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 "병원 측과 화해해 의료사고 배상금 받았어도 과실비율 확정 안 되었으면 보험급여 환수 불가"

[서울행법] 국민건강보험공단에 패소 판결

2015-04-11     김덕성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르면, "보험급여를 받은 사람이 제3자로부터 이미 손해배상을 받은 경우에는 공단은 그 배상액 한도에서 보험급여를 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의료사고가 나 병원 측과 소송 중 화해가 성립되어 돈을 받았으나 화해권고결정에 병원 측의 과실 여부나 비율 등은 명시되어 있지 않은 경우, 이런 경우에도 건강보험공단이 이미 보험급여로 부담한 보험자부담금을 환수할 수 있을까.

서울행정법원 제12부(재판장 이승한 부장판사)는 4월 2일 2008년 8월 분당 서울대병원에서 자궁유착박리술을 받다 의식을 잃고 현재까지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김 모씨 부부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2014구합67338)에서 "부당이득금결정 및 환수고지 처분을 각 취소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서울대병원의 과실 여부나 과실비율에 대한 확정적인 판단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게 판결 이유다.

김씨 등은 2009년 6월 서울대병원을 상대로 하여 서울중앙지법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 법원이 '병원 측은 김씨 부부에게 총 5억 5000만원을 지급하고, 김씨는 이 돈을 지급받은 후 2주 이내에 병원에서 퇴원하고, 나머지 청구를 모두 포기한다'는 내용의 화해권고결정을 했다. 김씨 부부와 병원 모두 이의를 신청하지 않아 2011년 2월 15일 이 결정이 그대로 확정됐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그러나 2012년 4월 김씨 등에게 화해권고결정 이후 국민건강보험에 의해 진료를 받은 것은 '합의일 이후 수급'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김씨에 대한 2011년 3월부터 2012년 1월까지의 치료비 중 보험급여로 부담한 보험자부담금을 부당이득금으로 환수하기로 결정하고, 기지급된 보험급여 1500여만원을 부당이득금으로 환수하는 처분을 했다.

김씨 부부는 서울행정법원에 부당이득금 결정 및 환수고지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2013년 12월 이 사고에 대한 서울대병원의 과실비율을 50% 정도로 인정한 후 '김씨는 사고로 인하여 병원으로부터 배상받을 수 있는 범위를 초과한 치료비가 발생했고 초과 치료비 부분에 대하여 보험급여항목과 관련된 범위 내에서 보험급여의 지급의무를 면할 수 없고, 따라서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다'는 이유를 들어 위 각 처분을 취소하는 판결을 선고, 그대로 확정됐다.

김씨는 또 2011년 4월부터 2013년 9월까지 D병원 등에서 치료를 받았는데, 그 치료비 중 본인부담금 등을 제외한 나머지 합계 4800여만원이 보험급여 비용으로 지급됐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이번에는 "김씨 등이 서울대병원으로부터 그 과실비율에 따라 이미 손해배상을 받은 50%에 대하여도 국민건강보험에 의해 진료를 받은 것은 '합의 후 수급'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2014년 1월 관련 진료비 중 피고가 보험급여로 부담한 보험자부담금의 50%에 해당하는 금원을 부당이득금으로 환수하기로 결정하고, 2014년 2월 김씨 등에 대하여 기지급된 보험급여 2400여만원을 부당이득금으로 환수하는 처분을 했다. 이에 김씨 부부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먼저 대법원 판결(2005두7501)을 인용, "제3자의 불법행위로 인하여 국민건강보험법상의 보험급여 지급의무가 발생한 경우 보험급여의 수급권자가 보험급여와 제3자에 의한 손해배상에 의하여 중복전보를 받는 것과 유책의 제3자가 그 책임을 면탈하는 것을 방지하고 보험재정의 확보를 꾀하려는 데 목적이 있는 국민건강보험법 58조 2항의 입법 취지와 그 규정 내용에 비추어 볼 때, 보험급여의 수급권자가 제3자로부터 자신의 재산상 손해배상과 관련한 일정한 금원을 지급받고 나머지 청구를 포기 또는 면제하기로 하였거나 혹은 이를 전혀 지급받지 않은 채 제3자의 재산상 손해배상의무를 전부 면제하여 주었다면, 수급권자가 그 재해로 인하여 제3자로부터 배상받을 수 있는 진정한 재산상 손해액(보험급여 항목과 관련된 범위에 국한된다)의 한도 내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보험급여의 지급의무를 면하게 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원이 수술을 집도한 담당의사 이 모씨의 업무상과실치상 혐의에 대하여 불기소처분을 한 점 등을 고려하면 이씨에게 사고에 대한 과실이 있다고 보기 어렵고, 서울대병원에 사고에 대한 독자적 과실이 있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도 없다"며 "그렇다면 서울대병원에 사고로 인하여 원고들이 입은 재산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인정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원고들이 화해권고결정에 따라 서울대병원으로부터 금원을 지급받기는 하였으나, 민사소송 및 화해권고결정의 경위나 화해권고결정문의 문언에 비추어 이씨나 서울대병원의 과실 여부나 과실비율에 대한 확정적인 판단이 이루어지지는 아니한 것으로 보이는바, 원고들이 지급받은 위 금원이 서울대의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됨을 전제로 사고로 인한 재산상 손해배상과 관련하여 지급된 금원이라고 단정하기 어렵고, 가사 서울대병원에 사고로 인하여 원고들이 입은 재산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하더라도, 피고로서는 원고들이 서울대병원으로부터 배상받을 수 있는 진정한 재산상 손해액 중 서울대병원의 과실비율을 초과하는 부분에 해당하는 치료비에 대하여서는 보험급여의 지급의무를 면할 수 없다고 보아야 하나, 위 재산상 손해액이나 서울대의 과실비율이 확정되지 아니하였다"고 지적하고, "피고는 선행판결을 기초로 하여 서울대병원의 과실비율이 50%라는 전제에서 이 사건 처분에 이르렀으나 선행판결이 서울대병원의 과실비율을 50% 정도로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취지로 판시한 바 있다는 사정만으로 서울대병원의 과실비율을 50%로 인정하기는 어렵고, 원고들이 화해권고결정에 따라 서울대병원으로부터 금원을 지급받은 바 있다고 하여 피고가 원고 김씨의 치료비에 대한 보험급여의 지급의무를 면하게 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법무법인 평호가 김씨 부부를 대리했다.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

Copyrightⓒ리걸타임즈(www.legaltimes.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