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장은 전현직 대법관 중에서"
"대법원장은 전현직 대법관 중에서"
  • 기사출고 2005.08.02 17:3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중앙지법 모 부장판사의 A4 18매 분량 글 요약 소개"평판사 출신 외부인 임명하면 패닉상태 일어날 수 있어"
9월24일 임기가 만료되는 최종영 대법원장의 후임 지명을 앞두고 시민사회단체와 변호사단체 등 여러 곳에서 의견 표명이 나오고 있다.

특히 민변, 민주노총, 녹색연합, 인권운동사랑방, 참여연대 등 14개 시민사회단체가 지난 27일 공동입장문을 발표, "대법관을 지내지 않은 재야변호사중에서 새 대법원장을 물색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 가운데, 한 중견 법관이 이와는 정반대로 "대법원장은 전, 현직 대법관 중에서 나와야 한다"는 장문의 글을 내놓아 법조 안팎에 화제가 되고 있다.

"대법원장은 전현직 대법관 중에서"라는 제목으로 A4 용지 18매의 분량으로 된 서울중앙지법 모 부장판사의 글을 입수, 주요 내용을 요약해 소개한다.



대법원장이 되기 위하여는 민사 · 형사 · 가사 · 행정 재판에 관한 체계적이고 깊은 전문지식이 있고 정의와 공정, 사법권 독립, 소수파 보호에 대한 확고한 신념, 권위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적절한 경력과 경륜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대법원장은 돈(예산)도 적고 칼(경찰 등의 물리력)도 약하며, 오직 권위로 직무를 수행하는 데, 그런 권위를 갖추기 위하여 적절한 직업적 경력이 필요하고, 이는 선진국에서도 꼭 요구되고 있다.

대통령 · 대법원장 · 국회의장이 3권분립을 이루는 행정부 · 사법부 · 입법부의 각 수장이고, 대법원장과 국회의장의 연봉에 1원의 차이도 없다. 대법원장은 행정부 2인자인 국무총리보다 어느모로 보나 격이 높다. 대법원장을 장관급으로 생각하는 큰 잘못 때문에 대법원장 후보로 평판사 출신 또는 40대 연령을 거론하는 것이다.

작년에 국회의장을 6선 의원에서, 국회 부의장을 5선 의원에서 선정하니까 논란이 없었다. 금년 제헌절 5부 수장(3부 수장과 헌법재판소장과 중앙선거관리위원장) 만찬때 대통령이 "나중에 국회의장에 도전해 봐야겠다"고 하여 국회의장이 "대통령은 선수(選數)가 모자라지 않느냐"고 하자 대통령이 "벌써 나도 (국회의원) 재선이다. 세번만 더 하면 5선이 된다"고 하였다는 점에 비춰 국회의장이 되기 위한 경력으로 국회의원 5선 정도는 필요하다는 점을 대통령도 공감하고 있는 것 같다.

대법원장이 되기 위하여는 법관으로서의 많은 경력이 필요하며, 전현직 대법관 중에서 임명하는 것이 순리이다.

대법원장은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재판장이므로 대법관 경력 없는 사람을 곧바로 대법원장으로 임명하는 것은 배석판사와 단독판사 경력없는 변호사를 곧바로 합의부 부장판사로 임명하는 것과 같아 지나치다.

박주영 선수를 축구 청소년대표로부터 국가대표로 이른 나이에 발탁하기는 하여도 국가대표로 발탁함과 동시에 주장을 맡기지는 않는다. 대법원장은 법관 국가대표인 대법원의 주장만 아니라 감독과 선수선발위원장까지도 겸하고 있다고 할 수 있으므로 대법관 경력 없는 사람을 곧바로 대법원장으로 임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실력 · 경력에 비하여 과분한 지위에 있기 때문에 오히려 힘을 쓰지 못하고 괴로운 것을 일본에서는 구라이마케라고 한다. 실력 · 경력에 비하여 과분하게 대법원장으로 되면 2000여명의 법관들로부터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구라이마케될 가능성이 높다.

평판사 출신이 내면적으로 대법관 이상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외형상의 경력 때문에 2000여명의 법관들에게 사법행정상의 영이 서기 어렵고 말이 위엄을 갖추기 어렵다.

대법관 중의 상당수는 변호사, 검사, 교수로부터 임명할 수 있지만, 공직을 떠나 변호사 수십년 한 사람을 곧바로 대법원장으로 임명하는 것은 지나치다.

인권운동하신 분을 대법관으로 임명하는 것에 대하여는 뭐라고 말하기가 곤란하지만, 대법관 정년(65세)이 지났으니 아예 곧바로 대법원장(정년 70세)으로 임명하겠다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대륙법계 국가에서 피라밋 구조의 직업법관들의 정점인 대법원장을 변호사 또는 하급심 판사 10년 미만 한 사람에서 임명하는 예는 없다. 후보로 거론도 안된다.

일본의 대법원장은 대법원 판사, 그중에서도 직업 법관 출신에서 선임한다.

법조일원화 국가인 미국에서조차도 고위법관이 되기 위하여는 적절한 직업적 경력을 필요로 한다.

현재의 Renquist 대법원장의 후임으로는 현직 연방 대법관들인 Scalia(연방 대법관 19년 경력)와 Thomas(연방 대법관 14년 경력)만 후보로 거론되고 있지, 주지방법원 판사 몇 년 해본 정도로는 연방대법원장 후보로 명함도 못 내민다.

영국의 고위 법관은 고위직에 상응한 경력을 미국보다 더 필요로 한다.

영국의 대법원장은 "법조계에서 가장 신분이 높고 명망이 있어야 한다"는 이유로 고위공직을 거쳤고 판사들과 변호사들 양쪽의 신망을 얻고 있는 인물이 임명되고 있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장은 내부의 연방헌법재판소 재판관 중에서 선임되지 외부인이 곧바로 소장으로 선임되는 일이 거의 없다.

교수, 변호사, 검사가 대법관으로 되어 능력과 실적을 보이고 나이도 어느 정도 된 후 대법원장으로 되는 것은 수용할 수 있다.

수십년간 개업변호사를 한 사람이 민변 회장을 지냈다는 이유로 곧바로 대법원장으로 되는 것은 아무리 열린 마음으로 생각하여 보아도 곤란하다.

"대법관 출신이 대법원장으로 임명되면 그가 쌓아온 인맥이나 배경으로 미루어 다시 6년간 사법개혁이 지지부진해 질 우려가 있으니 법조 경력 15년 이상에 해당하는 인물중에서 폭넓게 적임자를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이 주장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

현 최종영 대법원장이 대법관 출신인데 사법개혁위원회를 만들어 적극적 · 능동적으로 사법개혁안을 만들어 낸 것이 그 명백한 증거이다.

오히려 사법개혁은 대법관 출신 대법원장이 법관들의 반발을 무마하고 설득하여 법관들의 기득권을 포기시키고 확실하게 추진할 수 있고, 변호사 출신은 법관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어렵고 변호사들의 입장도 생각해야 하므로 강력하게 추진하기 어렵다.

'국민의 사법부'가 아닌 '당신들만의 사법부'로 지내왔기 때문에 대법원장부터 외부인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사법부가 스스로 법관의 절반을 변호사중에서 임관시키기로 하고, 대법관의 상당수를 외부로부터 받아들일 것으로 예상되고, 배심제 · 참심제를 혼합하여 도입하기로 하였는데, '당신들만의 사법부'는 옳지 않다.

대통령 선거에 큰 공을 세우면 다른 고위 공직(청와대, 국회, 총리실, 국정원, 감사원, 정부투자기관)에는 다 진출하였는데도 사법부에는 진출하지 못한 것 때문에 '당신들만의 사법부'라고 한다면 그런 의미에서의 '당신들만의 사법부'는 유지되어야 한다.

대법원장을 외부인으로 임명하지 않으면 사법부가 서열주의 인사를 하니까 외부수혈을 하여야 하는가? 이제까지의 대법원 인사가 서열주의가 아니다. 치열하고 공정한 경쟁을 통하여 소수만이 고법 부장판사의 보직을 받게 되고, 적임자를 대법관으로 발탁하다 보니 세 기수만에 대법관이 나오기도 하고, 한 기수에서 대법관이 4명 나오기도 하는 인사가 어찌 서열주의 인사인가?

이종교배 우월론을 적용할 수 있는 분야와 없는 분야가 있고 적용할 수 있는 정도에 차이가 있다. 대법원장 자리는 법무부장관이나 외교통상부장관보다 이종교배를 더욱 피하여야 할 자리이다. 첫째 사법권 독립 때문에 그렇고, 둘째 대법원장은 장관이나 정치인이 아니라 그 자신이 법관이기 때문이다. 법무부장관은 검사가 아니다.

해방 이래 전현직 대법관 이외의 사람이 대법원장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된 일이 없었다.

정부 · 여당이 검찰을 개혁대상으로 생각하면서 검찰총장 후보 2명 모두를 고검장급에서 공표하고 그 후보들중에서 총장을 임명하였는데 왜 평검사 출신이나 검사 경력 없는 사람은 아예 후보로도 삼지 않았을까?

사법부로부터 사형확정판결을 받았던 김대중 대통령도, 깜짝 인사를 즐긴 김영삼 대통령도 모두 대법원장은 예측가능하게 대법관중에서 임명했다.

일부 언론이나 일부 시민단체가 대법관 전원을 보수주의적 사법소극주의자라고 비난하면서 그러니까 갈아치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비학문적, 욕설 수준이며 사실관계도 왜곡하고 있다.

대법원을 보수적이고 사법소극주의라고 할 수 없다.

대법원은 행정부를 통제하는 측면에서 강력한 사법적극주의이고, 기존 판례에 대한 관계에서 상당히 사법적극주의이며, 법률의 문언을 넘는 해석의 측면에서 사법적극주의이다.

헌법재판소도 여러 면에서 사법적극주의이다.

우리 대법원은 정부의 경제개입에 우호적이라는 점에서 진보적이고 개인의 자유와 평등의 보호라는 측면에서 보수와 진보가 혼재하고 있으며, 의료사건 · 환경사건 · 인터넷사건 등 현대형 분쟁에 있어서는 대단히 진보적이어서 서구의 판례를 앞서가고 있다.

전현직 대법관들의 이념성향이 결코 같지 않고 상당한 차이가 있으니 그 중에서 대통령 마음에 드는 쪽으로 선택할 수 있다.

민변 회장 출신을 대법원장으로 임명하여 보수 성향의 판사들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것을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차기 대통령이 헌변 회장 출신을 대법원장으로 임명하여 진보 성향의 판사들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것도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둘 다 안된다. 대법원장은 진보와 보수 어느 극단에도 속하지 않는 인물이 바람직하다. 대법관의 일부로 매우 진보적인 인물과 매우 보수적인 인물을 임명할 수는 있지만, 대법원장은 그렇지 않다.

사법부는 혁명기에 구성된 경우가 아닌 한 본질적으로 어느 정도 보수적인 경향이 있다. 사법부를 수구꼴통으로 생각하거나 대법원장을 외부에서 임명하지 않으면 절대 변화하지 않을 집단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때그때 정권에 코드를 맞추는 법관인사와 판결이 이루어지면 사법부는 정권의 시녀로 되고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는 사망한다. 우리나라 검사중에 정치인에게 자신의 인사 청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판사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나오고 혹시라도 그 인사청탁의 효과를 보게 되면 우리나라는 끝장이다.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에서 모두 이긴 쪽이 다수의 민의에 따라 사법부도 장악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주장은 위험한 발언이다. 위와같이 위험한 발언이 나올수록 사법권 독립을 확고하게 지킬 수 있는 인물로 대법원장을 임명해야 할 당위성이 더욱 커진다.

평판사 출신의 외부인(수십년 법관으로 근무하고 대법관 하다가 변호사 몇년 한 경우는 외부인으로 생각하지 않는다)을 대법원장으로 임명할 경우 많은 법관들(특히 대법관과 법원장과 고법 · 지법 부장판사 이상의 법관들)이 큰 당혹감, 자괴감, 반감을 느끼거나 허탈, 냉소에 빠질 것이다. 패닉상태가 일어날 수도 있고 임명반대 서명운동이 일어날 수도 있다.

전현직 대법관 중에서 대법원장을 임명하면 위와같은 문제들이 전혀 생기지 않는다.

임기가 대통령보다 길고 중립성과 안정성이 요구되는 대법원장의 임명은 파격적으로 실험해 볼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여러 자리가 있어서 그 중 한 자리는 실험해 볼 여지도 있다고 볼 수 있는 장관과 크게 다르다. 장관은 잘 못하면 수개월만에 바꿀 수 있지만 대법원장은 임기가 6년이다.

필자는 아무 정당 편도 아니다. 단지 전현직 대법관 중에서 대법원장을 임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을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