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현실에 적합한 로스쿨 만들어야"
"우리 현실에 적합한 로스쿨 만들어야"
  • 기사출고 2005.04.04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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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 변호사]
로스쿨 도입안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김현 변호사
특히 현재 논의되는 로스쿨 도입안이 우리 법조계의 질을 높여 국제경쟁력을 강화하자는 취지보다는 법조인을 대량 생산해 법조의 질을 저하시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적지 않다.

사법개혁은 관련 당사자가 참여해 신중하게 검토해야 하는데, 현실은 비전문가와 시민단체가 앞장서서 인민재판식으로 몰고 가는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 논리에 의해 졸속으로 로스쿨을 도입하면 오히려 개악이 될 수 있다.

로스쿨을 하려면 제대로 준비해야 한다.

실무에 정통한 교수진을 확보하고 교육 내용이 실용적이어야 하며 산업계가 필요로 하는 통상, 경제법과 관련한 다양한 과목이 개설돼야 한다.

필자는 5년간 미국 로스쿨에서 수학한 경험이 있지만, 우리와 문화가 전혀 다른 미국의 예를 답습할 필요도 없고 1년 전에 로스쿨제도를 실시한 일본을 맹종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한국의 현실에 적합한 로스쿨을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다.

로스쿨을 논의할 때 가장 중요한 논점 중 하나가 입학 정원이다.

이를 중시하는 것은 변호사가 사회적으로 중요한 직업이기 때문이다.

변호사는 의사와 더불어 대표적인 전문 직업인이고 인권을 옹호한다는 직무의 공익성을 띠고 있다.

그렇다면 직업의 품위를 지킬 수 있고 최소한의 요구 수준을 갖춘 사람에게만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 사회에도 도움이 된다.

고도의 윤리 기준을 규정한 변호사법을 별도로 둔 것도 이 같은 취지에서다.

지나치게 많은 인원을 로스쿨에 합격시켜 미국과 같이 변호사망국론이 나오게 해서는 안 된다.

미국 기업은 통상 예산의 3%를 법률 비용에 쓰고 있다.

이 얼마나 낭비인가.

변호사가 지나치게 많으면 일거리 창출을 위해 건전한 기업을 공격하는 것을 주무로 하는 변호사, 당사자끼리 해결할 수 있는 사건을 소송으로 가도록 부추기는 변호사가 양산될 수 있다.

현재 사법개혁위원회는 로스쿨 입학 정원을 약 1200명으로 하고 그중 1000명을 변호사자격시험에 합격시키겠다는 원칙을 정했다.

그런데 우리 현실에서 로스쿨을 졸업한 200명을 탈락시키는 것이 가능할까.

그 200명은 어떤 수를 써서라도 변호사자격을 얻으려 노력할 것이다.

1980년대 졸업정원제에서 경험한 바와 같다.

인구당 변호사 수가 부족하다는 논리는 의미가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변리사 세무사 법무사 등 유사 법조직 종사 인원이 엄청나며, 집을 살 때 등 모든 법률문제를 변호사와 상의하고 대부분의 중산층이 유언장을 작성하는 미국과는 전혀 법률 수요가 다르기 때문이다.

또 어느 직업이건 종사 인원을 늘릴 때에는 충격을 흡수할 만한 속도로 해야 한다.

불과 10년 전에 300명이던 사법시험 합격자를 현재 1000명으로 증원한 결과 문을 닫는 법률사무소가 속출하고 있다.

로스쿨 입학정원 문제는 법학 교육의 내용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대승적 차원에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준비가 안 된 학교에 일단 로스쿨을 허용하고 '어떻게 되겠지' 하는 안일한 자세로는 안 된다.

선거구민에 영합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한 도에 한 로스쿨'이라는 식의 요구도 곤란하다.

일본은 2005년 현재 74개 로스쿨이 난립해 무려 5825명의 신입생을 선발한다.

이는 일본 사법시험 합격자 1500명의 4배에 달하므로 조만간 일본에서는 변호사의 홍수 사태가 예상된다.

이 같은 일본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

◇동아일보에 기고한 글을 김현 변호사의 동의 아래 싣습니다.



대한변협 로스쿨 특별대책위원 · 법무법인 세창 대표변호사(hyunkim@sechangla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