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개발사업과 명의신탁

[도건철 변호사]

2016-07-25     원미선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에 따른 사업이나 그 외 다수의 토지를 대상으로 하는 대규모 부동산개발사업의 경우, 사업의 성사가 확실하지 않은 사업초기에 최대한 많은 사업부지를 신속하게, 그리고 사업의 성공에 대한 기대이익이 반영되지 않은 가격에 취득하는 것이 사업의 성패나 수익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히 사업시행자가 전면에 나설 경우 매수인의 기대심리를 촉발시켜 매수가격을 끌어 올리게 되므로, 사업시행자의 입장에서는 그 이름을 알리지 않고 제3자를 내세워 이른바 토지작업을 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을 수 있다.

익명 토지작업 유혹 커

이렇게 제3자를 내세워 사업부지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거나, 매매계약을 체결한 토지를 매도인의 협조 하에 사업시행자의 명의가 아닌 제3자 명의로 등기하는 경우에는 부동산실권리자 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이하 부동산실명법)이 금지하고 있는 명의신탁의 문제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게 된다. 명의신탁 약정은 무효이고, 명의신탁 약정에 따라 이루어진 소유권이전 역시 무효(부동산실명법 제4조 제1, 2항)이기 때문이다. 부동산실명법에 의하면, 부동산 매매계약에서 명의수탁자가 어느 한 당사자가 되고, 상대방 당사자는 명의신탁 약정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에만 당해 매매계약이나 그에 따른 소유권이전이 유효하게 된다(동법 제4조 제2항 단서).

명의신탁이 행해지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하나는 명의신탁자가 매도인과 매매계약을 체결한 다음, 매도인의 양해 하에 명의수탁자 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를 하는 방식(이른바 중간생략등기형 명의신탁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명의수탁자가 직접 매수인이 되어 매도인과 매매계약을 체결하고 그 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를 하는 방식(이른바 계약명의신탁 방식)이다.

계약명의신탁의 경우는 매도인이 명의신탁자와 명의수탁자 간의 명의신탁 약정을 알고 있었던 경우와 알지 못하였던 경우 법률효과가 달라진다. 즉 매도인이 명의신탁약정을 알지 못한 경우에는 부동산실명법 제4조 제2항 단서에 따라 해당 매매계약이나 그에 따른 소유권이전은 그대로 유효하게 된다. 그러나 명의신탁자와 명의수탁자 간의 명의신탁 약정은 당연히 무효이므로, 결과적으로 명의수탁자는 전소유자인 매도인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명의신탁자에 대해서도 유효하게 소유권을 취득하게 된다.

매도인이 알았으면 무효

반면 매도인이 명의신탁약정을 알고 있었던 경우에는 명의수탁자 명의의 소유권이전등기는 무효로 되고 그 결과 매매대상 부동산의 소유권은 매도인이 그대로 보유하게 된다. 이 경우 매수인인 명의수탁자 명의의 등기는 원인무효이므로, 매도인이 요구할 경우 명의수탁자는 그 명의의 소유권이전등기를 말소하여야 한다.

한편 명의신탁자와 매도인 간에는 아무런 계약관계가 없으므로, 명의신탁자가 매도인을 상대로 소유권이전등기를 구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와 같이 계약명의신탁의 경우에는 매도인이 명의신탁 약정의 존재를 알았던 몰랐던 명의신탁자는 원칙적으로 대상 부동산의 소유권을 취득할 법적인 수단은 없고, 명의수탁자 또는 매도인의 협조가 있어야만 소유권을 취득할 수 있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중간생략등기형 명의신탁

중간생략등기형 명의신탁의 경우에는 매도인이 명의신탁 약정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계약명의신탁의 경우와 거의 동일하다. 즉 명의수탁자인 매수인 명의 등기는 무효로 되고 소유권은 매도인이 그대로 보유하게 되며, 매도인이 요구할 경우 명의수탁자는 그 명의의 소유권이전등기를 말소하여야 한다. 다만 이 경우에는 매도인과 명의신탁자간에 매매계약이 존재하므로 명의신탁자는 매도인을 상대로 소유권이전등기를 청구할 수 있고, 이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매도인을 대위하여 명의수탁자를 상대로 소유권이전등기의 말소를 청구할 수 있게 된다.

형사적인 측면에서도 명의신탁약정은 명의신탁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 부동산실명법 시행 이전에는 명의수탁자가 신탁받은 부동산을 명의신탁자의 의사에 반하여 임의로 처분하면 형사상 횡령죄가 성립하였지만, 위와 같은 부동산실명법의 법리로 인하여 그 이후로는 계약명의신탁에 대해서는 횡령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판례가 확립되었다. 계약명의신탁의 경우 명의수탁자가 횡령죄에서 말하는 '타인의 물건을 보관하는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다만 중간생략등기형 명의신탁의 경우에는 명의신탁자가 매도인을 대위하여 명의수탁자 명의의 등기를 말소시키고 명의신탁자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를 청구할 수 있고, 명의수탁자가 신탁부동산을 임의로 처분하는 것은 이러한 명의신탁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는 이유로 횡령죄의 성립을 인정하여 왔다.

전원합의체, 횡령죄 부정

그러나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2016. 5. 19. 선고 2014도6992호판결)로 위와 같은 종전 판례를 변경하였다. 즉 전원합의체 판결은 "명의신탁자가 매수한 부동산에 관하여 부동산실명법을 위반하여 명의수탁자와 맺은 명의신탁약정에 따라 매도인에게서 바로 명의수탁자 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친 이른바 중간생략등기형 명의신탁을 한 경우, 명의신탁자는 신탁부동산의 소유권을 가지지 아니하고, 명의신탁자와 명의수탁자 사이에 위탁신임관계를 인정할 수도 없다. 따라서 명의수탁자가 명의신탁자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라고 할 수 없으므로, 명의수탁자가 신탁받은부동산을 임의로 처분하여도 명의신탁자에 대한 관계에서 횡령죄가 성립하지 아니한다"라고 판시함으로써 중간생략등기형 명의신탁에서 명의수탁자가 신탁부동산을 임의처분하는 경우에도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재물 보관자 아니야

이처럼 명의신탁의 경우 명의신탁자는 종전과 달리 형사적 처벌에 호소함으로써 명의수탁자의 협조를 이끌어 내는 것도 불가능하게 되었으므로 앞으로는 부동산실명법의 취지에 맞게 부동산을 실권리자 명의로 등기할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고 판단된다.

각종 부동산개발사업에서 사업부지를 확보하기 위해 명의신탁 약정을 이용할 현실적 필요성은 충분히 이해되고 현실적으로도 일부 활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위와 같은 민사적, 형사적 구제책의 제한을 고려하여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도건철 변호사(법무법인 태평양, gunchul.do@bkl.co.kr)

Copyrightⓒ리걸타임즈(www.legaltimes.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