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대적 M&A 방어의 적법성 및 배임죄 성부
적대적 M&A 방어의 적법성 및 배임죄 성부
  • 기사출고 2009.08.31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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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건 변호사]
최근 적대적 M&A에 대한 방어행위의 적법성 및 배임죄의 구성요건의 해석과 관련하여 서울고법에서 주목할 만한 판결(2009. 7. 10. 선고 2007노2684)이 있었다.

◇세종_이동건 변호사
이 판결은 적대적 M&A 상황에서 공격자가 대상회사를 인수하기 위해 주주인 직원들로부터 주식을 매수하려고 하자, 이를 저지하고자 대상회사의 지배주주이자 대표이사인 피고인이 자회사가 손자회사에게 자금을 대여하게 하고 손자회사가 이 자금으로 관련 직원들로부터 주식을 매수하게 한 사안에 관한 것으로, 피고인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적절한 채권보전 조치 없이 계열사에게 자금을 대여한 행위 및 모회사의 자금 조달을 위하여 자회사로 하여금 정당한 대가 없이 모회사에게 담보를 제공하게 한 행위가 배임죄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문제가 되었다. 1심에서는 모두 배임죄를 인정하였으나, 이 판결에서는 모두 무죄가 선고되었다.

'일정 요건 구비 방어행위 적법'

이 판결은 우선 적대적 M&A에 대한 방어행위가 일정한 요건을 구비하는 경우에는 허용됨을 확인하면서 그러한 요건이 구비되었기에 (선관주의의무 위반이라는 관점에서도) 관련 방어행위의 적법성이 인정된다고 한 첫 판례로서 그 의의가 있다.

그동안 적대적 M&A와 관련하여 방어행위가 허용되는지 여부에 대하여는 논란이 있어 왔다.

미국에서는 이사진이 적대적 기업인수 시도가 회사 정책이나 효율성에 위협이 된다고 믿을 합리적인 이유가 존재함과 방어수단이 적대적 기업인수가 야기하는 위협과의 관계상 합리적임을 입증하면 정당한 방어행위로서 인정될 수 있다는 이른바 'Unocal 기준'을 적용하여 왔다.

이는 경영진의 의사결정은 존중되어야 하므로, 경영진의 의사결정을 문제삼고자 하는 자가 이사들의 과오를 입증해야 한다는 경영판단의 원칙(Business Judgement Rule)이 적대적 M&A 상황에서는 수정되어 그 정당성에 대한 입증책임을 경영진이 부담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방어행위 인정 어려워'

한편 과거 우리나라의 주류적 판례는 '경영권 방어를 주된 목적으로 하는 행위'는 무효라고 하여 이른바 '주요 목적 Rule'에 따라 방어행위의 적법성 여부를 심사하여 왔다.

그러나 이러한 판례의 태도는 방어행위의 정당성 여부를 묻지 않고 방어행위 자체의 인정을 어렵게 하는 것이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또 판례에 따르면, 적대적 M&A 시도에 대항한 이사진의 방어행위가 정당한지 여부는 이사의 선관주의의무 위반 여부의 문제로 다루어지기 보다는 주로 이에 대항하기 위한 신주 등의 발행이나 자사주 처분의 유효성 또는 그와 관련한 주주의 의결권 인정 여부의 문제로 다루어져 왔는데, 이번 판결은 방어행위를 이사의 선관주의의무 위반의 각도에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는 것이다.

최근 하급심 법원은 현대엘리베이터 사건에서 경영권 방어가 주된 목적이라고 하더라도 일정한 요건이 갖추어지면 정당한 방어행위로서 인정될 수 있음을 언급하였고, 나아가 동아제약 사건에서는 공격자가 문제된 회사의 행위가 경영권 방어를 위한 것임을 입증할 책임이 있고, 그 점이 입증된 경우 회사는 그 방어행위의 적법성을 입증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적법성의 입증과 관련하여 방어행위의 동기, 목적, 방어수단의 합리성, 공격자의 실체 및 계획, 절차적 합리성, 장기적인 계획 유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고 판시함으로써 미국의 Unocal 기준을 전면적으로 수용하는 듯 한 태도를 보여준 바 있었으나, 두 사건 모두 '방어행위의 적법성을 위한 요건'에 대한 입증으로까지 나아가지는 아니하였다.

그런데 이번 판결은 "(i) 방어행위 당시 대상회사의 단기 및 장기의 전략적 가치를 포함하는 기업가치에 대한 위협으로부터 경영권의 보호를 위하여 적절한 방어수단을 사용하고(목적과 수단의 합리성), (ii) 그러한 방어수단의 채택 및 행사에 필요한 주주총회나 이사회 결의 등의 절차에 하자가 없다면(절차적 요건), 그 방어행위는 적법한 것으로 인정될 수 있다"고 하면서, 본 사안에서의 공격자가 대상회사 그룹 자체를 소멸시킬 가능성이 있었다는 점 등의 입증을 전제로 "본 사안의 자금대여 행위는 기업가치 보호를 위한 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고, 절차적 하자도 없었음이 입증되었기 때문에 적절한 방어수단으로서 적법성이 인정되고, 자금대여 행위는 이사의 임무위배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일본 불독소스 판결에 비견할 만

이는 적대적 기업인수 시도에 대한 방어행위의 허용가능성을 재차 확인하였을 뿐만 아니라 '방어행위의 적법성을 위한 요건'에 대한 입증으로까지 나아간 첫 번째 판결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주요 목적 Rule'을 버리고 적대적 M&A 방어방법의 정당성 인정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서 남용적 매수자에 대항하여 취한 방어수단의 적법성을 인정한 일본 동경고등재판소의 불독소스 판결에 비견할 만한 판결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번 판결은 배임죄의 구성요건의 해석과 관련하여 새롭고, 보다 엄격한 해석기준을 제시하여 주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보인다.

"형사책임 추궁 신중 필요"

재판부는 판결에서 "선관주의의무나 충실의무 등의 민사적 의무의 위반에 따른 민사적 책임이 인정된다는 이유로 특별한 문제의식을 갖지 아니한 채 형사법상 배임죄 책임의 성립을 긍정하는 태도는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문제를 제기하면서, 특히 "현실적인 재산상 손해의 발생이 없어 민사적 책임을 추궁할 수 없는 경우에까지 행위의 위험성을 이유로 형사적 책임을 묻는 데에는 더욱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판시하여 '재산상 손해 발생의 위험'이라는 관점에서 배임죄의 성립을 폭넓게 인정하는 경우 그로 인한 경제활동의 위축이나 선별적 형별권의 행사에 따른 사회적 위화감 조성 등의 부작용 발생을 경계하고 있다.

그와 같은 문제의식 하에서, 이번 판결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주목할 만한 내용을 판시하고 있다.

현금흐름의 여러사정 고려해야

첫째, 동일한 기업집단 내부의 계열사 간의 거래행위에 있어서 대가관계의 상당성을 평가함에 있어서는 "외부적으로 드러나고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현금흐름이나 자산가치 등의 형식적 요소만을 고려할 것이 아니라, 계열사 간의 지분구조, 영업 행태, 제휴 관계, 향후 거래의 계속 여부, 계약조건 등의 여러 사정을 고려한 유형적, 무형적 가치도 고려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관련 거래행위가 계열사가 상생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해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개별 기업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볼 수 없는 경우에는 동 행위를 배임죄로 처벌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판시하고 있다.

이는 과거 계열사에 대한 지원행위가 계열 그룹 전체를 위한다는 목적에서 이루어진 행위라고 하더라도 형식적인 관점에서 배임죄의 성립을 긍정하여 오던 판례들과는 다른 시각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서, 보다 큰 그림에서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기업인의 의사결정의 현실과 법감정에 보다 가까운 태도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할 것이다.

둘째, 배임죄의 구성요건인 재산상 손해의 개념과 관련하여 "재산가치의 감소는 특정한 거래행위에 내재한 본질적 위험이 현실화되어 경제적 가치의 훼손이 발생하는 것을 의미하고, 거래행위에 수반하여 간접적으로 발생하는 부정적 효과(안전자산 대비 위험자산의 증가, 신용도의 저하 등)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면서, "안전자산인 금전이 위험자산인 채권으로 변경되었다거나 현금자산의 감소로 인한 신용도 저하의 효력이 발생하였다는 것만으로 재산가치의 감소가 발생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판시하고 있다. 이는 유동성 감소 자체를 손해로 인정하던 대법원 판례와는 다른 태도를 취한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바, 대법원에서 이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되는 부분이다.

"손해발생 위험 좁게 해석해야"

셋째, 일반적으로 배임죄의 구성요건인 재산상 손해에는 재산상 실해 발생의 위험을 야기한 경우도 포함된다고 해석되는데, 이번 판결은 "손해 발생의 위험은 손해발생으로 인한 법익침해의 결과와 동일시할 수 있을 정도로 위험이 침해결과에 근접한 경우로 좁게 해석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일반적, 추상적으로 채무자의 채무변제능력 상실로 인한 손해 발생의 위험이 있는 행위라거나 채권의 회수를 위한 담보권 확보 등의 조치가 미흡하다는 정도의 사정만으로는 처벌 가능한 위험이 발생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판시하고 있다.

또 위험성 유무에 관한 판단은 원칙적으로 '행위시'를 기준으로 하여야 하지만, 사후적 판단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 "(문제된 행위로 인한) 법익침해의 결과가 발생하지 않는 것으로 확정된 경우에는 검사가 행위와 결과 사이의 통상적인 인과의 흐름에 행위자에 의한 비정형적, 인위적 개입이나 행운과 같은 우연한 사정의 발생으로 법익침해의 결과가 발생하지 않았을 뿐이고, 그러한 인위적, 우연적 요소가 없었더라면 법익침해의 결과가 발생하였을 것이다라는 사정을 입증하여야 하고, 이러한 입증이 없는 때에는 행위자를 처벌할 수 없다"고 판시하고 있다.

이는 위험범임을 이유로 실제 회사에 손해가 발생하였는지 여부를 깊이 판단하지 않고 '손해 발생의 위험'을 들어 배임죄를 쉽게 긍정하여 오던 과거의 많은 법원의 판결들과는 배치되는 입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어서, 판결의 이러한 입장이 대법원에서 또는 다른 사건에서도 지지될 수 있을지 주의 깊게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기존 판례와 다른 기준 제시

이렇듯 이번 판결은 선관주의의무 위반이라는 관점에서 적대적 M&A 상황에서의 방어행위의 적법성에 대한 해석 기준을 제시하고 있고, 나아가 배임죄의 구체적 구성요건의 해석과 관련하여 기존의 판례들과는 사뭇 다르게 새롭고 보다 엄격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물론 적대적 M&A 상황에서 이루어진 행위에 대한 판단이었다는 특수성이 있지만, 배임죄의 성부와 관련하여 일반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해석 기준들을 제시하고 있는 바, 앞으로 이번 판결에 나타난 해석들과 관련하여 대법원이 어떠한 입장을 보여줄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하겠다.

이동건 변호사(법무법인 세종, tglee@shink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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