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 한밤에 도로에 누워있던 사람 치어 사망…운전자 무죄

[대구지법] "이례적인 상황 예견 어려워"

2023-06-04     김덕성

A(29 · 여)씨는 2020년 6월 24일 오후 10시 52분쯤 아반떼 승용차를 운전하여 경북 의성군 봉양면에 있는 편도 2차로 도로를 2차로를 따라 제한속도인 시속 64㎞를 약 6㎞ 초과한 시속 약 70㎞로 진행하다가 1차로와 2차로 사이에 누워있던 B(23)씨를 치고 그대로 달아난 혐의(특가법상 도주치사)로 기소됐다. B씨는 같은 날 오후 10시 58분쯤 머리 부위 손상 등으로 현장에서 사망했다.

대구지법 형사3-1부(재판장 김경훈 부장판사)는 그러나 5월 23일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사고에 관하여 피고인에게 업무상 과실이 있다거나 설령 과실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과 사고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판시, A씨에게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한 1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2022노2074). 안형진 변호사가 A씨를 변호했다.

재판부는 먼저 대법원 판결(85도833 등)을 인용, "자동차의 운전자는 통상 예견되는 사태에 대비하여 그 결과를 회피할 수 있는 정도의 주의의무를 다함으로써 족하고 통상 예견하기 어려운 이례적인 사태의 발생을 예견하여 이에 대비하여야 할 주의의무까지 있다고 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또 "도로를 운행하는 운전자는 상대방 교통관여자 역시 제반 교통법규를 준수할 것을 신뢰하고 이러한 신뢰에 기초하여 운행을 한 이상 그 운전자에게 업무상 주의의무 위배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대법원 2002도4134 판결 등 참조)"고 밝혔다.

재판부는 "사고 장소는 의성읍에서 봉양면으로 가는 5번국도(경북대로)인데, 자동차전용도로는 아니지만 편도 2차로, 왕복 4차로 도로로서 상당히 넓었고, 도로 가운데에는 중앙분리대까지 설치되어 있는 등으로 인하여 사람의 횡단을 예상하기는 어려운 곳이었다"며 "그런데 피해자는 한밤에 그와 같은 편도 2차로 도로의 중간인 1차로와 2차로에 걸쳐 누워있었는바, 피고인으로서는 사고 당시 그와 같은 이례적인 상황을 예견하기는 어려웠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재판부에 따르면, 사고 발생 시간은 22:52경으로서 한밤이었고, 사고 장소에는 가로등이 설치되어 있지 않는 등 시야를 확보할 수 있는 조명이 전혀 없었다. 당시 비가 내리는 등의 기상상황으로 인해 달빛 등 자연광도 없었다. 피해자의 의복은 상의는 밝은 계통의 색(밝은 회색)이었으나 하의는 어두운 계통의 색(진한 남색)이었다. 재판부는 따라서 "당시 피고인이 사고를 회피하기 충분한 거리에서 피해자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았음을 예상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또 "피고인은 제한속도인 시속 64㎞(이 사건 도로의 제한속도인 시속 80㎞에서 비가 내려 노면이 젖어 있었음에 따른 20/100 하향)를 초과하여 시속 약 70㎞의 속도로 주행하기는 하였으나, 초과한 속도가 시속 약 6㎞에 불과한데다가, 법원의 도로교통공단에 대한 사실조회회신에 따르면 설령 피고인이 제한속도인 시속 64㎞를 준수하였다고 하더라도 제동장치의 조작을 통한 사고 회피 가능성은 없었다고 봄이 상당하다"며 "특히 이 사건에 있어 피해자는 보행 중이 아니라 누워 있었고 또 하의가 어두운 색이었으므로, 가시거리가 약 37m 보다 더 짧았을 것임이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아무런 외부 조명이 없는 한밤에 피고인 차량과 같은 종류의 차량이 전조등 중 하향등을 켰을 경우, 운전자가 백색 의복을 착용한 보행자를 사람으로 인식할 수 있는 가시거리는 약 37m이다. A씨는 사고 당시 하향등을 켜고 운전했다.

재판부는 "도로의 1차로 쪽에는 중앙분리대가, 2차로 쪽 진행방향 앞부분에는 가드레일이 설치되어 있어 피해갈 수 있는 공간이 충분하지 않았던 점과 사고 장소에 아무런 외부 조명이 없었음에 따라 운전자로서는 도로 밖 공간의 상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던 점을 고려하면, 피고인이 순간적인 조향장치 조작을 통해 피해자를 피해갈 것을 기대할 수도 없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