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집단소송제 성공의 요건
증권집단소송제 성공의 요건
  • 기사출고 2005.01.12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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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현 변호사]
증권관련집단소송법 (이하 증권소송법)이 2005년 1월 1일부터 시행된다.

◇송창현 변호사
지난 몇 년간 대우그룹, SK글로벌의 분식회계 등으로 기업공시의 정확성에 대한 투자자와 시장의 불신이 높아졌고 이를 해소하는 방안으로서 2004년 1월 법안이 공포됨으로써 우리나라에도 증권집단소송제가 도입되기에 이르렀다.

가령 기업의 사기적인 증권발행으로 피해를 본 투자자들이 개별적으로 소송을 진행하는 대신에 0.01% 이상의 주식을 보유한 50인 이상이 합하여 집합적인 피해구제를 도모할 수 있게 된다.

증권집단소송제는 유가증권의 거래과정에서 발생한 집단적인 피해를 효율적으로 구제하고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기업이 처한 사회경제적 환경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제도를 도입하게 되면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제고하는데 별 기여를 하지 못하면서 소송의 남발로 인해 기업의 경영활동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

전경련 등 경제단체들이 2005년 1월 이후의 분식회계에 대해서만 증권소송법이 적용되게 해 달라고 국회에 청원서를 제출하였으나 결국 입법에 반영되지는 않았다.

증권집단소송은 미국을 제외한 국가에서는 별로 활성화되어 있지 아니하며, 미국에서도 증권집단소송으로 인한 폐해를 줄이기 위해 1995년 증권소송개혁법(Private Securities Litigation Reform Act: PSLRA)을 제정하여 대표당사자의 요건, 고의 및 사기사실의 입증책임, 변호사의 선정 및 보수, 연대책임의 제한 등의 규제를 강화하였다.

미국의 예를 보면 PSLRA 제정 이후에도 증권집단소송의 건수나 화해배상금의 규모가 줄어들지는 않았으며, 제도의 개선을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증권소송법을 신설하면서 투자자 보호와 남소방지를 위한 여러 규정을 두고 있다.

그러나 증권소송제가 위 목적달성을 위해 적절하게 설계되었는지에 관한 검토가 필요하다.

첫째, 증권소송법은 모든 증권관련 사기행위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1) 유가증권신고서 등 발행시장 공시서류의 부실기재, (2) 사업보고서 등 유통시장 공시서류의 부실기재, (3) 내부자거래나 시세조종행위 및 (4) 감사인의 위법행위 등의 제한된 유형만을 대상으로 한다.

증권소송의 대상을 제한한 것은 기업의 부담을 줄이고 다른 법령에 의한 구제수단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나, 증권사기 유형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적용대상을 제한하는 것이 합당한지는 의문이다.

둘째, 증권소송법은 최근 사업연도 자산규모가 2조원 이상인 한국증권거래소 상장법인 및 코스닥 상장법인에게는 2005년 1월부터 적용되나 자산규모가 2조원 미만인 상장법인에게는 2007년 1월부터 적용된다.

그러나, 상장여부 및 자산규모에 따라 법의 적용여부 및 적용시기를 달리 하는 것이 합당한지는 의문이다.

우선, 비상장법인도 사기적인 증권발행을 통해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

자산규모가 큰 상장법인은 그렇지 아니한 법인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인력과 자산을 투여하여 부실한 기업공시를 방지하고 증권사기를 예방할 여력이 있다.

자산이 많은 상장법인에게 증권소송법을 우선 적용시키면 오히려 증권사기의 가능성이 크지 않고 상대적으로 건실하게 운영되는 상장회사가 집단소송의 주요대상으로 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셋째, 최근 3년간 3건 이상의 증권집단소송에 관여한 자는 원칙적으로 대표당사자나 원고측 소송대리인이 될 수 없다.

합의배상금을 노린 전문소송꾼의 출현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이다.

대표당사자는 소송으로 인하여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이 가장 큰 자로서 총원의 이익을 공정하고 적절히 대표할 수 있는 구성원이어야 하므로 현실적으로 은행, 증권, 보험회사 등의 기관투자가가 대표당사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기관투자가가 대표당사자가 되는 경우에는 남소에 의한 폐해가 적을 것이므로 위 “3년간 3건”이라는 기준을 완화하여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증권소송은 일반 손해배상 소송과는 달리 증권시장에 관한 전문적인 식견과 경험이 요구되고 아직 우리나라에 증권전문변호사 집단이 형성되지 아니한 단계이므로 법원은 위 기준을 적용하면서 융통성을 발휘하여 총원의 이익을 공정하고 적절히 대리할 수 있는 경우에는 원고측 소송대리인이 될 수 있도록 소송수행을 허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넷째, 증권집단소송의 피고는 일차적으로 증권을 발행한 회사가 되므로 투자자들은 투자를 한 회사로부터 배상을 받게 된다 (물론 증권발행에 관여한 인수단, 회계법인, 법무법인 등도 공동 피고가 될 수 있다).

분산투자를 한 일반 투자자나 기관투자가의 경우에는 배상금을 지급하는 회사의 주식을 계속 보유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종국적으로 회사가 지급하는 배상금이 자신의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결과가 된다.

즉, 증권소송이라는 막대한 거래비용을 지급하면서 배당받을 이익을 소송배상금으로 전환하여 받게 되는 결과가 될 수 있으므로 변호사 보수 등 거래비용을 줄이기 위한 보완조치가 필요하다.

다섯째, 증권소송법은 가장 핵심쟁점인 손해배상의 산정기준을 증권거래법에 위임한 채 소송절차적인 규율에 치중하고 있다.

증권집단소송제의 성패는 손해배상액이 적정하게 산정되어 투자자의 피해를 보상하고 위법행위자의 위법동기를 억제하는데 달려있다.

증권거래법상의 손해배상규정은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는데 부적절하므로 전면적인 입법보완이 필요하다.

증권집단소송제의 시행과 더불어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증권소송제가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변호사 비용 등 제도 운영과 관련된 거래비용의 절감, 입법 및 사법작용을 통한 결함의 지속적인 보완, 소송 관여자의 양식있는 행동이 요구된다.

증권집단소송제가 기업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독약이 될 지 아니면 기업경영을 투명화하는 보약이 될 지는 이러한 제반 요소의 상호작용에 달려있다.

◇송창현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제36회 사법시험에 합격했으며, 미 Columbia 대 법과대학원 법학석사 (LL.M.), UC Berkeley 대 법과대학원 법학박사 학위(J.S.D.)를 취득하고, Michigan 대 법과대학원 연구학자 (Research Scholar)를 역임했습니다. 법무법인 세종과 미 Cleary, Gottlieb, Steen & Hamilton (New York)에서 변호사로 활약했으며, 지금은 SL Partners 변호사로 있습니다.



chsong@slpartn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