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체 법무팀 탐방]한화그룹 법무실

大生 국제중재 승소, 대우조선해양 인수 MOU에 맹활약 채정적 사장 지휘아래 분야별 최정예 변호사 15명 포진김승연 회장 변호사 직접 면접보며 법무실 육성 이끌어

2009-01-12     여은미
재계 순위 12위인 한화그룹에 낭보가 이어지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돼 실사작업이 진행 중이며, 이에 앞서 지난 8월엔 대한생명 인수를 둘러싼 예금보험공사와의 뉴욕 국제중재에서 이겼다. 또 그룹을 이끌고 있는 김승연 회장은 8월 15일 광복절을 기해 특별사면 및 복권됐다. 이른바 '북창동 사건'으로 불리는 김 회장의 폭행 사건도 말끔히 해결된 셈이다.

물론 한화의 이런 성과는 나름대로의 노력과 실적이 평가를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채정석 사장이 이끄는 그룹 법무실의 역할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변호사 6명 전담팀 꾸려

대우조선해양 인수건만 해도 법무실에 변호사 6명으로 전담팀이 꾸려져 외부 로펌과의 협력 아래 관련 업무를 빈틈없이 챙기고 있다. 또 대생 국제중재 승소나 북창동 사건의 수습은 법무실이 주무부서라고 할 만큼 법무의 비중이 높은 사안으로, 법무실이 주도적으로 나서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결과다.

과연 한화 법무실의 경쟁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빠른 성장만큼 대내외의 관심도 증폭되고 있다. 먼저 법무실이 탄생되게 된 배경부터 되짚어보자.

지금부터 3년5개월 전인 2005년 6월. 검찰에서 법무부 검찰4과장, 여주지청장 등을 역임한 채정석 사장이 법무실장을 맡아 부사장으로 부임하면서 법무실이 공식 발족됐다. 그 이전엔 사법연수원을 나온 젊은 변호사 1명이 직원 너댓명과 함께 구조조정에 관련된 일이나 간단한 송무관련 업무 등을 챙기는 정도였다. 이름도 법무실이 아니라 법제팀이었다.

그러나 그룹의 결정에 따라 구조조정본부 즉, 현재의 경영기획실에 법무실이 신설되고, 채 사장이 취임하면서 사내변호사 업무가 본격 가동되기 시작했다. 채 사장에 따르면, 김승연 회장의 지시에 따라 법무실을 발족하기 4년여 전부터 책임자를 물색하는 등 준비를 시작했다고 한다.

발족 4년 전부터 책임자 물색

대기업 그룹에서의 의사결정이 대개 그렇듯이 한화 법무실이 현재의 모습으로 발전하게 된 데는 특히 김승연 회장의 선견지명과 결심이 밑바탕이 됐다. 한화 관계자들에 따르면, 수많은 변호사가 포진하고 있는 외국 기업의 법무실 사례를 접한 김 회장이 법무 관련 부서의 대대적인 확장을 지시해 법무실 개편으로 이어지게 됐다는 것이다.

씨티그룹의 경우 1500명, GE엔 1000명의 사내변호사가 근무하고 있다는 것은 유명한 얘기이다. 또 삼성이 2004년 여름 법무팀을 법무실로 개편하고, 이종왕 변호사를 사장으로 영입하는 등 대대적인 법무실 확대 계획을 밝힌 것도 1년 후인 2005년 한화가 법무실을 발족하는 데 영향이 없지 않았을 지 싶다.

한화의 한 관계자는 "외국 유수의 기업처럼 내부에 법적 안전망을 갖추고, 해외진출을 원활하게 뒷받침하기 위해서도 상당한 규모의 사내 법무참모가 필요하다는 게 김 회장 등 한화 지휘부의 공통된 인식이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한화의 해외진출 의지는 김 회장이 11월 17일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관한 양해각서(MOU) 체결과 관련, 임직원들에게 보낸 특별메시지 내용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김 회장은 인트라넷을 통해 전달된 메시지에서 "10년후 그룹 매출 100조원과 해외 매출 비중 50%의 비전을 반드시 달성할 것"이라고 글로벌 기업 한화의 해외진출 의지를 다시한번 강조하고 있다.

김 회장은 법무실이 발족한 이후에도 신입변호사 채용 때 직접 면접에 참가하는 등 법무실의 발전에 각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채 사장 영입에 삼고초려 정성

서울남부지검 부장검사직을 사직하고, 변호사 업무를 준비하던 채정석 사장이 한화의 영입제의를 받아 한화행을 결정하기 까지의 얘기를 들어 보아도 한화가 대단한 결심으로 법무실 개설을 준비했음을 알 수 있다. 매제인 김동윤 당시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와 함께 두 사람의 성을 딴 'C&K 법률사무소'를 설립한 채 변호사는 처음엔 한화의 제의를 거절했다고 한다. 삼고초려(三顧草廬) 이상의 적극적인 제의를 받았으나, '검찰에 대한 바람막이 역할 정도를 생각해 영입하려는 것 아닐까'하고 거듭 거절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화와의 만남이 이어지면서 법무 기능을 중시하는 한화의 확고한 의지를 확인하고 합류하기로 뜻을 굳혔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법무실을 맡게 된 채 사장은 우선 인력확충부터 서둘렀다. 3개월 후 판사 출신의 김태용 변호사와 정상석 전 검사를 영입, 지휘부를 보강했다. 이어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신입변호사와 경력 변호사 등을 잇따라 충원, 3년만에 변호사 15명의 진용으로 법무실 조직을 강화했다.

올 2월 전무가 된 김태용 변호사는 12년간 판사로 근무한 경력의 소유자로, 서울고법 판사를 끝으로 법복을 벗고 한화에 합류하기 전 6개월간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합류했다. 조지 워싱턴대 로스쿨에서 방문교수(Visiting Scholar)로 연구한 경력도 있다. 채 사장을 도와 변호사들이 작성하는 여러 의견서를 마무리하는 데스크의 역할을 맡고 있다.

정상식 변호사도 올 2월 상무로 승진했다. 채 사장의 검찰 후배로, 인천지검 특수부 등에서 일선 검사로 활약한 데 이어 법무부 기획관리실 근무를 끝으로 한화 법무실의 일원이 됐다. 노동, 공정거래, 세무 등에 특히 밝으며, 검찰에서의 경험을 살려 후배들을 돕고 있다.

말하자면 채 사장의 지휘 아래 중견 판, 검사 출신이 각각 1명씩 포진해 후배들을 지휘하는 허리역할을 해 내고 있는 것이다.

워시번대 J.D. 출신 박준희 상무 합류

한화는 최근 뉴욕주와 워싱턴 D.C. 변호사인 박준희 상무를 영입, 국제분야를 보완했다. 박 상무는 미 튤레인대 LL.M.(법학석사)을 거쳐 워시번대에서 J.D.(법학박사)를 땄으며, 미국의 Malony & Burch 법률사무소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국제관계법에 관한 자문이 그의 텃밭이다.

또 사법시험 합격에 이어 미 듀크대 로스쿨과 펜실베니아대 로스쿨에서 법학석사를 한 김중원 변호사와 유명백화점 경영기획실에 근무하다가 사직한 후 사법시험에 도전해 변호사가 된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의 김태형 변호사, 한국외대 통역번역대학원 한중과를 나와 중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김수현 변호사 등 일당백(一當百)의 전문가들이 법무실에 포진하고 있다.

여기에다 한화건설, 한화무역, 한화증권 등 계열사에 배치된 5명의 변호사를 더하면 모두 20명의 변호사가 법무실을 중심으로 하나가 돼 그룹 전체의 법무수요를 감당하고 있는 셈이다. 법대를 나온 전문 인력을 포함하면, 한화의 법무 관련 인력은 약 100명으로 늘어난다.

이와 관련, 채 사장의 엄격한 인재선발 방침도 주목을 끌고 있다. 그는 검찰에 있을 때 전국 검사의 인사를 담당하는 법무부 검찰1과의 담당검사를 3년간 역임한 이 분야의 전문가로, 그의 인사관은 한마디로 연고를 배제한 실력위주 선발로 요약된다.

채 사장은 "아는 사람, 학연, 지연 등을 따지다 보면, 뽑아 쓸 수 있는 인재의 풀(pool)이 그만큼 좁아들 게 마련"이라며, "오로지 실력을 따져 변호사를 채용한다"고 법무실의 인사방침을 분명하게 이야기했다.

연고배제 실력위주 선발 주효

채 사장이 법무실장으로 오게 된 것도 한화의 이런 인사방침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채 사장은 한화 법무실에 오기까지 자신을 최종 낙점한 김승연 회장과 일면식도 없었던 사람이다. 채 사장은 나중에 얘기를 들었다며, 한화에서 법무실장 후보를 물색할 때의 영입요건을 소개했다.

그에 따르면, 법무실을 확대 개편하기로 방침을 굳힌 한화에선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의 법조인으로 ▲법조에서 신망이 두터워야 하며 ▲판사 출신 보다는 검사 경력 20년 정도의 검찰 출신에 비교우위를 놓고 후보자를 물색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스펙에 채 사장이 낙점돼 한화의 초대 법무실장을 맡게 된 것이다.

그는 "3년간 검사 인사를 담당해 본 인사분야의 경험자로서 연고를 배제하는 한화의 이런 인사방침에 이끌렸던 것도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서울 장교동의 한화빌딩 25층의 채 사장 사무실엔 '한화 그룹의 인재상'이 액자에 담겨 걸려 있었다. ▲신의를 지키는 사람 ▲창의와 열정을 갖고 도전하는 사람 ▲맡은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성을 지닌 사람 ▲국제적인 감각과 능력을 갖춘 사람이 바로 그것이다.

그룹의 법무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법무실의 업무량은 엄청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법무실의 한승관 과장에 따르면, 일정금액 이상의 계약이나 중요한 프로젝트 등은 법무실의 검토 의견을 받도록 그룹 전체에 내부 방침이 서 있다고 한다. 물론 법무실에선 정식으로 의견서를 제공하며, 법무실에서 'No'라고 한 사안이 그대로 시행되는 경우는 없다.

3년 5개월간 의견서만 1400건

법무실이 발족된 이후 3년 5개월간 이런 방식으로 법무실의 검토를 받은 사안 중 문서로 남은 것만 약 1400건. 기자가 찾은 법무실 내의 한 회의실엔 이들 문서철이 빼곡히 비치돼 있었다.

상당한 노하우가 축적된 한화 법무실은 그동안 처리한 수많은 사례를 모아 케이스별로 업무 매뉴얼을 만드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물론 사람이 바뀌더라도 업무처리의 연속성을 유지해 업무효율을 높이자는 취지이다. 또 계열사별로 100개가 넘는 표준계약서도 내년 7~8월 완성을 목표로 한창 정비작업이 진행 중이다. 요컨대 발족 4년째를 맞아 업무 체계를 더욱 시스템화하는 방향으로 법무실을 또 한번 업그레이드하고 있는 것이다. 업무 매뉴얼과 표준계약서 정비는 다른 기업의 법무실 등에서도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어 더욱 주목되고 있다.

한화 법무실의 빠른 발전과 관련, 또 하나 지적할 것은 채 사장이 특히 강조하고 있는 사업부서와의 긴밀한 연계와 업무 협조를 위한 노력이다. 채 사장이 틈만 나면 "소극적인 법률서비스 제공에서 끝날 게 아니라 사업내용을 이해해 가며 초기단계부터 함께 동참하는 법무실이 돼야 한다"고 직원들에게 역설하고 다닌다고 법무실 관계자가 전했다.

채 사장 스스로도 이를 솔선해 실천하고 있다. 한화에서 법무실장은 원래 독립성이 보장되는 자리로, 다른 부서로부터 간섭이나 지시를 받는 위치가 아니라고 한다. 채 사장은 그러나 매주 화요일 오전 경영기획실장이 주재하는 회의에 자진해 참석하고 있다. 이 회의엔 기획팀장, 인사팀장, 재무팀장 등 대개 부사장, 전무 등인 경영기획실의 팀장들이 참석한다.

채 사장은 "원래 참석 대상이 아니었지만, 사업부서와 긴밀하게 연계해 일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 부임한 지 1달 지나 회의 참석을 요청했다"며, "그룹 전체의 업무를 파악할 수 있고, 사업부서와 교감을 높일 수 있어 참석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경영기획실 회의 자진 참석

계약서 작성과 검토 등 일반적인 예방법무 활동과 경영지원, 회사 업무와 관련해 중요 소송 등이 발생했을 때 외부의 변호사를 선임해 대응하는 송무 관련 업무 등을 총괄하는 한화 법무실에선 윤리·준법경영에 대한 감시기능도 담당하고 있다. 특히 내년엔 윤리·준법경영을 한화의 경영문화로 정착시키자는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이를 위해 내년 초에 5~6명의 변호사를 더 충원한다는 게 채 사장의 복안. 지난 7월 1일자로 사장으로 승진한 그는 법무실 발족 5년째를 맞아 또 한번의 드라이브를 준비하고 있다.

글 김진원 기자(jwkim@legaltimes.co.kr)ㅣ 사진 지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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