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코 사건이 남긴 것들
키코 사건이 남긴 것들
  • 기사출고 2014.01.08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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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주 변호사]
2006년부터 2008년까지 환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자 중소기업들의 상당수는 추후 환율하락에 대비하고자 금융상품에 가입했다. 그러나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금융위기가 도래하면서 환율은 1달러당 900원대에서 1500원대까지 올라가게 되었고, 키코에 가입한 기업들은 은행들의 콜옵션 행사로 약 3조 5000억원에 이르는 큰 손실을 입었다.

◇이연주 변호사
키코분쟁은 피해를 입은 기업과 은행들 사이에 법정분쟁이 이어졌고, 여러 하급심에서는 기업과 은행들 사이에 승패가 엇갈리는 판결이 이어졌다. 대법원은 상고심에 계류중인 관련 사건 가운데 4건을 선정하여 전원합의체에 회부하였고, 공개변론을 거친 다음 대법원 2013. 9. 26. 선고2012다1146호 판결을 선고하였다. 위 판결은 그 동안 피해기업과 은행 간의 지리한 법적 공방을 일단락짓고 하급심에서의 판단 기준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키코상품은 선물환계약의 거래구조를 기본으로 하여 Knock-in 조건과 Knock-out 조건이 가미된 변형선물환의 일종이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기업들에게 제시하였을 은행의 설명을 가상해보겠다.

"KIKO상품을 구입하시면 먼저 저희와 약정 환율과 약정 금액을 정하게 됩니다. 지금 현재의 환율이 1000원이니 1000원을 약정 환율로 잡게 되고요, 100원을 간격으로 900원선을 Knock-out선으로, 1100원을 Knock-in선으로 지정합니다.

그리고 귀사의 매달 수출액이 100만달러 정도 되시니 약정 금액을 100만달러로 지정하겠습니다. 귀사의 수출대금 100만달러에 대하여 환율이 떨어져서 920원이 되었다면 저희는 1달러당 약정 환율인 1000원으로 환전을 해드립니다. 즉, 환율이 Knock-out(900원)선과 1000원 사이에서 변동되어 손해가 나실 경우, 은행은 항상 1000원으로 환전해 드린다는 뜻입니다. 또한 환율이 1000원에서 1100원 사이가 됐을 경우에는 1달러당 약정환율인 1000원으로 환전해 드리는 것이 아니라 당일 환율이 1050원이라면 곧바로 1050원으로 환전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환율이 Knock-out 이하로 떨어졌을 경우에는 KIKO계약이 파기되어 환차익 보상을 하지 않습니다. 한편 환율이 Knock-in선을 넘으면, 저희는 콜옵션 2개를 발효시킬 수 있는데, 우리는 약정금액 100만 달러의 2배인 200만 달러를 1달러당 1000원에 매수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됩니다."

키코상품은 환율이 Knock-in선을 넘을 경우 기업에 무제한의 손실이 발생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실제로 이러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 되었다. 기업들은 기업들의 풋옵션과 은행들의 콜옵션의 가치 사이에 현저한 불균형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불공정한 법률행위로서 무효인 계약이라는 주장을 하였지만, 대법원은 이에 대하여 환율변동의 확률적 분포를 고려하여 쌍방의 기대이익을 대등하게 구성하였으므로 불공정하다고 볼 수 없고, 사후 외부적 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따라 결과적으로 계약당사자 일방에게 큰 손실이 발생하고 상대방에게 그에 상응하는 이익이 발생하는 결과가 되었다고 하여 그 계약이 당연히 불공정한 계약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판시하였다.

다만, 은행이 환헤지 목적을 가진 기업들에 대하여 키코상품을 권유하여 이를 체결하게 한 행위에 대하여는, 대법원은 은행이 '적합성의 원칙'을 위반하여 고객에 대한 보호의무를 저버리는 위법한 것으로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판시하였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기업들은 Knock-out 구간에서는 계약이 무효가 되므로 헤지를 안 한 것과 같아 환율하락의 피해에 노출되게 되고, Knock-in 구간에서는 무제한의 손실이 발생하므로 역시 헤지 효과가 없게 된다. 환율의 변동성이 높을 때 키코는 헤지의 효과가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기업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는 투기상품이 되는데, 은행이 환헤지 목적을 가진 기업에게 이를 권유한 것은 고객보호의무를 위반하였다고 본 것이다.

키코 총 피해기업 수는 517개인데 이중 대기업이 46개(9%), 중소기업이 471개(91%)이고, 손실액 기준으로는 약 3조 5000억원 손실 중 대기업이 25% 비율을 차지하고 나머지는 중소기업의 손실이다.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취약성을 엿볼 수 있다.

또 국내 은행들 대부분이 키코 상품을 개발한 해외은행들의 판매대행을 하였을 뿐이어서 수익의 대부분은 해외로 흘러가고 국내은행들은 수수료만 취득하였을 뿐인데, 키코 상품에 대한 충분한 위험을 기업들에 설명하지 못한 원인이 일부 은행들에 관하여는 은행들 자신의 상품에 대한 이해부족이었음이 밝혀지기도 하였다.

키코 사건은 기업들에게는 거액의 손실을, 은행들에게는 소송대응에 따르는 부담과 고객들의 불신이라는 수업료를 각각 치르게 하고 마무리되었다.

이연주 변호사(yjlee@sechanglaw.com, 법무법인 세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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