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체 법무팀 탐방]한국IBM 법률고문실

직원은 내부고객…사내로펌식 운영 인기프로젝트성 일보다 계약 협상 등 일상적 업무 많아윤리교육, 입법개선 활동도…총체적 해결사 역할 수행

2008-07-04     여은미


한국IBM의 상임법률고문으로 있는 데이빗 워터스(David Waters) 미국변호사는 지난해 9월 중국 북경에서 열린 IBM의 아시아 · 태평양 변호사회의에 다녀왔다.

같은 법률고문실의 안윤희, 신종은 미국변호사도 함께 이 회의에 참석했다. 이틀간의 신입 변호사 오리엔테이션을 포함해 4일간의 일정으로 진행된 북경 회의는 아시아 · 태평양 지역의 각 나라에 흩어져 있는 IBM의 변호사들이 얼마나 유기적인 연계 아래 업무를 수행하는지를 잘 말해준다. 거의 매년 개최지를 바꿔가며 열리고 있는 이 회의는 각 나라에 흩어져 법률업무를 수행하는 IBM의 변호사들이 다양한 경험과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매우 유익한 행사로, 참가 변호사들 사이에서도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해 열린 북경 회의만해도 아시아 · 태평양 지역의 IBM 변호사 70여명 중 60명 정도가 참석하는 성황을 이뤘다.

미 본사에만 변호사 600명

세계 최대의 IT 서비스 및 컨설팅 회사라고 할 수 있는 IBM은 막강한 사내 법무조직을 운영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미국 본사에 상주하는 변호사만 약 600명. 같은 IT 기업인 MS나 HP보다도 사내변호사가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67년에 설립된 한국 IBM엔 5월말 현재 4명의 미국변호사와 2명의 한국변호사가 포진하고 있다. 법률고문실을 이끌고 있는 워터스 전무의 지휘 아래 안윤희, 신종은, 이상길 미국변호사와 하형인, 정인호 변호사가 분야를 나눠 2007년 1조900억원의 매출을 올린 한국 IBM의 법무 분야를 물샐틈없이 뒷바라지 하고 있다. 하형인 변호사는 잠시 검사로 근무한 경력도 있다. 법무법인 광장에서 6년간 근무한 후 IBM에 합류했다. 또 정인호 변호사는 지금은 법무법인 화우로 합친 법무법인 김 · 신 · 유와 LG생활건강 법무팀에서 경력을 쌓았다.

미국변호사들도 경력이 화려하다. 워터스 전무는 워싱턴에 있는 로펌을 거쳐 김&장 법률사무소에서 4년간 회사법 분야의 전문변호사로 근무했다. 미국인으로 서울대 법대에 편입해 한국법을 공부했으며, 한국말도 유창하게 구사한다. 미 콜롬비아대 로스쿨에서 J.D.를 했다. 안윤희 미국변호사는 미 인디애나대 로스쿨 J.D. 출신이다. 신종은 미국변호사는 중학교 2학년때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조지 워싱턴대 로스쿨(J.D.)을 나왔다. 또 고려대 법대 출신의 이상길 변호사는 GS칼텍스의 법무팀 등에서 10년간 근무한 경력의 소유자로, 국내에 개설된 노스 웨스턴대 로스쿨 LL.M. 1기생이다.
계약전문가 7명 포진

이 외에 7명의 계약전문가와 상표 및 라이센싱 전문가, 패러 리걸 등 적지않은 수의 전문인력이 변호사들과 함께 탄탄한 팀웍을 이뤄 업무를 뒷바라지 하고 있는 점도 IBM 법률고문실의 특징. 한 관계자는 "로펌이 아닌 법무팀의 조직 특성상 변호사 자격 여부를 떠나 개개의 전문가들이 분야별로 업무를 나눠 처리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법률고문실 전체의 시너지를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업무는 갈수록 늘고 있다고 한다. IBM의 고객사들이 전에는 가격을 제외하면 대개 IBM이 제시하는 대로 계약을 맺고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입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갈수록 요청사항이 늘고 있어 협상수요가 적지 않다고 한 관계자가 설명했다. 또 고객사들이 직접 변호사를 고용해 협상에 나섬에 따라 IBM측으로서도 사내변호사 채용 등 법률고문실을 확대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게 IBM측의 설명이다.

IBM 법률고문실은 이원조 미국변호사가 법률고문으로 있던 2000년을 전후해 규모를 본격 확대해 왔다. 기업체 사내변호사들의 모임인 인하우스카운셀포럼(IHCF) 초대 회장을 지내기도 한 이원조 변호사가 97년 4월부터 7~8년간 한국 IBM 법률고문실을 이끌었다. 이석우 NHN 부사장과 정연욱 NHN 법무실장 등도 전에 IBM 법률고문실에서 사내변호사로 활약한 경력이 있다. IBM은 이원조 변호사 이전에도 이진우 변호사 등이 사내변호사로 활동했을 만큼 국내에 진출한 외국 기업 중에서도 일찌감치 사내변호사 제도를 도입해 활발하게 운영해 온 회사로 손꼽히고 있다.

이원조, 이석우 변호사도 IBM 출신

법률고문실 관계자들에 따르면, 굵직굵직한 프로젝트성 일보다는 계약 협상 등 일상적인 일이 업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영업부서와 함께 계약 협상에 나서고, 계약서 검토와 작성 등의 일을 지원하는 게 법률고문실의 주된 업무라고 할 수 있다.

IBM 법률고문실이 조선장 차장 등 계약전문가만 7명을 확보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이 분야의 일이 많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조 차장은 LG전자 법무팀에서 6년간 근무한 이 분야의 베테랑으로, "단지 법적 이슈에 대한 조언을 넘어 딜(deal) 전체의 전반적인 구조를 파악해 협상전략을 펴는 방향으로 영업부서를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 차장은 또 "법무라고 하니까 흔히 후방 지원부서 쯤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IBM 법률고문실은 고객사를 직접 방문해 협상하는 등 최전방에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IBM이 고객사와 맺는 아웃소싱 서비스 계약과 같은 경우를 보면, 법률고문실의 역할을 잘 알 수 있다. 고객사가 막대한 비용을 IBM에 지불하고 전산실 운영 등을 IBM에 위탁하는 경우로, IBM 법률고문실의 역할도 더욱 중요해질 수 밖에 없다.

신종은 미국변호사는 "장기계약의 특성상 고객들이 계약서를 보다 꼼꼼하게 검토하며, IBM에 대해서도 많은 요구사항을 제시하는 게 보통"이라고 소개했다. 고객사들의 공통된 요구 중 하나는 IBM의 계약서가 길고 복잡하다는 지적. 신 변호사는 이런 점을 납득시키느라 애를 먹을 때가 한, 두번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영미의 계약서는 가급적 구체적인 내용을 모두 담아 상세하게 마련하는 게 보통"이라며, "IBM의 계약서도 관련 내용을 세세하게 적시하는 이런 방식을 따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하나 계약 내용 중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손해배상 조항도 법률고문실 관계자들이 역점을 두고 설득에 나서는 대목이다. 안윤희 변호사는 "IBM의 잘못으로 고객사에 손해가 발생해도 IBM이 무한대의 책임을 지는 게 아니라 IT 서비스의 특성상 일정 범위로 제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고객사들에 대한 설득은 대개 법률고문실의 몫"이라고 소개했다. 안 변호사는 "IT회사들이 왜 무한대의 책임을 부담할 수 없으며, 손해배상을 제한하는 게 합리적인지 고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한다"며, "법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해당 거래의 특성을 고려해 고객이 우려하는 내용을 먼저 이해시키고, 양 당사자가 함께 이익을 볼 수 있는 win-win 솔루션을 제시하는 방법으로 협상에 임하고 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마케팅, 광고, 고개관리 등도 관여

이 외에도 법률고문실은 마케팅이나 광고, 고객관리 등 안 걸리는 데가 없을 정도로 폭넓게 회사 업무에 관여한다. 워터스 전무는 "관련 업무마다 어떤 법적인 이슈가 있고, 그 해결방안은 무엇인지 솔루션을 찾아 일선 사업부서에 제공하고 있다"며, "일선 부서에서 관련 문제에 대한 해석 등을 먼저 요청해 오는 경우도 많다"고 얘기했다. 하형인 변호사는 "고객이 누구이냐에 따라 검토사항도 달라지게 된다"며, "공무원이 관련된 경우 공무원윤리강령 등까지 조사해 의견을 제시한 적도 있다"고 소개했다.

또 공정거래법 이슈를 분석하고, 경쟁사나 협력업체와 관련해서도 법적인 검토를 수행해야 함은 물론 2600명에 이르는 한국 IBM 직원들의 노동법 관련 이슈도 법률고문실의 단골 업무 중의 하나다. 이상길 미국변호사는 "인사 문제와 관련해 아직 소송으로 비화된 게 없을 만큼 IBM의 인사관리가 앞서 있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얼마전 IBM 법률고문실은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속칭 정통망법)'의 운용과 관련한 의견서를 백서로 만들어 정부와 FTA 협상단, 주한미상공회의소(AMCHAM) 등에 제공한 적이 있다. 개인정보의 이용과 관련, 매번 이용자의 동의를 받도록 하고 있는 관련 법규정을 현실성있게 운용했으면 좋겠다는 내용의 의견서로, 법률고문실이 IBM의 비즈니스와 관련해 관련 규정의 운용 등 사업여건 조성에까지 나서고 있다는 단적인 예다.

한마디로 회사의 성공적인 사업수행을 목표로, 총체적인 해결사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고 할까. 법률고문실 관계자는 "얼마 전부턴 예방법무의 기능을 더욱 강화해 직원들을 대상으로 윤리경영 등에 대한 교육도 더욱 늘렸다"고 소개했다. 윤리교육 강화는 2004년에 있었던 IBM 직원의 이른바 '뇌물사건' 이후 더욱 중시되고 있으며, 제품과 서비스 판매자들에 대한 교육도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미국 본사 법률고문실의 운영방침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IBM의 경우 영업 등 사업부서 직원들을 일종의 고객(client)으로 보고, 이들이 만족할 수 있는 수준높은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내부고객 중심 서비스'를 모토로 하고 있다. 흔히 로펌에 일하는 변호사들만 고객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IBM 법률고문실에선 회사 내부의 영업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을 고객으로 부르며, 이들이 만족할 수 있는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신종은 변호사가 설명했다. 신 변호사에 따르면, 미국 본사 법무팀의 경우 '내부고객 서비스 위원회(client service committee)'를 구성해 주기적으로 내부고객 서비스의 문제점을 검토해 개선하고 있을 정도다. 이 위원회에선 내부고객의 '피드 백(feed back)'을 들어 개선에 나서고, 중요한 외부 고객사에 대해선 이 고객과의 거래를 전담할 변호사를 지정하는 등 내부 고객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여러 방안을 연구한다고 한다. 이러나 내부고객 서비스 노력은 IBM이 진출해 있는 각 나라별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우수 사례를 발굴, IBM의 데이터 베이스를 통해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IBM 법률고문실로 즉각 전파됨은 물론이다.

변호사 멘토링 프로그램도 운영

또 시니어 변호사와 주니어 변호사를 서로 연결시켜 시니어 변호사가 주니어 변호사를 이끌고 도와주는 일종의 멘토링(mentoring)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점도 다른 회사에선 쉽게 찾아보기 힘든 IBM의 특징. 특히 한국 IBM 차원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 있는 IBM 변호사를 멘토로 연결시켜 보다 다양한 시각에서 글로벌 법무팀의 멤버로 합류할 수 있게 해 주는 게 강점이다. 정인호 변호사는 "사내변호사를 단순한 후방 참모쯤으로 생각해선 곤란하다"며, "수임료만 받지 않을 뿐, 일종의 사내로펌처럼 운영하고자 하는 게 IBM의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글 김진원 기자(jwkim@legaltimes.co.kr) l 사진 지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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