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하기 좋은 나라

[이형근 변호사]

2016-03-07     원미선
매년 초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언제 가나 싶었던 겨울도 언젠가는 가고 봄은 결국 온다. 세상살이도 그와 같아서 나라가 망할 것 같았던 IMF 위기의 엄혹한 시절도 결국은 지나갔고, 여러 변화와 어려움을 겪었지만 우리 사회는 망하지 않고 다시 도약했다.

그런데 이렇게 희망을 가져보려고 스스로 자기 최면을 걸어보기는 하지만 새해 들어 전개되는 여러 상황들을 지켜보면서는 솔직히 과연 봄이 오기는 올 것인가에 대해서 희망적인 얘기만 하기가 어렵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걱정

'헬조선'이라는 말이 유행어가 된지 오래고,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 출산율은 세계 최하위라는 이야기도 이제 새롭지 않다. 급격한 노령화로 경제를 비롯한 사회의 모든 분야가 머지않아 활력을 잃을것이라는 연구결과들, 우리 경제를 견인해 왔던 대기업들이 차세대 성장 방향을 제대로 찾고 있지 못하다는 전망들도 수없이 쏟아진다.

그 와중에 새해 벽두부터 북한은 수소탄인지 짝퉁 수소탄인지 핵실험을 감행하고 로켓을 발사했다. 대륙간탄도미사일로 전용될 수도 있는 기술을 이용한 것이다. 실제로 전쟁이나 이에 준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으로 믿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지만, 어찌 보면 우리들이 너무 남북 대치 상황에 익숙해져 있어서 느끼지 못할 뿐, 국외에서 바라보는 한반도의 위기 상황에 대한 체감 온도는 전혀 다를지 모른다.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이다.

'M&A 이야기'에 쓸 소재를 찾고 있는데 동료 변호사가 기업하기 좋은 환경에 대해서 한번 써 보라고 한다. 제목을 그리 정하고 원샷법이 국회를 통과해서 다행이니 더 합리적인 규제완화니 뭐니 하는 판에 박은 글을 몇 줄 쓰다가, 하나마나한 얘기 같기도 하고 사실 그게 뭐 그리 중요한 것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사회, 경제의 보다 본질적이고 거시적인 토대가 이처럼 불안정한데 투자활성화, 적기 구조조정, M&A 지원을 운운하는 것이 어쩐지 부질없고 비현실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투자환경을 기술적으로 개선하고 행정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원샷법이 없어서 기업들이 해야 할 구조조정을 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하지 않을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사회경제적 환경 중요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말이, 기업들만 행복한, 기업활동에 아무런 규제가 없는 그런 나라를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는 비합리적이고 관료적인 규제가 없는 나라, 적절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되 자유로운 창발적 시도들이 존중되고 북돋워지는 나라, 그를 통해서 창출되는 가치가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보탬이 된다는 믿음이 있는 그런 나라다.

그것은 살기 좋은 사회라는 말과 별반 다르지 않고 또 다르지 않아야 한다고 믿는다. 사회의 저변이 행복하지 않은데 기업만 행복할 리 없고, 사회 전반에 합리적인 기풍이 없는 곳에서 기업활동과 관련된 규제만 갑자기 합리적이 될 리도 없다. 궁극적으로 이 나라에 투자하라고 하기 위해서는 이곳이 투자하기 매력적인 곳이 되어야 한다. 결국은 이 사회, 이 나라가 사람 살기에 매력적인 곳이 되어야 투자도 들어오고, 아이들도 낳고, 활력이 생기고, M&A든 뭐든 하고, 구조조정도 하고 그렇게 살 수 있는 것 아닌가 싶다.

살기 좋은 사회와 다르지 않아

20년 전 소위 M&A 업계에 IMF 특수가 일었을 때, 나는 M&A 업무를 갓 시작한 어소시엣(associate) 변호사였다. 너무 젊어서 그랬는지 생각이 없어서 그랬는지, 그 때는 일이 많아 불평하고 피곤하면 술 마시고 그랬던 기억밖에 없다. 별로 나라 걱정을 해 본 적도, 우리 사회가 이러다가 재기불능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런데 왠지 지금은 좀 다르게 느껴진다. 장기불황의 암울한 전망들과 어느 문제 하나 쉽게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나라 안팎의 상황들을 보면서 또 다른 위기, IMF와는 또 다른 종류의 더 길고 더 복합적이고 무엇보다 불가역적인(irreversible) 사회, 경제의 퇴행이 기다리고 있는것 아닌가 하는, 이 사회의 앞날에 대한 불안이 가시지 않는다.

각설하고, 그래서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우선 이번 4월 총선에서는 우리 모두 열심히 투표하자는 얘기를 하려고 한다.

시민적 참여 중요

뜬금없이 뭔 말인가 하겠지만, 대번에 무슨 엄청나게 좋은 정치가 생겨나서 모든 사회경제적 문제들이 일거에 해소되기를 바란다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시민적 참여 없이 법 만들어 주지 않는다고 국회를 욕하거나 정부를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 살기 좋은 나라가 절대로 안 만들어질 것 같아서 그렇다. M&A를 하든 뭘 하고 먹고 살든 우리 사회의 구조적 환경이 결국 그 사회의 개인과 기업들의 근본적인 생활환경을 규정하는 것이라면, 그런 근본을 개선해 나가고자 하는 관심, 의지, 활력이 원샷법보다 훨씬 더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될것 같다. 하여, 누구에게 하든 마음대로 하시되, 이번엔 우리 투표라도 제대로 한번 해 봅시다!

이형근 변호사(법무법인 광장, hyeonggun.lee@leek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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