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첫 무죄 판결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첫 무죄 판결
  • 기사출고 2004.05.24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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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남부지법] "종교적 자유 아닌 양심의 자유에 근거"
입영통지서를 전달받고도 종교적인 이유로 입영을 거부한 이른바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해 법원이 처음으로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따라 이를 둘러싼 파장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이며, 상급심의 판단이 주목된다.

서울남부지법 이정렬 판사는 '여호와의 증인'의 신자로서 입영을 거부한 혐의로 기소된 정모(23 · 노동)씨에 대한 병역법 위반 사건(2002고단3940)에서 "피고인은 무죄"라고 판결했다.

이 판사는 또 같은 종교 신자로서 입영을 거부한 오모(21 · 무직)씨와 예비군 교육 훈련 소집 통지서를 전달받고도 훈련을 받지 않은 황모(32 · 교직원)씨에 대해서도 같은 이유로 각각 무죄를 선고했다.

이 판사는 그러나 같은 종교 신자로서 입영을 거부한 조모(23 · 무직)씨에 대해서는

"피고인이 이 종교를 신봉하고 있기는 하여도 진정한 양심상의 결정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기에 이른 것이라 볼 수 없다"며 검사는 징역 2년을 구형했으나 법정최고형인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이 판사는 판결문에서 "양심상의 결정을 이유로 한 병역 의무 거부는 양심을 지키는 자유의 내용을 이루는 작위 의무로부터의 해방과 양심 실현의 자유에 근거를 두고 있다"며 "병역법상의 입영 또는 소집을 거부하는 행위가 오직 양심상의 결정에 따른 것으로서 양심의 자유라는 헌법적 보호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한 경우에는 병역법 88조1항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된다"고 밝혔다.

병역법 88조1항은 "현역입영 또는 소집통지서(모집에 의한 입영통지서를 포함한다)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없이 입영 또는 소집기일부터 다음 각호의 기간이 경과하여도 입영하지 아니하거나 소집에 불응한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에 대해서는 그러나 서울남부지법이 2002년 1월29일 2002초기54호로 위헌제청 신청 결정을 하여 위헌법률심판절차가 헌법재판소에 계류돼 있다.



이 판사는 이어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은 한 해에 600명 안팎인 것으로 추산되고 있어 연간 징병인원의 0.2%에 불과하여 국가방위력에 미치는 정도가 미미할 뿐만 아니라 첨단 무기와 정보시스템이 주도하는 현대전에서 이같은 규모 정도의 징병원이 감소한다 하여도 그다지 문제되지 아니한다"며 "이들을 전쟁에 참가시킨다 하여도 이들로부터 최고의 전투력을 발휘할 수 없다 할 것이어서 전투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도 아니한다"고 덧붙였다.

이 판사는 또 "국가의 존재를 위해 군인이 꼭 필요하다 하여도 모든 국민이 군인이 될 필요는 없다"며 "독일, 영국, 프랑스 등과 같이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한 대체 복무제를 도입하고, 양심적 병역거부자로 인정될 수 있는 기준을 명확히 마련한다면 고의적인 병역기피자를 충분히 가려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판사는 "양심적 병역 거부에 관한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피고인과 같이 특정 종교상의 교리를 이유로 한 사람뿐만 아니라 종교상의 교리가 아닌 일반적인 양심에 따른 신념에 터잡아 병역을 거부하는 사람에게도 확대할 필요성이 있다"며 "따라서 이법원은 병역법상의 정당한 사유를 해석하기 위하여 양심의 자유를 규정한 헌법 19조만을 근거로 하였을뿐, 종교의 자유를 규정한 헌법 20조1항을 근거로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판사는 그러면서 "남은 문제는 과연 어떠한 기준을 들어 당해 병역 거부자를 진정한 양심상의 결정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는 사람으로 인정할 것인지 여부"라며 ▲일반적인 해명에 그칠 게 아니라 인격적인 양심적 결정 과정을 분명하게 밝혀야 하고 ▲병역을 거부하기로 하는 결정을 하게 된 특별한 사정을 설득력있게 설명해야 하며 ▲병역을 거부하기로 하는 결정을 한 이후 또는 그로부터 멀지 아니한 시간전에 병역 거부와 관련된 사회활동을 하였을 것 등의 기준을 제시했다.

피고인 정씨는 2002년 7월10일 서울 강서구의 자신의 집에서 같은 해 8월13일까지 육군 102보충대로 입영하라는 서울지방병무청장 명의의 입영통지서를 전달받고서도 정당한 사유없이 5일 이내에 입영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됐었다.



김진원 기자(jwkim@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