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로펌업계는 변화중

[11월호 커버스토리]부티크, 중소 로펌 설립 러시대형 로펌들 서비스 고급화 주목

2015-11-13     원미선

올해 로펌과 기업변호사들의 관심을 끈 주요 사건을 꼽으라면 삼성물산 합병다툼과 한창 뜨겁게 가열되고 있는 롯데그룹 형제간 분쟁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여러 측면에서 두 사건을 바라볼 수 있지만, 대형 로펌과 중소 로펌으로 진영이 갈린 소송대리전 또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법무법인 넥서스가 삼성물산 합병다툼의 공격자에 해당하는 엘리엇 매니지먼트를 맡아 삼성 측을 대리한 김앤장, 왁텔 립튼 측과 시종일관 손에 땀을 쥐는 치열한 공방을 펼친 것으로 유명하다.

중형 vs 대형 로펌 대리전

롯데그룹 형제간 분쟁도 공격자에 해당하는 신동주 전 부회장을 법무법인 양헌과 두우가 대리하고, 차남인 신동빈 회장 측을 김앤장, 율촌 등 대형 로펌이 맡는 등 중형 로펌과 대형 로펌의 대리전이라는 비슷한 구도로 진행되고 있다.

로펌업계를 잘 아는 사람들은 평소에 삼성과 롯데사건을 자주 수행해 온 대형 로펌 입장에서 상대방 측을 맡아 공격 일선에 나서기가 어려웠을 것이라는 유력한 분석을 내놓고 있다. 대기업들이 사건을 돌아가며 맡기며 대형 로펌과 고문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이런 사건이 터졌을 때 대기업의 상대방 편에 서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대형 로펌, 대기업 상대방 대리 곤란

그러나 법률서비스의 수요자의 입장에서 이처럼 로펌 선택의 폭이 상대적으로 좁다는 현실은 한국 로펌업계가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고무적인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얘기도 된다. 실제로 한국 로펌업계는 길지 않은 역사에서 메이저 위주의 과점구조가 형성된 가운데 신생 로펌의 설립과 발전이 이어지는 끊임없는 분화의 과정을 겪어왔다.

법무법인 율촌과 KCL이 기존 로펌에서 활약하던 변호사들이 나와 새로 법률사무소를 열어 메이저로 발전한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히며, 지평과 충정도 비슷한 경로를 밟아 고속성장을 이룩한 주인공으로 소개된다. 또 2000년 전후 벤처붐을 타고 창업의 대열에 합류한 벤처로펌들이 이후 10여년이 흐르며 기업법무에 특화한 중견 로펌 또는 특정 분야의 전문성을 내세우는 부티크(boutique)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그 전에도 그 후에도 부티크나 중소 로펌의 설립이 이어졌다. 특히 변호사 수가 급증하며 서초동 송무시장에도 단독개업 보다는 중소 법률사무소, 송무 법무법인이 속속 등장하고, 송무 로펌과 자문 로펌의 짝짓기 등 로펌간 합병도 간단없이 시도되고 있다.

율촌, KCL 등 성공사례

이제 관심의 대상은 3단계 개방을 앞두고 있는 2015년의 한국 법률시장이다. 로스쿨 체제 도입 이후 변호사 수가 2만명을 돌파하고 모두 26개의 영미 로펌이 서울에 진을 친 작금의 시장여건은 다른 어느 때보다도 빠르고, 폭이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기업체에 상근하는 사내변호사의 급증 등 변수가 늘어나고 있는데다 본격적인 경기회복이 늦어지며 로펌들도 변하지 않으면 생존이 위협받는 생존경쟁에 내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변화의 모습 중 하나는 또 한 번의 분화, 즉 대형 로펌에서 활동하던 경력 변호사들이 나와 부티크나 중소 로펌을 설립하고 새롭게 출발하는 공급시장의 다변화로 나타나고 있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한국 로펌시장은 로펌 위주의 과점체제가 특징이다.

대형 로펌간 경쟁이 치열해지며 분야에 따라서는 과점 주자의 수가 한층 좁혀지는 과점 심화의 모습도 감지된다. 이런 가운데 전문성으로 무장한 경력 변호사들을 중심으로 비록 규모는 작지만 수요자의 니즈를 겨냥한 중소 로펌의 창업, 개인사무소를 포함한 법률사무소의 개설이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3차 분화 시작

90년대 초반 KCL, 율촌, 충정 등의 출범을 한국 로펌업계의 1차 분화라고 한다면, 2차 분화는 지평, 지금의 넥서스의 모태가 된 IBC법률사무소, 노동 전문으로 발전한 아이앤에스 등이 서울 강남에서 경쟁적으로 깃발을 올린 2000년 전후 본격화됐다. 최근의 잇따른 부티크, 중소 로펌 설립은 3차 분화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지난 9월 국제중재 등 국제분쟁 해결과 국제거래 자문을 표방하며 문을 연 KL 파트너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세종 출신의 중견변호사 4명이 창립파트너로 참여해 더욱 주목을 끈 KL 파트너스의 김범수 대표는 "법률적인 컨플릭트(Conflict of Interests)를 넘어 상업적인(commercial) 컨플릭트까지 고려할 경우 고객의 로펌 선택의 폭이 급격하게 좁아지는 게 한국 로펌업계의 현실"이라며 "KL 파트너스가 국제분쟁과 국제거래 분야에서 역할을 해보려고 한다"고 틈새시장 공략을 창업동기 중 하나로 분명하게 제시했다.

또 이보다 앞서 올 3월 간판을 내건 법률사무소 이제(利諸)는 김앤장에서 경력을 쌓은 6명의 전문가가 주축이 된 중소 로펌으로, 종합병원 출신의 전문의가 뭉쳐 신속하면서도 깊이 있는 자문을 제공하는 1차 의료기관과 같은 로펌을 발전방향으로 내세우고 있다.

부티크 및 중소 로펌 설립 러시와 관련해 주목할 대목은 시장에 신생 로펌에 대한 니즈가 있고, 그래서 이들의 출범을 반기고 있다는 점이다. 신생 로펌의 설립과 함께 기존의 부티크 또는 중소 로펌들이 약진하는 이유도 이들 중소 로펌에 대한 시장의 수요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IP, 노동, 해상 등 부티크 활발

규모가 큰 대형 로펌들 사이에선 어렵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으나, 상대적으로 경제적인 규모에 전문성을 앞세운 중소 로펌과 부티크들은 틈새시장을 공략하며 꾸준한 발전을 이어가고 있다. IP, 노동, 해상, 집단소송 등의 분야에서 상당한 연조가 쌓인 부티크들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M&A, 금융, 부동산, IP 등 전문성이 뒷받침된 서너 개의 분야를 아우르는 중소 로펌들도 그 수가 늘어나고 있다.

물론 대형 로펌들도 변화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특히 규모 확대에 숨고르기가 진행되는 가운데 새로운 서비스를 추가하고, 기존의 서비스를 한층 심화하는 질적인 변화가 감지되고 있어 기대를 모으고 있다. 중소 로펌을 운영하는 대형 로펌 출신의 한 변호사는 "기업이 요구하는 법률서비스 수준이 갈수록 높아지며 기업들이 그런 서비스를 담보하는 로펌을 찾아 움직이고 있다"며 "대형 로펌의 경우 고급 서비스로 부가가치를 높여야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기업 등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법률서비스 수준이 지속적으로 고도화되고 있다는 얘기로, 높은 전문성을 요구하는 하이엔드(high-end) 시장의 경우 이미 리그테이블의 선순위에 이름을 올리는 로펌 숫자가 줄어드는 등 서비스 차별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요컨대 대형 로펌은 대형 로펌대로, 중소 로펌은 중소로펌대로, 부티크는 부티크대로 시장이 차별화된 가운데 각각의 무대에서 경쟁과 발전을 꾀하고 있다고 보면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선 시장의 분화와 함께 경력 변호사의 로펌간 이동이나 법률사무소 개설, 신생 로펌의 설립 등 변호사 개인들의 움직임 또한 활발해지고 있는 것이 최근 한국 법률시장의 모습이다. 일선 변호사들 사이에선 영미 로펌들처럼 자신의 경쟁력을 보다 효율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로펌을 옮기는 경력 변호사들의 이동이 갈수록 활발해질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또 로펌 쪽으로 눈을 돌려보면 규모에 비해 수익성이 예전 같지 않은 로펌의 경우 구조조정을 적극 검토한다는 등 한국 로펌들도 더 이상 변호사 해고, 구조조정의 무풍지대가 아니라는 분석이 설득력 있게 나오고 있다.

3단계 개방 1년도 안 남아

내년 7월이면 유럽 로펌을 시작으로 외국 로펌과 한국 로펌의 합작법인 설립이 허용되고, 합작법인에선 한국변호사의 직접 채용도 가능해진다. 개방의 범위가 한층 확대되는 3단계 개방시대 진입을 앞둔 지금 한국 법률시장, 한국 로펌업계에선 새로운 패러다임을 향한 큰 변화가 진행 중이다. 로펌이든 변호사든 변화에 적응하고 경쟁력을 높여야 발전을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다.

김진원 기자(jwkim@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