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 무협소설과 게임저작권

[김종길 변호사]

2015-10-21     원미선
중국 최초의 짝퉁은 바로 '김용저(金庸著)'라고 출판된 수많은 가짜 김용 무협지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중국에서 김용 무협지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오죽하면 세계에서 가장 많이 출판된 책 중 3위가 성경, 2위가 모택동선집, 1위가 김용 무협지라는 말이 나왔겠는가. 게임업계에도 김용의 짝퉁이 횡행하고 있다.

이런 배경 아래 최근 게임업계 최초의 저작권 침해분쟁으로 불리던 '김용 소설 개편권 침해사건'에 대한 1심 판결이 지난 8월 중순 베이징시 하이덴구인민법원에서 내려졌다. 법원은 피고 치여우(奇遊)가 저작권을 침해하고 부정경쟁행위를 하였다고 인정하고, 저작권 소유자인 완메이스제(完美世界, 이하 '완메이'라 함)에게는 경제손실 60만위안(한화 약 9800만원)을 배상하고, 또 다른 저작권 소유자인 소호창여우(搜狐暢遊, 이하 '창여우'라 함)에게는 경제손실 150만위안(한화 약 2억 7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첫 저작권 분쟁, 배상판결

법원은 판결문에서 치여우가 수권을 받지 않은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 (나중에 '무협기연'으로 명칭 변경) 게임에서 김용 소설의 요소를 대량으로 사용하였는데 이는 주관적으로 악의가 있고, 객관적으로 저작권 보유자의 이익을 해하여, 신의성실의 원칙과 상업 도덕에 위배되어 부정경쟁행위를 구성하므로 상응하는 법적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현재 김용 무협소설의 게임 개편(우리나라 저작권법상의 '각색'을 중국에서는 개편이라고 부름)권을 둘러싼 법적 조치는 아직도 계속 중이다. 이번 승소로 저작권 보유자인 완메이와 창여우는 크게 고무되어, 앞으로 지적재산권 보호활동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다.

동시에 이번 판결은 게임업계에도 하나의 표준을 제시하는 측면이 있다. 비록 이전에 여러 건의 게임 권리침해사건이 있었지만, 이번 사건은 중국 최초로 문학작품을 게임으로 각색한 경우의 저작권 침해사례이기 때문에, 향후 동일 유사한 경우의 저작권 침해 여부를 판단하는 데 좋은 선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손해배상액 높아

이번에 법원에서 인정한 손해배상액은 일반적인 저작권 침해사건에 비하여 확실히 높다. 중국 저작권법 제48조에 따르면, 저작권 침해의 실질손해를 계산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정상을 참작하여 인민폐 50만위안 이하의 배상금을 지급하도록 판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고, 중국내에서 일반적인 저작권 침해사건의 평균 손해배상액은 1.5억위안이라는 통계도 나와 있다. 그런데 이번 판결의 210만위안이라는 손해배상액은 확실히 기존 범주를 넘어섰다. 이는 한편으로 게임 분야의 수익이 상당히 높다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 중국 법원이 '중국 창조'의 문화산업을 중시한다는 것도 엿볼 수 있다.

김용은 중국어권을 대표하는 무협소설작가로 1970년 대에 '비천연설사백록(飛天連雪射白鹿) 소서신협의벽원(笑書神俠依碧鴛)'으로 불리는 14부의 무협소설(실제로는 12부의 장편소설과 3부의 단편소설)을 썼다. 완메이는 2011년에 , , (이 3부는 1980년대 초 우리나라에 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판된 바 있음), 등 4부 작품의 게임 각색권을 취득했고, 창여우는 2013년 7월 2000만위안의 라이선스료를 지급하고, 김용의 , 를 포함한 나머지 10부의 소설에 대한 게임 각색권을 취득했다. 의 판권을 의 판권에 포함시켰는데 이를 나누면 11부의 소설이 된다.

이번 판결이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주요한 이유는 바로 최근 몇 년간 게임업계에서 저작권이 차지하는 중요성이 갈수록 높아져왔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에서 저작권을 가장 중시하는 업종이 어디냐고 물어보면, 영화업계 아니면 게임업계라고 대답할 정도다. 가치가 비교적 높은 저작권은 게임업체들이 앞다퉈 매입하고 있다.

'저작권 개념' 게임 인기

최근 360에서 발표한 에 따르면, 중국내 100대 게임 중 절반 이상이 저작권 개념이 있다고 하며, 저작권 개념이 있는 게임과 없는 게임을 비교하면 저작권 개념이 있는 게임의 다운로드 회수는 그렇지 않은 게임의 2.4배에 달한다고 한다.

2013년 8월 중순 완메이와 창여우는 공동으로 김용 무협소설에 대한 권리보호행동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두 회사가 이런 행동을 개시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김용 작품의 유명세를 이용한 해적판 게임들에게 더 이상 유저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김용의 강력한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다.

모바일게임 은 게임 개발사인 완셰과기(玩蟹科技, 이하 '완셰'라 함)가 김용으로부터 수권을 받지 않고 개발하여 서비스하고 있었는데, 2013년 9월 25일 하이덴 법원에 제소당한 후, 같은 해 10월 소송 외 화해의 방식으로 1000만위안(한화 약 16억원)의 배상금을 김용에게 지급했다. 소송 외 화해는 4당사자(완셰, 완메이, 창여우, 김용) 간의 협상을 거쳐 결정됐다. 김용 측은 기존 유저의 이익을 고려하여 화해를 받아들였다고 하는데, 화해로 종결한 경우는 밖에 없고, 그 후 다른 게임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2013년에 이루어진 일련의 법적조치로 김용 무협소설의 저작권을 침해한 게임은 많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2014년 들어 다시 김용을 도용한 게임들이 늘어나자, 4월 창여우와 완메이는 내부에 권리보호팀을 두어 1년동안 100개가 넘는 게임을 수정 혹은 폐쇄시켰다. 그러나 모바일게임 업체들은 이런 법적 수단을 별로 겁내지 않는 것 같다. 한 전문가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사건 한 건이 접수에서 판결 선고까지 반년 정도 걸리는 것은 일반적이다. 대부분의 게임 개발업체는 소규모로 겨우 십여명에 불과하다. 그리고 모바일게임은 돈을 빨리 회수한다. 만일 그들을 고발한다면, 오히려 노이즈마케팅의 기회로 여길 것이다. 판결이 나올 때쯤이면 모바일게임의 생명주기는 이미 끝났을 것이니, 아예 회사를 문 닫아 버리고, 사람과 컴퓨터를 다른 사무실로 옮겨놓은 다음 이름을 바꾸어 다른 모바일게임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대장문 제소 후 소송 줄 이어

2013년 9월 김용이 을 제소한 이후, 게임 저작권과 관련한 소송이 줄을 이었다. 같은 해 11월에는 샨다가 (한국 온라인게임 '미르의 전설'의 중국 명칭)의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웹게임 등 4개 회사의 5개 게임을 제소했다. 2014년 1월에는 블리자드가 의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여우이(遊易)의 을 제소했다. 2014년 3월에는 중칭롱투가 쥬청의 가 자신의 웹게임 의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제소했다.

같은 달 상하이좡여우(壯遊)는 91Wan의 가 의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경고서신을 보냈다. 는 한국 웹젠이 개발한 MMORPG로, 웹젠이 모든 지적재산권을 보유하고 있는데, 2012년 상하이좡여우에게 의 지적재산권을 독점적으로 라이선스했다. 2014년 4월 샨다는 이러(易樂)가 를 카피한 여러 개의 게임을 개발, 운영하고 있다고 관련기관에 철저한 조사와 심사 허가를 중지해줄 것을 요청했다.

저작권 침해 경고

중국이 저작권 보호를 강화하고 있다는 것은 한국 업체들에게도 고무적이다. 앞에서 본 것처럼 중국의 게임은 주로 역사물, 무협물이 많지만, 외국의 유명 게임(한국 게임 포함), 일본 만화 등을 카피한 것들도 적지 않다. 중국에서 최고의 흥행을 기록한 한국 게임 을 드러내놓고 카피했던 샨다가 이젠 중국 내에서 저작권 보호에 가장 앞장서 나선다는 것도 하나의 아이러니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저작권 보호가 강화된다는 것은 한국 업체를 비롯한 외국 업체에게는 희소식이라 할 것이다.

김종길 변호사(법무법인 동인, jgkim@donginlaw.co.kr)

◇김종길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와 북경대 법대(LL.M)를 졸업한 중국법 전문가로, 법무법인 태평양의 초대 북경사무소장, 중국 로펌 환구의 한국팀장을 거쳐 지금은 법무법인 동인에서 활약하고 있다. 한국 기업의 중국 진출은 물론 중국 내 법인 운영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법률문제에 자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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