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 존폐 놓고 헌재 국감서 공방
국가보안법 존폐 놓고 헌재 국감서 공방
  • 기사출고 2004.10.20 22: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헌재 일부조항 합헌결정 놓고 여 · 야 의원 설전 與 '국보법 폐지, 형법 보완' 당론으로 최종 결정
10월17일 열린우리당이 국가보안법를 폐지하기로 당론을 결정한 가운데, 10월18일 열린 헌법재판소 국감에서는 이를 둘러싼 여야간의 치열한 공방이 펼쳐졌다.

이날 국감에서 첫 질의에 나선 열린우리당 이은영 의원은 사전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헌재가 8월26일 국보법 제7조 1항(찬양 · 고무죄)과 5항(이적표현물 소지죄)에 대해 선고한 합헌결정(2003헌바85, 102)을 존중하지만, 이는 변화하는 남북관계를 고려하지 않은 결정으로 국민의 대표로서 유감을 표명한다"며, "이러한 판결을 내리면서 보도자료를 통해 '헌재의 결정을 입법과정에 반영해야 한다'고 발표한 것은 적절치 못한 처사였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의 우윤근 의원은 "헌재는 '국가의 존립 ·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정을 알면서' 라는 주관적 구성요건이 추가돼 있어 이를 합법적 · 합리적으로 해석한다면 개념의 불명확성은 제거될 수 있다고 했지만 정권이 바뀌고 시대적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불법적이고 비합리적인 해석과 적용으로 인권침해가 있어 왔다면 폐지돼야 하지 않느냐"며 형법 보완을 통한 새로운 국가안보 체계의 구축을 주장했다.

같은 당의 양승조 의원도 "해방 이후 부끄러운 현대사를 청산하는 것은 국보법 폐지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며, "국보법은 헌법상 평화통일조항과 죄형법정주의에 정면으로 어긋날 뿐더러 국민의 인권을 보장하고 우리 정부가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구성원이 되기 위해 반드시 폐지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한나라당의 김성조 의원은 "헌재는 헌재의 판결에 대한 비판에 대해 반박해야 할 필요성이 있지 않는가"라고 전제하고, "국보법에 대한 헌재의 합헌결정이 있었는데도 국가인권위는 방송과 기자회견을 통해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고, 심지어 노무현 대통령은 '국보법에 대해 위헌 · 합헌 의견이 갈릴수 있지만 악법이므로 없애야 문명국가로 갈 수 있다'라고 말했다"며 이에 대한 헌재의 공식적 입장을 물었다.

같은 당의 장윤석 의원 역시 "국보법에 대한 헌재의 합헌결정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대통령은 국보법을 낡은 칼에 비유해 칼집에 넣어 박물관에 보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고 강력하게 비판하고, "현행법을 국민 앞에서 문제시한 발언은 헌법에 위반되는 발언이라고 생각하지 않느냐"며 헌재가 입장을 밝힐 것을 주장했다.

이범주 헌재 사무처장은 "헌재는 판결로만 말할 수 있다"고 원칙론으로 일관했으나, "다만 국보법에 대한 합헌결정 직후 보도자료를 내고 '향후 입법부가 헌재의 결정과 국민의 의사를 수렴해 입법과정에 반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언급한 것은 적절하지 못한 행위였다"고 답변했다.

이에 앞서 열린우리당 정책위원회는 10월17일 정책의원총회를 열어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형법에 안보관련 내용을 반영하기로 당론을 결정했다.

이에 따르면 형법에 내란목적단체조직죄가 신설돼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고자 폭동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결사 또는 집단으로서 지휘통솔체제를 갖춘 단체를 구성하거나 이에 가입한 자는 전조(내란죄)의 구별에 의해 처단된다.

내란목적단체조직죄를 범할 목적으로 예비 · 음모 · 선동 · 선전한 자도 처벌된다.

또 간첩죄가 수정돼 군사기밀상의 기밀을 외국 또는 외국인의 단체에 누설한 자도 전항(1항)과 같이 처벌된다. 현행법에 '적국'으로 돼 있는 것을 '외국'으로 확대한 것이다.

이에대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은 논평을 내고 "국가보안법의 폐지와 간첩죄의 일부 개정 방침을 재확인한 것은 56년 동안 해결못한 역사적 숙제를 푸는 첫발을 딛는 것으로서 환영할 일"이라고 환영의사를 표명했다.

민변은 그러나 "이번 열린우리당 형법개정안의 소위 내란목적단체에 관한 조항이 자칫 국가보안법상의 반국가단체 조항이 형법으로 이전한 것 아니냐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고 우려했다.

참여연대 역시 "그 동안 국가보안법으로 우리 사회 인권과 민주주의를 억압해 왔던 반세기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는 일로 매우 역사적인 결정"이라고 열린우리당의 입장을 지지했으나, "형법에 내란목적단체조직죄를 신설한 것은 우려되는 점"이라며 "이는 마치 국가보안법의 반국가단체 조항을 옮겨온 것과 같은 해석과 적용을 낳을 가능성을 남겨놓은 것으로 비판의 소지가 크다"고 말했다.

반면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는 논평에서 "열린우리당의 국가보안법 폐지 당론 결정은 국가안보의 포기 선언"이라고 비판했다.

시민회의는 논평에서 "열린우리당이 국가보안법 폐지의 대안으로 제시한 내용은 북한의 대남공작활동을 막는 데 근본적인 한계를 노출하여 국가안보에 심각한 공백을 초래하리라는 우려를 갖게 한다"며, "특히 국보법의 회합통신과 같은 조항에 대한 대안이 없어 북한의 대남공작활동에 적극 협조하는 행위에 대해 처벌할 수 있는 길을 봉쇄해 버렸다"고 지적했다.

한국자유총연맹 등 보수단체들도 성명을 내고 열린우리당의 당론을 비판하고 나섰다.

최기철 기자(lawch@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