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배] "지하철 승강장서 술취한 장애인 전동차에 부딪혀 사망…지하철 공사 책임 없어"

[부산지법] "안전펜스, 상시 안전요원 없어도 잘못 없어"

2006-08-28     김진원
안전펜스나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지 않은 지하철 승강장에서 전동차를 기다리던 술취한 장애인이 안전선을 넘어 선로쪽으로 걸어가다가 진입하는 전동차에 부딪혀 사망했더라도 지하철 운영공사측엔 책임이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부산지법 민사6부(재판장 이승호 부장판사)는 지난 8월11일 숨진 장애인 김모씨의 부모가 승강장 관리주체로서 여러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아 사고가 났으니 1억8천여만원의 손해를 배상하라며 부산교통공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2006가합3625)에서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선천성 뇌성마비로 인하여 양쪽 다리를 절고 왼쪽 팔을 잘 움직이지 못하는 지체 장애 2급의 장애인으로 보험설계사로 근무하고 있던 김씨는 지난해 부산지하철 1호선의 한 역 승강장에서 술에 취한 채 전동차를 기다리던 중 역내로 진입하는 전동차가 정차하기 전에 안전선을 넘어 선로쪽으로 걸어가다가 진입하는 전동차 앞면 우측 유리에 머리를 부딪혀 숨졌다. 사고가 난 시각은 퇴근시간이 지나 승객이 줄어든 시간이었다.

재판부에 따르면 사고 당시 전동차의 기관사는 김씨가 약 60m 전방에서 안전선 바깥으로 나오는 것을 발견하고 전조등을 점멸하면서 비상기적을 울림과 동시에 비상제동조치를 취했으나 충돌을 피하지 못했다.

또 피고측은 사고 무렵 승강장에 공익근무요원 2명을 배치해 1시간마다 20분~30분 동안 역사순찰을 실시하도록 하였고, 역 구내에 CCTV 카메라 25대를 설치하고 고객안내실에 CCTV 모니터 6대를 설치하여 승강장 등 취약지역을 감시해 왔으며, 사고 방지를 위한 제반표지가 설치 · 관리돼 있었다.

안전펜스나 스크린도어는 따로 설치돼 있지 않았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지하철역의 전반적인 운영 상황 등을 고려할 때, 피고로 하여금 반드시 승강장마다 안전요원을 상시 배치하도록 할 의무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고, 전동차를 이용하는 승객들에게는 안전선을 지키고 안내방송 등의 안전조치에 따라 스스로 위험을 방지하도록 주의할 것이 기대되는 점 등에 비춰 볼 때 당시 피고가 승강장에 상시 안전요원을 배치하지 아니한 것이 사고방지조치로서 불충분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스크린도어나 안전펜스 중 하나만 설치하도록 되어 있고 반드시 스크린도어를 설치하도록 하고 있지 아니한 도시철도건설규칙 규정 등에 비춰 설치비용이 과다한 것으로 보이는 스크린도어를 설치하는 것이 전철역 승강장이 통상 갖추어야 할 안전조치의 범위 내에 있다고 보기는 어렵고, 다만 승강장 추락사고의 위험이 상존하는 현실에서 승강장 관리자로서는 추락사고를 방지하기 위하여 적어도 안전펜스는 설치해야 하는 것으로 볼 여지는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러나 "김씨가 술에 취한 채 전동차가 정차하기도 전에 전동차에 접근하려다 중심을 잃고 전동차에 부딪힌 것으로 보여지므로, 사고가 난 승강장에 안전펜스가 설치되어 있었다고 하더라도 사고를 방지하지는 못하였을 것으로 판단돼 피고가 안전펜스를 설치하지 아니한 것과 사고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또 "사고 당시 CCTV 카메라로 역 구내의 승객상황을 파악하던 역 직원이 비록 승강장 안전선 밖으로 나간 김씨를 발견했다고 하더라도 경고 방송을 하거나 이를 제지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것으로 보여지고, 김씨가 당시 술에 만취돼 지하철 이용이 불가능하였던 사정이 있었다거나 피고가 이러한 사정을 미리 파악할 수 있었던 점을 인정할만한 증거도 없으므로, 피고에게 취객 등 안전사고를 유발할 자를 미리 발견하고 적절하게 조치를 취하지 못한 잘못이 있다고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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