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방변호사회 선거를 보고
서울지방변호사회 선거를 보고
  • 기사출고 2005.02.03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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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5표 대 922표.

지난 1월31일 치러진 서울지방변호사회의 변협회장 추천후보 선거에서 천기흥 당선자와 김성기 변호사가 각각 얻은 득표결과다.

◇김진원 기자
천 변호사가 유효투표 1906표의 과반수를 얻어 서울회의 변협회장 후보로 당선됐으나 김 변호사와의 표차는 불과 63표.

이날 함께 치러진 서울변회장 선거에선 표차가 더욱 좁혀졌다.

차기 회장에 당선된 이준범 변호사가 965표를 얻어 933표를 얻은 배진수 변호사와 32표차로 승부가 갈렸다.



그만큼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손에 땀을 쥐는 승부가 개표 마지막 순간까지 이어졌다는 게 투표에 참가한 서울회 변호사들의 공통된 반응들이다.

이런 선거 결과를 놓고 말들이 많다.

누가 연설을 좀 더 잘했느니, 누가 무슨 덕을 보았고, 무엇이 패착이었다는 등 분분한 해석이 서울 서초동에 나돌고 있다.

그러나 기자는 누가 당선됐다는 결과를 떠나 약 2달을 끌어 온 이번 선거전에 나타난 회원변호사들의 속내를 제대로 읽어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민심'을 깨쳐 앞으로의 회무 운영에 제대로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1900명이 훨씬 넘는 회원변호사들이 투표장에 나와 손수 한 표를 행사했다는 총투표자수에 주목해야 한다.

선거당일 날씨가 제법 쌀쌀했음에도 전체 회원변호사의 절반에 가까운 인원이 혹은 승용차로, 택시로, 버스로 힐튼 호텔 투표장을 찾았다.

원로변호사도, 연수원을 마친지 한, 두해 밖에 지나지 않은 젊은 변호사들도 매우 진지한 모습으로 한 표를 행사했다.

봉고를 전세내 소속변호사들을 실어 나른 모 로펌이나, 대형 버스를 대절해 교통편을 제공한 서초동의 모 변호사의 열성은 모두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때문이라기 보다 변호사와 변호사회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참여정신의 발로라고 해석하고 싶다.

이들에게 변호사들이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며 보란듯이 사무실을 운영하고, 변호사회가 잘되는 것 보다 더 바랄게 있을까.

낙선자를 포함해 이날 선거에 나선 후보자들에게 유권자인 회원들이 주문한 것은 다름아닌 "잘 해 보자"는 다짐으로 요약할 수 있다고 본다.

그만큼 재야법조의 상황이 어렵다는 말도 된다.

갈수록 힘들어진다는 수임 환경, 초읽기에 들어간 법률시장개방 일정, 숨조이듯 다가오는 사법개혁의 청사진 등 사방의 어느 곳 하나 녹록한 구석이 없다고 해도 아니라고 할 도리가 없다.

후보자들도 위기로 진단하고 나섰지만 재야법조의 현재 모습은 회원들의 기대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것이다.

원래 회원 수가 늘어나면 그들로 이루어진 단체는 그만큼 위상이 높아지고 역량이 늘어나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변호사회는 매년 수백명씩 변호사가 배출되며 회원수가 늘어 나는데도 불구하고 사정은 오히려 어려워지는 악순환에 빠져 있는 느낌이다.

간단한 처방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야 숨통을 틔울 수 있을 만큼 깊은 병에 빠져 있지 않나하는 생각도 든다.

새로 변호사회를 이끌게 된 집행부에게만 기대할 게 아니라 회원 각자가 획기적으로 생각을 바꿔야 할 지도 모를 일이다.

이날 치열했던 선거 취재를 마치고 서초동으로 돌아오는 기자의 머릿속에도 재야법조의 명쾌한 청사진은 잘 떠오르지 않았다.

본지 편집국장(jwkim@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