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KO 판례의 쟁점과 변천내용
KIKO 판례의 쟁점과 변천내용
  • 기사출고 2009.07.20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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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창 변호사]
최근 자본시장법이 시행되면서, 증권 ‧ 금융 분쟁에 대한 판례의 동향이 어떻게 변화할 지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또한 2008년 말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KIKO 분쟁에 대해, 최근 법원의 결정들이 잇따라 발표되면서, 향후 법원의 투자자 보호의 입장이 어떻게 변화할 지에 대한 관심도 자본시장법의 시행과 함께 상대적으로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이병창 변호사
이러한 사회적 관심은 2008년 하반기부터 전 세계적으로 파급되었던 경기후퇴로 인해 많은 해외 투자펀드, 특히 파생금융상품과 연계된 펀드에 투자한 투자가들의 손해가 막대해 지면서 더욱 높아지고 있다.

미국선 Ponzi Scheme 사건 주목

한편 미국에서도 최근 Bernard Madoff의 Ponzi Scheme 사건으로 인해, 그에 관련된 회사들에 대한 SEC의 제재, 손해배상청구 등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법무법인 세종은 지난 6월4일 금융투자협회와 공동으로 자본시장법상 투자자 보호 제도 및 최근 판례의 동향에 관하여 세미나를 개최하여, KIKO 분쟁, 환변동 보험 분쟁, 펀드 관련 분쟁 등에 관한 최신 판례들을 소개한 바 있다.

이 글에서는 금융투자협회 세미나에서 발표되었던 사례들 중 일부와 파생금융상품 펀드와 관련하여 최근 선고된 판결을 중심으로, 자본시장법 시행에 따른 향후 판례의 동향 등에 대해 간략히 전망해 보고자 한다.

자본시장법 시행 이전, 판례에서는 설명의무, 적합성 원칙, 선관주의의무, 충실의무 같은 용어들이 구체적인 사안별로 명백히 구별되지 않은 채 혼용되어 쓰이면서 이를 통틀어 보호의무라고 지칭되어 왔다.

자본시장법 2월4일 시행

자본시장법이 2009년 2월4일 시행된 이후에도 판례의 전망은 종전 입장에서 크게 달라질 것으로 전망되지는 않는다. 다만, 종전처럼 거래경위, 거래방법, 고객의 투자상황, 거래의 위험도, 이에 관한 설명의 정도 등을 개괄적으로 열거하면서 보호의무를 위반하였다고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것 보다는 자본시장법에서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적합성 원칙, 적정성 원칙, 설명의무에 관한 명백한 판단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기는 한다.

KIKO 사례에서 문제된 적합성 원칙, 설명의무에 대해 보기 전에, 기업들이 환변동 위험을 회피하고자 종전에 주로 가입하였던 환변동 보험에 관한 사례들을 살펴보는 것이 KIKO 사례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기업들은 환율변동에 따라 위험(Risk)을 회피하기 위해 선물환 계약(Forward)을 체결하여 왔다. 선물환 거래는 환율 하락시 수출기업들이 입게 되는 손실을 헤지(Hedge)하기 위한 상품으로, 수출기업들이 선물환 매도 포지션을 취한 경우, 환율하락구간에서 기업은 이득을 보게 되므로, 이것이 현물환(수출대금)으로 입을 손실을 상쇄(pay-off)시키는 효과를 가지게 된다. 한편 기업들은 풋 옵션(Put Option) 매수계약을 체결함으로써 환율하락에 따른 위험을 회피할 수도 있다.

환변동 보험은 두 가지 종류 외에도 범위 선물환 방식, Spread Option 방식 등 다양한 종류가 있으므로, 이를 일률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다만, 환변동 보험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환율하락에 따른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수출업자가 선물환 매도 포지션 또는 풋 옵션 매수 포지션을 유지하였다가, 환율이 내리면 보험금을 수령하고, 환율이 오르면 반대로 보험자에게 환수금을 지급하는 보험을 가리킨다.

환수금 발생 위험 설명이 쟁점

서울중앙지법은 2008년 12월9일 기업이 보험자를 상대로 보험계약 효력정지 등을 구한 가처분신청을 기각하였다. 주된 쟁점은 환율의 급격한 상승시 보험자가 기업에게 환수금 발생의 위험성 등에 대한 설명의무를 위반하였는지 인데, 법원은 환율 급등으로 인한 환수금의 증가는 보험계약에서 정한 일반적, 구조적 위험이 현실화된 것에 불과하고, 보험자의 계약 체결시 환수금 발생여부에 대한 설명은 충분하였다고 판시하였다.

KIKO 상품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고, 기업들이 이에 가입하게 된 배경이라든지, 개개 기업들의 차이점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KIKO 관련 가처분 사건들에 대해 동향을 파악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로 생각된다. 다만, KIKO 관련 가처분 소송에서 문제되고 있는 법적 쟁점은 서로 유사한 면이 있으므로, 이 글에서는 사건의 유사성이 있고, 그에 대한 쟁점이 유사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대표적인 사건 3가지를 보면서, 향후 동향에 대해 예측하고자 한다.

급격한 환율변동은 사정변경

서울중앙지법 2008년 12월30일 결정(모나미 사건)에서는 환율의 급격한 변동을 계약의 기초인 객관적 사정이 현저히 변경된 경우로 파악하여 사정변경에 의한 해지를 인정하였다.

그와 함께 법원은 기업이 무제한 손실위험에 노출되는 거래구조는 수출 기업에 적합하지 않는 거래구조로서, 판매은행으로서는 손실이 제한되는 거래구조를 모색하여 거래를 권유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는 근거를 제시하면서 적합성 원칙 위반을 인정하였다. 또한 법원은 은행이 이러한 위험을 기업에게 일반적, 추상적으로 고지하였을 뿐, 구체적으로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였을 경우에 기업이 입게 되는 손실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으므로 설명의무를 위반하였다고 보았다.

인천지법 2009년 3월9일 결정(코다코 사건)에서는 고객에게 환율변동에 따른 현실적 손해가 없거나 미미하다는 이유로 신의칙에 의한 해지를 부정하고,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기각하였다.

이 사건은 기업이 매월 매도할 수 있는 수출대금이 확보된 이상, 콜 옵션(Call Option)에 응하여 달러 매도를 할 수 있으므로, 현실적인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의칙 위반으로 인한 해지를 부정하였다는 점에서 특징이 있다.

모나미 사건과 큰 차이 없어

코다코 사건에서는 결과적으로 신의칙에 의한 해지를 부정하기는 하였으나, 기업에 현실적인 손해가 발생하였을 경우, 신의칙에 의한 해지가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모나미 사건과 큰 차이점은 없다고 생각된다.

서울중앙지법 2009년 4월24일 결정(K.U.T. 사건)에서는, 앞선 사례들과는 달리, 환율의 급격한 변동을 주된 이유로 한 사정변경 또는 신의칙에 의한 해지를 기본적으로 부정하였다. 특이한 점은 신의칙에 의한 해지를 부정한 대신 적합성 원칙과 설명의무 위반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였다는 사실이다.

적합성, 설명의무 위반 인정

법원은 은행이 프리미엄 수취구조를 숨긴 가운데, 환율하락 기대를 자극하는 적극적인 판촉활동을 함으로써 기업들의 KIKO 계약 체결을 유도한 경우, 그것은 적합성 원칙과 설명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기업에게 손해배상책임이 있다고 보았다.

법원은 은행이 이러한 의무를 위반한 경우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고, 한계환율을 계약 당시 시장환율의 130%로 보아, 한계환율 내에서의 환율변동에 따른 기업들의 손실은 적합성 원칙, 설명의무 위반과는 상당인과관계가 없는 것으로 보았다.

K.U.T. 사건의 결정문에서 제시된 논리는 대체적으로 KIKO 상품의 구조 및 거래실무를 잘 이해한 것이라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은행들은 KIKO 계약을 체결한 후 외환시장에서 이를 반대매매 또는 분산 헤지하므로, KIKO 계약의 효력을 정지할 경우, 은행은 반대거래 상대방에게 전액을 변제해 주어야 하는 불합리한 결과가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일 KIKO 계약이 사후적으로 환율급등으로 인한 사정변경 또는 신의칙 논리로 해지된다고 한다면, 은행으로서는 반대거래로 인한 손실을 그대로 떠안게 되는 불합리한 면이 있게 된다.

반대로 기업 입장에서도 향후 유입될 수출대금의 적정한 범위 내에서 가입하였을 경우, Knock-In 환율 이상으로 환율이 상승하더라도 콜 옵션 행사에 따라 매도할 물량을 확보할 수 있고, 남은 수출대금은 그만큼 환율상승으로 인한 이득을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K.U.T. 사건에서 법원은 KIKO 거래가 자본시장법 시행 이전에 체결된 것이었지만, 자본시장법에 규정된 적합성 원칙, 설명의무에 대해 종전 사례들에 비해 보다 명확히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KIKO 가처분 사건에서의 결론이 현재 진행 중인 KIKO 본안 사건에서도 동일하게 유지될 수 있을지 명확히 예상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K.U.T. 사건에서 사정변경 또는 신의칙에 의한 해지를 부정하고, 적합성 원칙, 설명의무에 대해 명확히 한 것은 의미가 있다고 보인다.

판매회사에 손배책임 인정

서울중앙지법은 2009년 6월23일 CEDO(Collateralized Equity and Debt Obligations)라는 파생금융상품에 투자하는 해외 파생금융상품 펀드에 관해 주목할 만한 판결을 선고하였다.

법원은 판매회사에게는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였는데, 주된 근거는 투자자가 파생상품 투자신탁 상품에 가입한 전력이 없는 보수적 투자가였으며, 은행이 고수익 상품이라는 점만 강조하고, 그 운용방법과 만기시 원금손실 위험성에 대한 설명을 제대로 하지 않았고, 또한 판매회사 직원이 투자설명서도 제시, 교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최근 법원은 단순히 보호의무라는 포괄적 개념으로 판단하기 보다는 적합성 원칙, 설명의무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판단을 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물론 최근까지 선고된 판례들은 자본시장법이 시행되기 전에 판매된 상품들이었기 때문에, 자본시장법이 직접 적용되는 사례들에 대한 판단은 아니었기는 하나, 앞으로 판매될 금융상품들에 대한 분쟁의 경우에는 적합성 원칙, 설명의무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보다 구체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기본적으로 적합성 원칙은 투자가가 추구하고자 하는 목적에 적합한 상품을 판매할 의무를 금융투자업자에게 지우는 것이다. 실무에선 너무도 많은 금융상품들이 나타나고 있고, 개개의 투자자에게 그들의 투자목적에 비추어 금융기관이 판매하는 상품이 적합한지에 대한 명백한 기준이 현재까지 구체적으로 나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금융투자업자들로서는 판매하는 상품들이 고객들에게 적합한 상품인지에 대한 나름대로의 내부 Manual 등을 마련해 둘 필요성이 있다 하겠다.

설명의무 구체화한 자본시장법

또한 설명의무와 관련해서도 상품의 구조와 그에 따른 위험성 등을 비교적 상세히 설명해 줄 의무를 부과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물론 이러한 설명의무의 이행 과정은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자본시장법에서 설명의무가 좀 더 명백히 구체화되어 있고, 손해배상액도 추정되어 있는 이상 표준 Manual 등을 마련하고, 그에 따른 판매가 이루어지도록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갈수록 복잡하고 투자위험이 큰 금융상품들이 나타나고 있다. 법원은 금융투자업자들에게 점점 더 엄격해진 고도의 투자자 보호의무를 요구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금융기관들은 자본시장법 및 그에 따른 법원의 태도 변화에 대비할 필요성이 있다고 하겠다.

이병창 변호사(법무법인 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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