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비행 앞두고 술마신 조종사 비행정지 2개월 적법"
[노동] "비행 앞두고 술마신 조종사 비행정지 2개월 적법"
  • 기사출고 2015.06.02 17:1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행법] 아시아나항공 기장에 패소 판결"비행운영규정 개정 동의 안 받았어도 유효"
비행 출두시각(Show Up Time)으로부터 12시간 전엔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하는데 이를 어기고 술을 마신 후 비행기를 조종한 아시아나항공 조종사에 대한 2개월의 항공업무정지 처분은 정당하다는 판결이 나왔다. 'Show Up'이란 '운항승무원이 회사가 정한 장소 및 시간에 출두하였음'을 의미한다.

서울행정법원 제12부(재판장 이승한 부장판사)는 5월 28일 아시아나항공 기장인 A씨가 2개월의 항공업무정지가 부당하다며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소송(2014구합67086)에서 "징계는 적법하다"며 A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아시아나항공은 피고보조참가했다.

A씨는 2013년 9월 25일 부기장과 함께 김포공항을 출발하여 같은 날 오전 11시경 광주공항에 도착하였는데, 두 사람은 다음날 오전 6시40분까지 광주공항에 출두한 후 오전 7시30분 광주공항을 출발하여 김포공항에 도착하는 항공기를 조정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A씨는 9월 25일 광주공항에 도착하여 호텔에서 휴식을 취한 후 부기장과 함께 광주 시내 홍어집에서 막걸리 5병을 나눠 마신 후 호텔로 돌아가던 중 치킨집에 들러 바비큐치킨과 맥주 500cc씩을 시켜 마시고 오후 7시46분경 술값을 결제한 후 치킨집에서 나와 호텔로 복귀하였다.

다음날 아침 두 사람은 오전 6시40분 출두시간에 맞춰 광주공항에 도착한 후 6시50분경 국토교통부 소속 감독관으로부터 'PASS/FAIL 모드' 음주측정을 받았는데, A씨는 'PASS' 판정을 받았으나 부기장은 'FAIL' 판정을 받았다. 부기장에 대해 '수치 모드' 음주측정을 실시한 결과 혈중알코올농도가 0.01%로 나와 음주측정기를 교체한 후 두 사람을 상대로 다시 음주측정을 실시, 이번에는 두 사람 모두 'PASS' 판정을 받아 김포공항까지 비행임무를 수행하였다.

그러나 아시아나항공 안전운항팀에서 26일 오전 11시경 김포공항에 도착하여 비행임무를 마친 두 사람을 상대로 곧바로 사실관계를 조사해 A씨가 음주제한시간을 어겨 술을 마신 것으로 판단, 항공업무정지 2개월에 처하는 징계처분을 내렸다. A씨가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소송을 냈다.

아시아나항공은 항공종사자 등의 임무개시 전 음주제한시간을 '알코올 성분의 음료 복용 후 12시간 이내'로 설정한 비행운영규정을 운영하고 있으며, 24차 개정인 2012년 3월 23일 비행운영규정을 이같은 내용으로 개정할 당시 조종사 노동조합으로부터 동의를 받았으나, 소속 근로자들의 집단적 의사결정방법에 의한 동의는 받지 않았다.

재판부는 먼저 "비행운영규정 중 (음주제한시간에 관한) 이 사건 규정에 의하면, 항공종사자 등은 임무개시 12시간 전부터는 알코올 성분의 음료를 복용하는 것이 금지되고, 만일 이를 어기는 경우에는 회사 규정을 위반한 것이 되어 징계사유에 해당한다"며 "이 규정은 근로자에 대한 복무규율에 관한 사항을 담고 있다고 할 것이므로, 비행운영규정 가운데 적어도 이 부분은 그 명칭에 관계없이 근로기준법 소정의 취업규칙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항공종사자 등의 음주비행을 금지함으로써 항공기 안전운항과 승객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규정의 취지와 그로 인하여 침해되는 항공종사자 등의 법익 침해의 정도 등을 종합하면, 이 규정이 헌법상 과잉금지의 원칙에 반하여 국민의 사생활의 자유 또는 일반적 행동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는 위헌적인 규정이라고 볼 수 없다"고 지적하고, "비록 아시아나항공 소속 근로자들의 집단적 의사결정방법에 의한 동의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그 효력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항공기 안전운항과 승객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항공종사자 등의 음주비행을 엄격하게 단속하여야 할 필요가 절실한 점 ▲비행운영규정이 제정된 2006년 5월 15일부터 21차 개정(2011. 4. 21.) 전까지 음주제한시간은 줄곧 12시간이었고, 21차 개정시 잠시 음주제한시간이 8시간으로 단축되었으나, 이후 항공기 조종사의 음주비행이 사회문제화 되고 항공종사자 등에 대한 혈중알코올농도 단속기준치가 강화되면서 24차 개정(2012. 3. 23.)시 음주제한시간을 종전과 같이 12시간으로 정하게 된 점 ▲아시아나항공이 개정과정에서 조종사 노동조합의 동의를 받기까지 한 점 ▲국내 다른 항공사들도 대부분 비행임무 12시간 전부터 항공종사자 등의 알코올 섭취를 금지하고 있는 점 등을 종합하면, 이 사건 규정으로의 개정은 그에 의하여 근로자가 입게 될 불이익의 정도를 고려하더라도 여전히 이 규정의 규범성을 시인할 수 있을 정도로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는 게 재판부가 소속 근로자들의 집단적 의사결정방법에 의한 동의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효력을 인정한 이유다.

재판부는 이에 앞서 대법원 판결(99다70846, 2009다32362)을 인용,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새로운 취업규칙의 작성 · 변경을 통하여 근로자가 가지고 있는 기득의 권리나 이익을 박탈하여 불이익한 근로조건을 부과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아니하지만, 당해 취업규칙의 작성 또는 변경이 그 필요성 및 내용의 양면에서 보아 그에 의하여 근로자가 입게 될 불이익의 정도를 고려하더라도 여전히 당해 조항의 법적 규범성을 시인할 수 있을 정도로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종전 근로조건 또는 취업규칙의 적용을 받고 있던 근로자의 집단적 의사결정방법에 의한 동의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 적용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원고와 같은 항공기 기장의 경우 항공기에 탑승한 승객들의 생명, 신체에 대한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점, 원고와 부기장이 함께 마신 술의 양이 막걸리 5병, 맥주 1000cc로 적지 않은 점 등을 종합하면, 원고를 항공업무정지 2개월에 처한 징계처분이 징계재량권을 일탈하거나 남용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부기장은 항공업무정지 15일의 징계를 받았다.

김진원 기자(jwkim@legaltimes.co.kr)

Copyrightⓒ리걸타임즈(www.legaltimes.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