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최대 로펌의 위기 타개방법

[김종길 변호사]

2017-02-07     김정덕
2003년 대만 최대 로펌인 Lee & Li(理律)에서 사스(SARS)와 함께 그 해 10대 뉴스로 선정된 전대미문의 사건이 발생했다. 패러리걸인 류웨이제(劉偉杰)가 고객인 SanDisk로부터 위탁받아 보관중이던 주식을 매각하여 판매대금 30억 9000만 NT달러(미화 약 9200만 달러)를 횡령해 해외로 도주해버린 것이다.

Lee & Li는 1940년대 상해에서 주로 섭외 법률업무 분야에서 활약했던 리저민(李澤民, James Lee)과 리차오녠(李潮年, C. N. Li) 두 변호사가 대만으로 옮겨간 후에 설립한 로펌으로, 2003년 당시 변호사 82명, 직원 500명 규모로 아시아권 최대 규모 로펌 중 하나였다. Lee & Li의 고객인 미국의 SanDisk는 대만내 협력업체인 롄화전자(聯華電子)의 주식 127,800,000주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Lee & Li에 주식을 위탁보관시켰다. 이들 주식의 매입원가는 미화 8330만 달러이고, 2003년 9월 말 종가로 계산하면 시가는 미화 1억 600만 달러에 달했다.

2003년 변호사 82명

2003년 10월 13일 아침 Lee & Li의 당시 매니징 파트너인 천창원(陳長文,C. V. Chen)은 9월 말까지 근무하고 10월부터 무급휴직에 들어간 입사 14년차 패러리걸 류웨이제가 SanDisk와의 위임계약상 허점을 이용하여, 보관중인 롄화전자의 주식을 몰래 매각하고, 그 매각대금 30억 9000만 NT달러를 횡령한 사실을 발견했다. 류웨이제는 10월 9일 이미 옛 동성애 애인인 황스화(黃室華)의 여권을 사용하여 홍콩으로 달아난 뒤였다. 10월 10일은 대만의 공휴일이고, 10월 11일과 12일은 주말이어서, 10월 13일에서야 비로소 이런 사실이 발각된 것이다.

변호사책임보험 미가입

로펌의 파트너 변호사는 로펌의 채무에 대하여 무한책임을 부담해야 하므로, Lee & Li의 파트너 변호사들은 이 사건으로 인하여 모든 재산과 명성 그리고 지위를 잃게 될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다. 게다가 당시에는 아직 변호사책임보험에도 가입되어 있지 않았다. 로펌에서 책임준비금으로 적립해놓은 자금이 1억 NT달러(약 300여만 달러) 이상이었지만, 천문학적 배상금액에는 턱도 없이 부족했다.

파산 대신 배상 선택

당시 Lee & Li가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파산이었다. 만일 파산을 선택한다면, Lee & Li의 자산만으로 엄청난 손해액을 배상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결국 파트너 개인들까지 파산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되면 대만 최대 로펌은 졸지에 공중분해되는 것이다. 당시 일부 변호사들은 파트너들이 파산을 선언하고, 다른 변호사들로 별도로 새로운 로펌을 만들어 운영하자고 주장하기도 했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SanDisk가 입은 손해액을 배상하는 것이다. 이것도 엄청난 금액이므로 쉽게 할 수 있는 선택은 아니었다. 그러나 Lee & Li의 파트너들은 고객과의 신뢰를 지켜 파산을 선택하지 않고 손해액을 배상하기로 결정한다.

당일 Lee & Li의 파트너들은 회의를 거쳐 다음과 같은 대응조치를 취했다.

첫째, 위기대응팀을 조직하여, 로펌의 내부 통제시스템에 대하여 검토하고, 류웨이제의 불법행위가 저지를 수 있었던 제도적 허점이 무엇인지를 찾아내고, 필요한 개선방안을 제안하도록 하였다.

둘째, 소속변호사를 홍콩으로 보내 류웨이제의 행방을 추적한다. 류웨이제가 가지고 간 다이아몬드와 여행자 수표 등을 최대한 회수하여 로펌의 손실을 줄이고자 한 것이다.

모든 고객에 서신 발송

셋째, 모든 변호사와 직원들에게 사건발생 사실을 알리고, 이미 파트너들이 조치를 취하고 있으니 동요하지 말도록 당부하였다.

넷째, SanDisk에 위탁보관중인 롄화전자 주식이 직원에 의하여 불법매각되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빠른 시일내에 보상방안에 합의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표명했다.

다음 날인 10월 14일에는 대만 지방검찰청에 류웨이제를 고발했다. 그 다음 날 오전에는 기자회견을 열어 사건의 경과를 설명했다. 그리고 Lee & Li의 모든 고객에게 서신을 보내어 사건의 전말과 로펌 차원에서 취한 조치를 설명했다.

11월 14일에는 한 달간의 협상을 거쳐 마침내 Lee & Li와 SanDisk와의 보상합의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11월 17일 기자회견을 열어 SanDisk와의 보상합의 내용을 공개했다.

합의내용은 첫째, 총 배상금액은 미화 8630만 달러로 한다. 합의체결시 2000만 달러를 현금으로 지급하고, 4년간 16분기로 나누어 분기당 300만 달러씩 합계 4800만 달러를 분할지급하며, 이 분할지급금에 대하여 중국 국제 상업은행에서 취소 불능 L/C를 개설하여 지급을 보증한다. 나머지 1830만 달러는 향후 18년간 Lee & Li가 SanDisk에 매년 약 100만 달러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한다.

"Lee & Li만이 할 수 있는 합의"

둘째, 매년 SanDisk에 제공하는 법률서비스 비용이 100만 달러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에는, 잔액에 대하여 Lee & Li와 SanDisk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와 대만에서의 자선활동 등 공익활동을 진행한다. 만일 류웨이제로부터 회수하는 자산이 있으면, 우선적으로 위 손실의 변상에 사용하고, 나머지가 있으면 쌍방이 균분하여 가진다.

합의내용중 특히 1830만 달러를 변호사비용과 공익활동으로 충당한다는 내용은 외부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안이었다. 한 금융계 인사는 "Lee & Li는 과연 Lee & Li다. Lee & Li만이 이런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Lee & Li는 SanDisk와의 보상합의로 고객과의 신뢰를 끝까지 지킨다는 명성과 함께 공익활동을 중시한다는 이미지까지 얻게 된 것이다. 보상합의를 무슨 양사의 공익사업기획안처럼 만들었다. 아마도 천창원이 대만적십자회 회장을 맡아 공익, 자선사업을 해온 것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파트너들이 2천만$ 모아 지급

알려진 바에 따르면, 11월 14일 Lee & Li가 지급한 2000만 달러는 파트너들이 가진 돈을 모은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중국국제상업은행으로부터 취소불능 신용장을 발급받기 위하여, 천창원과 리광타오(李光燾, 창업파트너 리차오녠의 아들)는 SanDisk의 채무상환 완료시까지 이익배당을 포기했고, 나머지 파트너들은 이익배당금의 감액에 동의했다. 어떤 파트너는 감액폭이 50%에 달했다고 한다. 다만, 2003년 이후 파트너로 승격한 변호사들은 이익배당권리를 포기하지 않아도 되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Lee & Li의 변호사들과 직원들은 매우 강한 응집력을 보여주었다. 비록 1982년경부터 Lee & Li를 실질적으로 이끈 3인의 주요 파트너 중 1인인 쉬샤오보(徐小波)가 나중에 회사를 떠나고, 회사법 분야의 주요 파트너인 류샤오량(劉紹樑) 등 일부 변호사들도 회사를 떠나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그대로 남아서 위기를 같이 넘겼고, 그 이후 지금까지도 대만의 최대, 최고 로펌으로서의 지위를 확고하게 지키고 있다.

"Lee & Li는 도덕적 기준이 매우 높습니다. 만일 이해충돌이 있는 사건이면 반드시 다른 로펌에 넘겨서 처리합니다." 리푸덴 변호사의 말이다.

그리고 Lee & Li는 지금까지도 수임에 대하여 '이익배당'을 하지 않는 제도를 가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지나치게 이익지향적으로 흐르지 않도록 하고, 전문가를 비지능적인 경쟁에 빠져들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류웨이제 사건이 바로 이러한 Lee & Li에서 터진 것은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이다.

수임에 대한 이익배당 없어

이 사건은 여러 후일담을 남겼다. 우선 류웨이제의 부친 류롱센(劉榮顯)이 1992년 8월 대만성합작금고의 직원으로 있으면서 자금 1억 3000만 NT달러를 횡령한 후 미국으로 도피하여 현재까지도 지명수배 상태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부자가 2대에 걸쳐 거액의 회사자금을 횡령한 후 해외도주한 기록을 남긴 것이다.

류웨이제의 도주경로로 확인된 사항은 대략 다음과 같다. 옛 동성애 애인인 황스화에게 300만 NT달러를 주고 여권을 빌린 다음 그의 명의로 출국하여 홍콩으로 간 후 새로운 동성애 애인이자 공범인 린첸웨이(林岑偉)와 상해로 가서 5성급 호텔에 투숙하였다고 한다. 그 이후는 행방이 묘연하다.

그는 자금을 해외로 빼돌리기 위하여, 5100만 달러로는 다이아몬드를 구입하고, 50만 달러는 여행자수표를 구입하고 나머지 자금은 홍콩의 몇 개의 계좌로 송금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그가 구입한 다이아몬드는 주로 호주산 칼라다이아몬드로 신분증이 붙어있는데, 아직까지 국제 보석시장에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류웨이제에 대하여 떠도는 풍문도 여러 가지다. 이미 살해당했다는 설, 성형수술을 하였다는 설, 심지어 성전환수술을 하였다는 설까지 있다. 그리고 그가 대륙에서 지금까지 잠적할 수 있었던 것은 흑사회(폭력조직)의 비호를 받고 있기 때문이라는 소문도 있고, 상해의 장쩌민계의 보호를 받고 있기 때문이라는 소문도 있다. 지금까지 확인된 사실은 없다.

류웨이제를 찾기 위하여, 대만 수사기관이 수사를 진행하는 외에, SanDisk가 은퇴한 FBI 요원을 고용하기도 했고, Lee & Li는 중국 수사기관의 협조를 요청하기도 하고, 회수금액의 절반을 현상금으로 내걸기까지 했으나 그는 마치 이 세상에서 증발한 것처럼 아무런 소식이 없다.

2017년 공소시효 만료

Lee & Li에서는 돈세탁을 도와준 홍콩스화은행을 상대로 9.9억 NT달러의 손해배상청구를 하였으나, 1, 2심에서 모두 패소했다. 이 사건과 관련하여 형사처벌을 받은 것은 황스화가 여권법 위반으로 1년 6월의 형을 받은 것뿐이다. 린첸웨이는 대만형법상 2016년에 공소시효가 만료되어 이미 불기소처분되었고, 류웨이제에 대한 공소시효는 올해 2017년에 만료된다고 한다.

류웨이제 사건이 발생한 후, 전대미문의 위기를 맞은 Lee & Li가 이를 타개해나간 방식과 과정을 보면 탄복을 금할 수 없다. 한편으로 한국의 로펌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만일 동일한 사건이 한국 로펌에 발생했을 때 우리 로펌의 경영진도 Lee & Li처럼 타개해나갈 수 있었을까라는 점을 생각해보게 된다. 경영진은 과연 손쉬운 파산을 선택하지 않고, 지난한 배상의 길을 선택할 수 있었을지. 그리고 소속변호사와 직원들은 손쉽게 로펌을 떠나는 방법을 선택하지 않고, 남아서 희생하면서 함께 위기를 타개할 응집력이 있었을지.

김종길 변호사(법무법인 동인, jgkim@donginlaw.co.kr)

◇김종길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와 북경대 법대(LLM)를 졸업한 중국법 전문가로, 법무법인 태평양의 초대 북경사무소장, 중국 로펌 환구의 한국팀장을 거쳐 지금은 법무법인 동인에서 활약하고 있다. 한국 기업의 중국 진출은 물론 중국 내 법인 운영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법률문제에 자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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