제1심판결을 파기하여 제1심과 별로 차이 없는 형을 선고하는 것은 자제함이 바람직하다'고 판시함으로써 그러한 취지를 밝힌 바 있습니다. 심급제도가 그저 같은 사건의 재판을 되풀이하는 절차로 잘못 운용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제1심 법관은 충분한 심리와 숙고를 거쳐 최종심 법관의 마음으로 최선의 결론을 내리고, 상급심의 법관은 심급제도의 역할을 십분 이해하여 그 한계를 지킴으로써 한 번 내려진 사법적 판단은 좀처럼 변경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널리 퍼질 때 재판의 권위와 신뢰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존경하는 법원 가족 여러분!

우리 사회의 급속한 변화와 더불어 법조일원화의 시행, 평생법관제와 같이 법원 내부에도 변화의 물결이 크게 일고 사법부 규모가 계속 확대되면서 사법부 구성원의 경력, 연령, 성별, 의식구조 등이 전례 없이 다양화되고 있고, 이로 인해 종래 사법부 내에서 자연스럽게 여겨지던 관행이나 행동 양식, 조직문화가 그대로 유지될 수 없는 새로운 환경이 조성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직시하고 그에 적응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 슬기롭게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무엇보다도, 법원 구성원 상호간의 활발하고 격의 없는 소통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협력하는 조직문화를 형성함으로써 사법부 내부의 다양성이 마찰이나 갈등이 아니라 오히려 재판 역량을 배가시키는 요소가 되게 하여야 할 것입니다. 사법행정에 대해서도 법원 구성원의 다양한 의견을 빠짐없이 수렴하고 적극적인 참여의식을 유도하여 사법부의 일원으로서 소속감과 일체감 그리고 자부심을 고양하여야 할 것입니다. 인사운영의 기초가 달라진 상황에서 사무분담이나 보직과 같은 인사제도도 종래의 방식을 탈피하여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면서도 효율적인 새로운 인사운영 체제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단순한 삶이 아니라 '삶의 질'에 큰 가치를 두는 오늘날, 사법부 구성원의 건강을 유지하고 심신의 휴식과 재충전의 기회를 마련하기 위한 여러 가지 복지제도의 확충도 절실한 시점입니다. 이러한 과제는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지만, 우리가 정확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힘을 합하여 차근차근 노력해 간다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새해는 우리 모두가 넓은 마음과 전향적인 자세로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 질서의 사법부를 세우는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법원 가족 여러분!

2016년에도 사법부의 목표를 향해 우리 모두 자신감과 자긍심을 가지고 한 걸음씩 함께 걸어 나갑시다. 그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서로의 손을 마주잡고 진심 어린 소통과 교류를 통해 공감대를 넓혀 나갑시다. 우리가 사법부 구성원으로서의 책임감과 사명의식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할 때, 희망찬 미래를 열어 국민의 사랑과 신뢰를 듬뿍 받는 사법부로 거듭날 수 있으리라고 굳게 믿습니다.

다시 한 번 지난 해 여러분이 보여준 헌신과 노고에 깊이 감사드리며, 새해에도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기쁨과 행운이 늘 함께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2016. 1. 4.

대법원장 양승태

Copyrightⓒ리걸타임즈(www.legaltimes.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