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섭 교수가 조명한 '가인의 삶과 행적'

"법제-사법-입법-윤리한국의 네 기둥 세워"

2017-12-01     김정덕
가인(街人) 김병로만큼 한국 사법사에 업적과 영향을 남긴 인물이 있을까. 최근 가인의 법률가로서의 행적과 삶을 추적해 조명한 "가인 김병로"를 출간한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그를 일러 '한국 사법의 창조주'라고 평하는 것도 지나친 것이 아니라고 했다. 한 교수의 표현에 따르면, 가인은 법률가로서 식민지하에서는 법학도를 가르친 교수였고, 항일애국자들에 대해 무료변론을 도맡았던 변호사였으며, 미 군정기에는 법무사법의 기틀을 만들어낸 사법부장이며, 정부수립 이후엔 첫 대법원장으로 사법부 독립의 초석을 놓았고, 청렴강직한 법관상을 구현한 주인공이다.

한 교수는 "민주독립국가에 어울리는 기본법률의 초안들은 그의 불식지공의 정성으로 빚어낸 것"이라며 "이렇듯 그는 대한민국의 법제-사법-입법-윤리의 네 기둥을 세웠고 그 영향이 여전히 살아있다"고 했다.

'평전' 이름 안 붙여

본문만 약 90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이 책은 평전의 형식으로 탈고되었으나, 저자는 섣불리 비평하려 하지 않았기에 '평전'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고 했다. 물론 "가인 선생의 여러 면모를 있는 그대로 그리고자 했다"며 "2차 가공자료보다는 원자료에 충실하고자 애썼다"고 적었다.

가인의 위대함을 가늠해볼 수 있는 여러 내용 중 다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은 가인에 대한 평가에 늘 따라다니는 '청렴 · 강직'의 모습이다. 저자는 "김병로가 즐겨 쓴 휘호 중의 하나는 '지공무사(至公無私)'였다"며 "통상 '선공후사(先公後私)'라는 말을 쓰는데, 가인의 지공무사는 선공후사보다 훨씬 엄격한 공적 자세를 상징한다"고 풀이했다.

다음은 고재호 대법관의 회고. 언젠가 추운 겨울날 초등학교 2학년인 손자에게 대법원장 차를 태워준 운전기사는 대법원장으로부터 호통을 들어야 했다. "이 사람아, 이 차가 대법원장 차이지, 대법원장 손자 차인가?"라고.

이러한 대법원장을 모시고 있는 대법관이나 법원행정처 당국의 고충은 말이 아니었다고 한다. 대법관들은 출퇴근마저도 지프차 2, 3대를 돌아가면서 탔고, 지방법원 순회재판 판사들은 산간벽지에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재판해야 했다.

버스 타고 다니며 순회재판

저자는 이승만 정권기, 그중에서도 김병로의 대법원장 재임기(1948. 8.~1957. 12.)에는, 사법부의 독립이 제대로 지켜졌고, 사회적으로도 존중되었다며 가인의 그러한 공적이 가능했던 배경으로 먼저 김병로 자신의 무게감을 꼽았다.

저자는 "사법권 독립은 절대 행정부, 대통령에 의해 하사되는 것이 아니고, 일차적으로 대법원장과 사법부, 거기다 국회, 여론과 국민들이 합심하여 수호해야 할 가치"라며, "누구도 가인의 후광과 모범을 충족시킬 수는 없을지 모르지만, 오늘날은 개인적 카리스마 대신 합리적인 제도와 구성원들의 합치된 노력으로 성취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재 기자(eunjae@lega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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