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가 역할 확대 필요한 IPO 법률시장

[이행규 변호사]

2015-04-11     원미선
필자가 미국 로스쿨 연수를 마치고 뉴욕 소재 글로벌 로펌인 White & Case에 근무할 때였다. 당시 White & Case는 글로벌 신용카드업체인 Visa의 기업공개(IPO, Initial Public Offering)를 자문하고 있었고, 사무실에서 필자와 방을 같이 쓰던 인도계 신참 미국변호사도 그 일에 참여하고 있었다. 미국 연수 전에 국내외 IPO 업무와 금융투자협회 고문변호사를 하면서 자본시장 관련 업무를 하였던 터라 그때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IPO(약 178억달러, 우리 돈 약 18조원 이상)가 될 Visa의 기업공개에 필자도 매우 흥분되었다.

오피스 메이트(officemate)인 인도계 변호사는 White & Case의 미국 내 사무소와 해외지사에서 무려 70명 이상의 변호사들이 Visa IPO에 관여하고 있고, 주니어 변호사인 본인은 입사 후 6개월가량 Visa IPO 업무만 하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타임차지(time charge)를 기본으로 하는 미국 로펌의 자문보수 청구방식에 따르면 법률자문료도 어마어마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이처럼 미국시장에서 IPO는 법률가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법률시장이다.

사상 최대 IPO

한국의 IPO 시장은 어떤가? 지난해 삼성SDS, 제일모직과 같은 대어급 IPO를 비롯해 하반기에 무려 63건의 IPO가 진행되어 상반기에 7건이었던 것에 비해 시장 자체는 상당히 활기를 되찾고 있다. 그리고 올해도 전망이 나쁘지 않고 코스닥 중심으로 100여개의 기업이 이미 대기표를 뽑고 있다는 전언이다. 그런데 국내 IPO 시장에서는 법률가들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증권사에서 증권신고서 작성

우선 국내기업 IPO에서는 미국이나 영국, 홍콩 등 선진 IPO 시장과 달리 투자자들에게 정보제공을 위해 작성, 공시되는 증권신고서(prospectus)를 증권사 IPO팀에서 직접 작성한다. 그리고 증권신고서 작성에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발행회사에 대한 실사도 일부 증권사를 제외하고는 거의 증권사 IPO팀에서 직접 수행한다. 증권신고서는 대상회사에 대한 투자판단을 돕기 위해 투자자들에게 제공되는 제일 중요한 문서이고 발행회사 및 주관회사의 책임소재도 증권신고서의 허위, 과장기재 또는 기재 누락 등을 통해 판단된다. 이러한 증권신고서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발행회사에 대한 실사와 증권신고서 작성 과정에 법률가들의 개입은 매우 제한적인 실정이다. 이는 투자자 보호는 물론 발행회사와 주관회사의 법적 책임의 관점에서도 재고가 필요한 대목으로 보인다. 최근에 IPO는 물론 유상증자와 관련한 투자자들의 소송도 늘어나는 추세에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국내 IPO 시장에서 법률가들의 역할이 제한되는 또 다른 이유로는 증권집단소송에 있어서 징벌적 손해배상(punitive damages) 제도가 도입되지 않은 점을 들 수 있겠다. 2005년에 집단소송으로는 최초로 도입된 증권집단 소송은 그 시행 이후에 집단소송 허가를 받은 사례가 거의 없었다. 최근에서야 몇 건이 제기되었는데 그나마 법원에 의해 허가가 된 사건은 극소수이다.

미국의 경우 증권신고서에 고의적으로 허위의 사실을 기재하거나 발행회사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누락한 경우 투자자의 실제 손해와는 별도의 징벌적 손해배상이 가능하고 천문학적인 손해배상금으로 발행회사는 물론 주관회사가 문을 닫을 수도 있다. 발행회사를 변호사가 실사하고, 그에 기초하여 증권신고서의 상당부분을 변호사가 작성할 수밖에 없는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증권신고서를 검토하는 미국증권위원회(Securities Exchange Commission, SEC) 소속 담당자들이 거의 변호사 출신이라는 점도 IPO 시장이 법률시장으로 기능하게 하는데 한몫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증권집단소송법이나 자본시장법은 실손해 배상 원칙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문제가 되어 손해가 날 경우 발생된 손해액만 배상하면 되니, 발행회사나 주관회사가 사전에 비싼 변호사나 로펌을 활용해 실사를 하고 그에 기초하여 상장예비심사청구서나 증권신고서를 작성할 유인이 별로 없는 것이다.

실손해 배상 원칙 유지



낮은 주관사 수수료도 문제라고 본다. 국내 IPO 주관사 수수료는 공모가액 대비 겨우 2~3% 정도 수준이고, 그나마 IPO가 성공되어야 지급받을 수 있는 성공불 구조이다. 주관사 수수료가 성공보수 조건이니 주관회사가 법무법인을 선임해 실사를 하기 어렵고, 법무법인을 선임하더라도 법무법인 수수료를 성공보수 조건으로 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외국기업의 국내 IPO에 있어서는 주관회사들도 착수금과 단계별 실비를 지급받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국내기업 IPO에 있어서도 이런 수수료체계를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한편 이런 사정들 때문에 법무법인들도 울며 겨자 먹기로 성공보수 조건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데, IPO는 변수가 너무 많아 실제 성공하는 사례가 20~30%에 불과하여 법무법인으로서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IPO 성공사례 20~30%

IPO 과정에 법률가들이 적정한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자본시장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특히나 요즘과 같이 정책적으로 IPO를 적극적으로 독려하는 과정에서 혹시라도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기업들이 자본시장에 발을 들이는 것을 일정하게 견제하는 게이트키퍼(gate keeper) 역할을 법률가들이 할 수 있다고 본다. 이를 통해 발행회사와 주관회사의 법적책임을 사전적으로 예방하거나 감축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발행회사 입장에서는 IPO 과정에서 법률가의 조력을 받아 정관과 내부규정을 정비하고 IPO 이후 상장회사로서의 새로운 도약을 선제적으로 준비할 수 있다. IPO 이후에는 상장회사에 대한 다양한 특례조항은 물론 각종 공시의무 등을 성실히 이행해야 하는데, 이를 법률가들이 조력할 수 있는 것이다. 법률가들 또한 발행회사와 주관회사에 확실한 밸류(value)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국내 IPO 시장이 보다 활성화되고, 자본시장이 투자자와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법률가들의 역할이 점점 확대되기를 소망해 본다.

이행규 변호사(법무법인 지평, hglee@jipyo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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