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PLA 창립에 붙여

[한상욱 변호사]

2015-01-06     김진원
11월 5일 한국지적재산권변호사협회(KIPLA)가 창립총회를 열고 첫걸음을 내디뎠다. 서울변호사회에서 전문분야별 커뮤니티를 만들었고 그 중에 지재커뮤니티가 있기는 하지만 협회라는 명칭으로 전국을 커버하는 특정 분야의 변호사모임은 처음이라며 격려와 기대의 얘기가 많았다.

지적재산권은 특허출원이라는 행위가 관여된다는 점, 사법서비스의 대상이 우리 국민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한국 특허청의 출원의 3분의 1 이상이 외국인 출원이고 그러한 외국인 출원이 등록, 권리화되어 분쟁이 생기므로 자연히 한국 지재 분쟁의 당사자 중 외국회사, 외국인의 비율이 다른 분쟁에 비하여 매우 높다), 같은 당사자 간의 분쟁이 여러 나라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삼성, 애플사건은 10여국에서 동시에 진행된 바 있다) 등이 다른 분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고유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특허출원의 1/3 이상이 외국인 출원

2013년 10월 미국의 CAFC(Court of Appeals for Federal Circuit)와 우리 특허법원이 함께 이틀에 걸쳐 지재 세미나를 열었다. 중요한 행사 중의 하나가 모의재판이었다. 모의재판을 준비하기 위하여 특허법원 판사와 각 법률사무소의 지재 담당 변호사들이 수차례 모여 모의재판의 사안과 발표자료 등을 점검했다. 법정에서는 상대방이 되어 싸우지만 성공적인 모의재판을 위해 모두 한 팀이 되어 머리를 짜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모의재판이 잘 마무리된 후 우리도 미국처럼 지재 전문 변호사모임이 필요하지 않는가 하는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왔고, 그 모임이 KIPLA의 모태가 되었다.

미국의 지적재산권변호사협회(AIPLA)와 세계변호사협회(IBA) 지재분과는 매우 활발하게 활동한다. 지재 관련 여러 정책에 활발하게 의견을 내고 있으며, 외국의 사례도 열심히 연구한다. 회원들의 교육에도 매우 적극적이다. 당분간 KIPLA는 AIPLA 등 먼저 창립되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지재 변호사 모임을 많이 참고할 것이다.

지재권을 출세어에 비유

아라이 히사미츠 일본 전 특허청장은 지재권을 출세어(出世魚)에 비유했다. 농어나 방어는 자라면서 부르는 명칭이 달라져서 이들을 출세어라고 부르는데 지재권도 시대에 따라 역할이 달라지므로 이렇게 비유를 한 것이다.

나의 경우를 보아도 1991년 현재 일하는 사무실에 들어와서 그때부터 지재권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초반에는 다른 업무도 일부 하였으나 1998년 유학에서 돌아와서는 지재권 업무만 하고 있다. 1991년 당시를 돌이켜 보면 주위 분들에게 지재 분야를 전공한다고 하면 표정들이 그다지 밝지 않았다. "증권 등 좋은 분야도 많은데 왜 하필이면?"이란 표정들이었다. 그러던 것이 1990년대 후반 "참 전망이 좋고 장래성이 있는 분야를 택했구나"라는 의견으로 바뀌더니 시간이 더 흘러 2000년대가 되자 "어떻게 그렇게 선견지명이 있었냐?"라는 부러움마저 사게 되었다.

지재 바라보는 시각 달라져야

주위의 부러움도 잠시, 이제 지재권 분야는 큰 위기를 맞고 있다. 지재 전쟁의 시대이다. 지재를 바라보는 시각을 교정하여야 한다. 지재 변호사의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

우선 지재 사법서비스의 대상에 대한 인식을 달리해야 한다. 한국 내에서 발생하는 지재 · 특허분쟁의 상당수는 외국회사가 한 당사자이다. 통상의 재판과 같이 국민만을 사법서비스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인식은 지재 재판에서는 과감히 변경되어야 한다. 올 9월 23일 국회에서 '대한민국 세계 특허 허브국가 추진위원회' 창립총회가 개최되었다. 한국을 특허허브로 만들어 보자는 국회의원들의 노력도 이러한 인식의 바탕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모색해 보자는 취지로 이해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지재 판사들의 역할에 대한 재조명이 국회의 특허 허브 추진위에서 논의되고 있으나, 이와 병행하여 더 우선적으로 논의될 것이 지재 전문 변호사의 육성이다.

나의 반성이지만 가까운 일본만 보아도 지재 관련 논문이나 판례평석은 주로 변호사, 변리사들이 많이 기고한다. 판사들의 논문은 찾기 어렵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재작년부터 올해까지 대법원에서 지재 관련 전원합의체 판결이 여러 개 나왔다. 실무적으로 매우 중요한 판결들이다. 일본만 같아도 실무계에서 많은 평석과 논의가 되었을 상황이었으나 우리 실무계는 생각보다 평석도 적고 조용했다.

지재 · 특허허브는 지재 전문 판사를 임명하고 법원만 노력해서 될 일이 아니고 변호사 쪽에서도 전문성을 가진 대리인들이 훨씬 더 많이 나와야 한다. 유능한 지재 전문 변호사가 많이 배출되어야 우리의 좋은 제도와 판결을 외국에 효율적으로 소개할 수 있다. 지재권이 우리나라에서 잘 운용되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고, 외국으로 뻗어나가 우리 제도를 수출하고 우리 제도를 국제규범화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세계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우리 실무가 빨리 정착되어야 하고, 세계의 흐름과 맞지 않는 실무와 법리는 과감히 수정되어야 하는 데 여기에 지재 변호사들의 핵심적인 역할이 있다.

디자인 기여 부가가치 69.4조원

특허뿐만이 아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올 초 국내 디자인 활용기업, 디자인 전문회사, 공공부문 등에서의 디자인의 활용현황 및 산업규모 등을 내용으로 하는 '2013 산업디자인 통계조사' 결과를 발표하였는데, 디자인이 타업종에 기여한 경제적 부가가치가 69.4조원으로 우리나라 한 해 국내총생산(GDP)의 5.5%에 해당되며, 2012년 금융업의 부가가치 규모(72조원)와 유사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부가가치에서 보면 금융산업과 디자인산업이 같은 정도의 기여를 이미 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렇듯 중요한 디자인의 활용을 위해서는 디자인보호법의 정립이 필수적이다. 여기서도 지재 변호사가 할일이 많다.

저작권은 어떠한가? 저작권은 특허와는 달리 국가기관의 심사 및 등록을 권리행사의 요건으로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침해 논점이 생기면 그 때 변호사가 검토하고 법원에 제소하면 그 때 법원이 심리한다는 구조이다. 저작권법은 사후적으로 이러한 분쟁을 규율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으므로 변호사, 법원의 역할이 어찌 보면 특허분쟁에 비하여 더 중요하다.

KIPLA는 앞으로 우수한 지재 변호사의 육성을 위하여 여러 프로그램을 마련할 계획이다. 70년대는 여공, 80년대에는 중동 근로자, 90년대는 대기업 샐러리맨이 한국의 발전을 위한 견인차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 있는데, 이제는 지재 변호사들이 이러한 역할에 한 번 도전해보자.

이노베이션에 핵심적 역할

마이클 골린은 "Global IP Strategy"란 책에서 이노베이션을 위하여 지재 제도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 간과되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지적했는데 필자도 같은 생각이다. 이노베이션의 창출을 위하여 독점권을 부여하는 지재 제도가 필요하고 창출된 이노베이션을 확산시키는 데 특허의 라이선스 제도, 공개제도가 필요하다.

2012년 지식재산위원회가 설립되고, 올 9월 특허 허브 추진위 창립에 이어 KIPLA도 돛을 올렸다. 한국의 이노베이션을 위한 지재 변호사들의 활약을 기대한다.

한상욱 변호사(swhan@kimchang.com, 김앤장 법률사무소)

◇한상욱 변호사는 1991년부터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활동하고 있는 지적재산권 분야의 전문가다. 서울대 법대를 나와 하버드대 로스쿨(LLM)과 동경대 법과대학원에서 공부했으며, 한국변호사와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갖추고 있다. 《지적 재산법의 미래》 등 지적재산권 관련 여러 권의 저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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