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스 전 대법관 회고록 번역 출간
스티븐스 전 대법관 회고록 번역 출간
  • 기사출고 2013.07.18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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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드 빈슨 이후 연방대법원장 5명 평가부시에 지명권 안주려 90세까지 재임 유명
미국의 로스쿨 학생들에게 연방대법원 대법관은 거의 신적인 존재라고 한다. 미국 헌법을 해석하고, 더 나아가 판결을 통해 법을 만들어가는 사람이 연방대법관이기 때문이다.

◇최후의 권력, 연방대법원
미국 역사상 세 번째로 오래 재직한 연방대법관이자 가장 공정한 재판관으로 이름이 높았던 존 폴 스티븐스 전 대법관의 회고록이 《최후의 권력, 연방대법원》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나왔다.

1975년 공화당의 제럴드 포드 대통령에 의해 전임 윌리엄 더글러스 대법관의 자리를 이어받은 스티븐스는 대법관 초기 보수적 경향을 보였으나 윌리엄 렌퀴스트 대법원장 때부터는 진보적 성향으로 기울었다. 낙태금지, 사형제에 반대하고, 소수인종 우대정책에 찬성하는 등 인권 분야에 대한 많은 관심과 함께 진보적인 의견을 내놓아 인권판사(Human Rights Judge)로 불리기도 했다. 이 때문에 그를 '진보주의의 지도자'라고 부르는 학자도 있지만, 정작 스티븐스 자신은 스스로를 보수주의라고 평가했다. 이에 대해 취임 당시 중도로 분류되던 이념적 성향이 후반에 들어 진보의 새채를 띤 것으로 평가되지만 그것은 워런 버거, 윌리엄 렌퀴스트, 존 로버츠의 주도 아래 보수로 경도되던 미 연방대법원의 균형을 잡기 위한 자리매김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유력한 해석도 있다.

스티븐스는 회고록에서 자신이 만났던 다섯 명의 대법원장과의 인연과 그들에 대한 평가를 담아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프레드 빈슨 대법원장은 와일리 러틀리지 대법관의 재판연구관으로, 얼 워런은 소송변호사로서, 워런 버거는 연방판사이자 후배 대법관으로서, 윌리엄 렌퀴스트는 동시대를 같이한 동료로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중에 동료가 된 존 로버츠는 탁월한 소송변호사를 지켜본 관찰자로서 이들을 바라보고 그렸다는 게 스티븐스의 설명.

그는 얼 워런은 헌법을 해석하는 견해가 뛰어났으며, 워런 버거는 대법원 안팎의 사법 행정 업무를 눈에 띄게 개선했고, 존 로버츠는 변론의 질적 우수성을 갖춘 출중한 변호사 출신으로 회의 주재 능력이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또 얼 워런을 제외한다면 존 로버츠는 비사법적인 다른 대법원 업무에서도 최고의 대변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또 자신이 퇴임 전 15년간 재직한 '동급 서열 2위', 선임대법관의 역할에 대해서도 기술하는 등 회고록엔 미 연방대법원의 속내에 대한 좀처럼 접근하기 어려운 내용이 들어 있다.

스티븐스는 노스웨스턴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반독점 변호사로 명성을 쌓았으며, 연방대법원 대법관에 임명돼 35녀간 재임했다. 고령임에도 조지 부시 전 대통령에게 대법관 지명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 은퇴를 미루다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된 뒤 2010년 6월 90세의 나이로 사임해 더욱 유명해 진 그의 후임은 하버드 로스쿨 학장 출신의 엘리나 케이건. 케이건이 제112대 대법관으로 부임하자 사람들은 로버츠 대법원의 존속이 아니라 케이건 대법원의 개막이라고 기록했다.

이은재 기자(eunjae@lega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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