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제퍼슨이 지금 한국에 있다면

[한상욱 변호사]

2014-10-23     김진원
미국의 건국과정을 보면 경이로운 발상이 참으로 많다. 당시에 존재하지 않았던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임기를 4년으로 한 것이나, 연방주의의 발상이나, 3권분립의 사상들이 그런 것들이다. 지금은 불변의 진리처럼 생각되고 있지만 18세기 후반까지는 이 세상 어느 나라도 시도해 본 적이 없던 제도들이었다.

특허제도도 그런 것들 중의 하나다. 미국의 3대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은 1790년 최초의 연방특허시스템을 설계했다. 토머스 제퍼슨은 반연방주의자로 각 주의 독립을 매우 중시하는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그러한 사상을 가졌던 그가 특허제도에 대하여는 연방특허를 구상하였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그만큼 특허가 미국의 장래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인식에서 그는 특허제도에만 한하여 '반연방' 주장을 접고 '연방특허제도'를 탄생시켰다.

1790년 연방특허시스템 설계

돌이켜보면 미국에 특허제도를 도입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건국 초기 토머스 제퍼슨과 제임스 메디슨(미국의 4대 대통령) 사이에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 당시에도 특허제도가 소수의 자들에게 부당한 독점을 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었고, 특히 영국 독점의 부당성으로부터의 탈피라는 관점에서 독점을 주는 제도를 새로이 창설하는 데 거리낌이 있었다. 토머스 제퍼슨도 그런 걱정을 하던 사람이었고, 건국 초기에는 특허제도의 창설을 반대하였다.

제임스 메디슨은 특허제도가 발명을 장려하고 새로운 산업을 일으키는 데 필수적인 제도라는 확신 하에 토머스 제퍼슨을 설득하고 연방특허제도를 설계하도록 만들었다.

헌법적 근거도 마련

물론 미국 특허제도 이전에도 베니스 특허제도나 영국의 특허제도가 있기는 하였다. 그러나 특허제도가 현재의 윤곽을 가지게 된 것, 즉 특허출원제도, 특허권 존속기간, 심사를 통한 특허권 부여 등의 틀은 1790년에 마련된 것이다. 이에 앞서 1788년 제정된 미국 연방헌법에 특허에 기한 독점권의 헌법적 근거가 규정되었다.

미국 최초의 특허는 1790년 홉킨스라는 사람이 출원한 비료의 원료를 만드는 방법에 대한 특허이다. 그 이후 수많은 특허가 등록되어 발명자들에게 엄청난 부를 안겨주었다. 노벨의 다이나마이트 특허, 오티스의 엘리베이터 특허, 이스트만의 카메라 특허 등 헤아릴 수도 없는 많은 특허들이 그런 것들이다.

어찌 보면 미국은 태어나면서부터 특허의 나라, 벤처의 나라였다. 특허제도는 제퍼슨이 처음 우려한 대로의 독점권에 기한 폐해 없이 미 건국 초기에 젊고,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국가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미국이 건국 이래 200여년 넘게 특허제도로 인한 혁신과 특허제도 전반에 대한 논의를 리드하는 틀은 이미 건국의 아버지들이 만들어 두었던 것이다.

선발명주의 채택

특허제도의 주요한 기본원칙은 나라마다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미국의 특허제도가 다른 나라에서 전혀 채택하지 않은 제도를 채택한 것이 있었다. 바로 선발명주의(First to Invent) 제도이다. 유럽이나 일본, 우리나라는 선출원주의(First to File)이다. 미국 제도는 특허권은 최초로 발명한 자에게 주어야 한다는 것이고, 유럽 등은 최초 출원한 자에게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제도가 특허제도의 본질에 더 부합하는 것으로 보이는 면이 있지만 실제 출원한 자와 이보다 먼저 발명을 완성한 자 간에 다툼이 있는 경우에는 이를 가리기 위한 절차가 필요하다. 물론 이러한 제도는 유럽 등 국가에서는 필요없다.

미국은 그간 선발명주의를 매우 자랑스러운 제도로 여겨 왔다. 유럽 등 주위국가들이 이를 개정하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어도 미국은 선발명주의가 특허의 본질에 더 기여한다는 논리 하에 별 대꾸를 하지 않았다. 이러던 미국이 2011년 선발명주의를 버리고 선출원주의를 채택하는 특허법 개정을 하였고 선출원주의는 미국에서 2013년부터 시행 중에 있다.

선출원주의로 바꿔

무슨 사정이 있었을까? 2010년이 넘어서면서 각국의 지재정책, 특허정책에 눈에 띄는 것이 있다. 바로 각국이 국제조화정책을 매우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허는 속지주의적인 것이고 국내에만 효력이 미치는데 왜 국제조화를 강조하는가? 그 배후에는 자국의 지재정책, 특허정책의 영향력을 더 넓히려는 움직임이 내재되어 있다. 우리나라도 올해 특허청 국장급 공무원 등을 아랍에미리트에 장기간 파견한 예가 있다. 아랍에미리트의 심사실무 정착을 도와준다는 취지이다. 자연스럽게 우리나라의 특허심사실무가 뿌리를 내릴 것으로 기대되고, 이에 부수되어 보이게, 보이지 않게 국익에 도움이 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미국이 선발명주의를 버린 것은 스스로 불편해서가 아니고 외국으로 나가기 위함이다. 미국의 제도를 외국으로 수출하기 위함이다. 선발명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미국 제도는 다른 나라들에게 어느 정도의 위화감이 있었다. 미국은 이를 과감히 없앤 것이다. 미국은 자국의 제도를 외국의 제도에 맞추는 유연함을 가졌다. 그러한 유연함에선 유럽특허청의 탄생, 유럽특허법원 창립 움직임, 중국의 부상 등에 맞서 자국 제도의 영향권을 넓혀야 한다는 절실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아마도 토머스 제퍼슨은 본인이 선발명주의를 설계하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이해하였을 큰 틀의 변화이다.

국제조화정책들 중 핵심적인 항목이 '심사관 육성'이다. 심사관이란 특허 출원을 심사하는 공무원을 말한다. 한국 특허청에 출원한 특허를 심사하는 심사관의 육성이 어떻게 국제조화의 핵심사항이 될 수 있을까?

특허 심사기간 등 비교

각국의 특허청에서 물론 독자적으로 심사를 진행한다. 삼성전자가 갤럭시폰의 어느 기능 관련 특허를 발명했다고 하면 삼성전자는 이를 미국, 유럽, 중국, 일본, 한국 등 주요국에 출원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이러한 경우 각국 특허청이 동일한 심사에 걸리는 시간, 비용, 심사결과, 심사품질이 비교하기 싫어도 비교가 된다. 삼성전자는 안방에서 앉아서 각국 특허청을 비교할 수 있는 데이터가 생기는 셈이다. 예들 들어 일본 특허청의 심사가 너무 오래 걸리고 양질의 서비스를 받기 어렵다는 판단을 한다면 일본에 출원을 포기할 수 있다.

출원심사의 중요성은 IP5(미국, 유럽, 중국, 일본, 한국)의 특허청장 회의에서 심사관 상호 정보교환 및 경험 공유 등의 노력이 병행되고 있어서 IP5 회의에서 어느 나라 심사가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제일 신속한지가 보이지 않게 경쟁이 된다. 나아가 우리나라와 같이 특허무효율이 60%를 넘는 국가들에서는 양질의 출원심사를 통하여 특허권에 적합하지 않은 출원들을 원천적으로 가려낸다는 측면에서도 양질의 특허출원심사는 중요하다.

우리나라 특허청 심사관은 매우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미국 특허청 심사관 수가 7000명, 중국이 6000명 수준인데 우리나라는 700명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주요 특허가 IP5에 전부 출원되고 있다고 가정하면 업무는 동일한데 인원은 10분의 1이라는 말이 된다. 물론 미국, 중국에는 자국에만 출원되는 특허건수가 상당히 있을 것이기는 하지만 그러한 사정은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한국 심사관 700명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1명이 10명을 이기기는 어렵다. 1명이 10명분의 심사를 하면서 더 빠르게 더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는 어렵다. 심사관이 증원되어야 하고 심사관 육성에 큰 힘을 쏟아야 한다. 특허청에 독자적인 인사권을 주어야 한다.

특허청 심사관을 한 명의 공무원으로만 보면 안 된다. 특허청 심사관은 첨단의 전쟁에서 싸우는 지재 전사이다. 치열한 국가 간의 영향력 경쟁에서 우리나라를 지킬 수 있고 나아가 다른 나라에 우리 영향력을 심을 수 있는 인원과 역량이 확보되어야 한다.

율곡 선생의 10만 양병설과 같이 우리도 지재 전문인력 10만을 키울 필요가 있다. 지재권은 이제 '지재입국'의 시대를 넘어 '국제적 조화'의 시대로 가고 있다. '국제적 조화'는 다름 아닌 치열한 국가 간 경쟁이다. 지재권을 통하여 나라를 세우고 부강하게 하자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지재권은 국내용이 아니고 이미 국제용이다. 지재권의 역할이 달라지고 있다는 큰 흐름을 보고 우리도 대처하여야 한다. 이미 늦은 감이 있다.

토머스 제퍼슨이 지금 우리나라에 있다면 특허청 심사관을 포함한 지재 전문인력을 획기적으로 늘리고 이들의 교육에 막대한 힘을 쏟으라고 하지 않을까.

한상욱 변호사(swhan@kimchang.com, 김앤장 법률사무소)

◇한상욱 변호사는 1991년부터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활동하고 있는 지적재산권 분야의 전문가다. 서울대 법대를 나와 하버드대 로스쿨(LLM)과 동경대 법과대학원에서 공부했으며, 한국변호사와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갖추고 있다. 《지적 재산법의 미래》 등 지적재산권 관련 여러 권의 저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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