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6개월간 동거하다 딴 여자와 결혼…정조권 침해 아니다"
"1년6개월간 동거하다 딴 여자와 결혼…정조권 침해 아니다"
  • 기사출고 2005.06.25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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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지법] "혼인 의사 없어졌음에도 계속 동거 증거 없어"
1년6개월간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다가 다른 여자와 결혼한 남자를 상대로 30대 여성이 정조권 침해로 인한 손해배상소송을 냈으나 2심에서 패소했다.

사실상 혼인의 의사가 없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감추고 계속 성관계를 맺고 동거생활을 유지하였다는 등의 사정을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정조권 침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게 법원의 판단 이유다.

법원은 또 사실혼 관계 부당파기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에 대해선 판단하지 않았다.

청구원인이 아닌데다 사실혼 관계 부당파기에 따른 손해배상청구는 가사소송법상 가정법원의 전속관할로 일반 법원의 관할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원고는 실제로 이 사건 변론종결후 피고를 상대로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에 사실혼 파기로 인한 손해배상소송을 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5부(재판장 강현 부장판사)는 6월22일 A(여 · 31)가 B(34)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A에게 3000만원을 주라"고 한 1심을 깨고, A의 청구를 기각했다.

같은 회사에 근무하던 A와 B는 2001년 8월 서로에게 호감을 느껴 교제하게 되었는데, B는 A에게 "사랑한다. 너랑 결혼하고 싶다"고 말하며 성관계를 요구하였으나 A가 이를 거부하자 1개월 후 A의 집에서 B가 다시 '결혼하면 평생 남편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겠다'는 취지의 각서를 작성해주며 적극적으로 접근, 성관계를 맺고 그후 A의 집에서 동거에 들어갔다.

두사람은 부부처럼 생활하게 되었는데 동거생활에 필요한 음식 장만, 청소, 세탁 등의 가사업무와 관련된 비용은 모두 A가 부담하고 B는 외식비 등을 지불하는 외에는 별도로 생활비를 내놓지 않았다.

그러나 동거를 시작한 이후에는 B가 결혼에 대해 언급이 없고 귀가시간이 늦어지며 A와의 대화를 회피하는 등 냉랭한 태도를 보이자 A는 B의 정확한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 휴직후 미국으로 유학가겠다고 말했으나 B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종전과 같은 동거생활을 계속해 왔다.

이후 A는 회사를 휴직하고 유학을 준비하다가 포기하고 그때까지도 계속 동거하던 B에게 결혼을 제의했으나 이렇다 할 답변을 듣지 못하던 중, 2003년 3월초 회사 이전 관계로 A의 집을 나간 동거남 B가 집안에서 소개한 C와 교제중이라는 것을 우연한 기회에 알게 돼 B에게 항의하며 C와의 교제를 중단하고 자신과 결혼해 줄것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한편 2003년 5월 B의 고향으로 내려가 B의 부모들을 만나 동거사실을 알리고 결혼을 승낙해 달라고 사정하였으나 모두 거부당했다.

B는 C와 결혼하였고, A는 회사를 퇴직하는 한편 B를 혼인빙자간음 혐의로 경찰에 고소하고, B를 상대로 5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고소사건은 혐의없음(증거불충분) 처분으로 종결됐다.

A는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원고가 피고에게 사실혼 관계 부당파기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묻는 것은 이 법원의 심판대상이 아니므로 여기에서는 과연 원고에게 사실혼 관계 부당파기에 따른 손해배상책임과 별도로 기망에 의한 정조권 침해를 원인으로 하는 민법 750조의 손해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하여만 살펴본다"고 전제한 후, "기망에 의한 정조권 침해를 원인으로 민법 750조의 손해배상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단순히 결혼을 전제로 한 사실혼 관계가 파기되었다는 결과 이외에 ▲피고가 애초에 혼인의 의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원고를 속이고 성관계를 맺고 동거생활을 하였다거나 ▲피고가 동거를 하던중 사실상 혼인의 의사가 없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감추고 계속 성관계를 맺고 동거생활을 유지하였다는 등의 사정이 인정돼야 할 것인데,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1심 법원은 "원고는 피고의 결혼을 전제로 하는 언행 및 약속 등으로 인해 장차 피고와 결혼할 것이라는 신뢰하에 1년6개월간에 걸쳐 동거하면서 여러차례 성관계를 맺게 되었고, 피고는 동거기간중 밝혀진 성격 차이 등으로 원고와 결혼할 의사나 능력이 희박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원고에게 이런 사정을 알려주지 아니한 채 원고의 이러한 신뢰상태를 이용하여 계속 성관계를 맺어오다가 결국 원고와의 결혼약속을 저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하였다"고 밝히고, "피고의 이같은 행위는 선량한 풍속 및 사회질서에 반하여 원고의 정조권을 침해한 위법한 행위라 할 것이고, 미혼의 독신 여성인 원고가 입은 정신적 충격과 고통에 대해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