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 "부하 사망사고 16년 뒤 극단적 선택한 예비역 장교…보훈보상대상"

[대법] "죄책감 등 직무상 스트레스로 조현병 발병 · 악화"

2022-11-04     김덕성

부하 병사의 사망사고로 조현병을 앓다가 사고 뒤 약 16년이 지나 극단적 선택을 한 예비역 장교가 대법원까지 가는 소송 끝에 보훈보상대상자로 인정받게 되었다. 

대법원 제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9월 29일 극단적 선택을 한 예비역 장교 A씨의 배우자가 "보훈보상대상자 요건 비해당결정처분을 취소하라"며 지방보훈지청장을 상대로 낸 소송의 상고심(2022두43672)에서 이같이 판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보냈다. 법무법인 율립이 원고를 대리했다.

1999. 4. 5. 군에 입대하여 1999. 7. 1. 육군소위로 임관, 근무하던 A는, 포병대대 근무 당시인 2001년 8월 4일 같은 부대 소속의 부하인 병장이 부대 내에서 쇠기둥을 절단하는 작업을 하다가 넘어지는 쇠기둥에 머리를 부딪혀 두부 골절상을 입는 사고로 사망한 이후 죄책감 등에 시달리다가 조현병이 발병해 2010년부터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육군미사일사령부는 2015. 7. 14. A의 상병을 공무상병으로 인정하였고, A는 2015년 9월 30일 공상으로 전역했으나, 사고 후 약 16년이 지난 2017년 1월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에 A씨의 배우자가 지방보훈지청에 국가유공자 등록을 신청했으나, 국가유공자와 보훈보상대상자에 비해당된다는 결정을 받자 보훈보상대상자 비해당결정을 취소하라며 소송을 냈다.

1심과 항소심 재판부가 "A는 2001. 8. 4. 부하가 사망한 이후 스트레스를 받고 망상을 겪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이기는 하나, A가 진료받기 시작한 것은 2010년경으로 위 사망사고만이 독립적으로 A의 조현병 발병의 원인이 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원고의 청구를 기각, 원고가 상고했다.

대법원은 종전 대법원 판결(2017두47885 등)을 인용, "「보훈보상대상자 지원에 관한 법률」(보훈보상자법) 제2조 제1항 제2호의 '국가의 수호 · 안전보장 또는 국민의 생명 · 재산 보호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직무수행이나 교육훈련 중 상이(질병을 포함한다)'에 해당하기 위하여서는 위와 같은 직무수행이나 교육훈련과 그 부상 · 질병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어야 하고, 그 직무수행 등과 부상 ·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에 관하여는 이를 주장하는 측에서 증명하여야 한다"고 전제하고, "그러나 이는 반드시 의학적 · 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고, 규범적 관점에서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경우 증명이 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밝혔다. 또 "평소에 정상적인 근무가 가능한 기초질병이나 기존질병이 직무상의 원인으로 자연적인 진행속도 이상으로 급격하게 악화된 때에도 그 증명이 있는 경우에 포함된다(2018두32125 판결 등 참조)"고 밝혔다.

대법원은 "A는 부하 병사의 사망 당시 근무를 바꿔주지 못한 것에 관한 죄책감, 상급자로부터 받은 스트레스, 근무지 이동에 따른 적응의 어려움 등 주로 군복무와 관련된 직무상 스트레스만을 호소하였을 뿐, 경제적 사정이나 다른 환경적 요인들에 관한 어려움을 호소한 사정이 발견되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이 사건 상병은 A의 군복무 중 발생한 부하 병사의 사망사고에 대한 죄책감 등을 비롯한 직무상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질환적 소인이 악화되어 발병하였거나 자연 경과 이상으로 악화되었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므로, A의 직무수행과의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A는 임관하기 전까지 건강상태가 양호하였고 별다른 정신질환 증세가 없었으며, 가족력도 확인되지 않는다"며 "A는 임관 후 2년 동안 정상적으로 복무하던 중 발생한 부하 병사의 사망사고라는 명확한 외적 스트레스 요인을 겪으면서 조현병 증상이 발생하거나 촉발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조현병의 진행경과는 환자마다 매우 다양하고, 2010년경 심리평가 결과에서도 A에게 뚜렷한 사고장애는 보이지 않는다고 분석된 사실에 비추어 보면, A가 2010년경까지 복무하면서 표창 등을 받은 사정 혹은 부하 병사의 사망사고와 이 사건 상병의 최초 진단일 사이에 상당한 시간적 간격이 존재한다는 사정 등의 사유만으로는 부하 병사의 사망사고라는 A의 직무상 경험과 이를 전후하여 계속된 업무상 부담과 긴장 등 과도한 스트레스 요인이 이 사건 상병과 무관하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2010년경부터 시작된 치료를 의료진의 권유 없이 임의로 중단하여 증상이 악화된 것으로 볼 여지가 있으나, 이는 A에게 이미 이 사건 상병이 발병한 이후의 사정으로, 치료의 중단이 A의 증상 악화에 전적으로 기여하였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