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와 실사ㅡ소통의 미학

[이규화 변호사]

2014-10-22     김진원
"그때는 막 쓸어 담았다는 표현이 맞아요. 실사고 뭐고 그런 거 하지도 않았어요. 남는 돈을 주체할 수가 없었거든."

IMF 외환위기가 오기 전, 한국경제가 그야말로 순풍에 돛 단 듯이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그 당시 모 대기업의 M&A를 담당하였던 지인이 전 세계를 무대로 이런 저런 회사들을 사들였던 것에 대하여 무용담처럼 하던 말이다. 그런데 그 대화의 방점은 다음에 있다.

"우리가 뭐 언제 M&A를 제대로 해 본 적이 있었나? 실사가 뭔지도 잘 모를 때였지. 그런데 제대로 실사도 하지 않고 마구 사들였던 회사들이 하나, 둘 문을 닫는 거야. 생각지도 않았던 이런 저런 문제가 생기는데 도저히 감당이 되지를 않더라고요."

그 지인은 그 당시의 무모했던 M&A 시도에 대하여 참 어처구니가 없는 실수를 했다고 실토하곤 했다.



실사는 M&A의 시작

M&A에 있어서 실사는 모든 절차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이전에도 거쳐야 하는 단계가 있을 수 있으나 이는 내부적인 의사결정 또는 자본조달을 위한 준비과정이거나 비딩(bidding)의 경우 그 절차에 참여하기 위한 형식적인 단계인 경우가 대부분이며 실제로 M&A의 시도가 구체화되는 것은 실사를 시작하면서라고 할 수 있다. 또 위에서 본 것처럼 실사는 성공적인 M&A를 위한 가장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과정이다. 아무리 훌륭한 회사를 사면 무엇 하겠는가? 대상회사가 내가 원했던 그 회사가 아니라면, 내가 알고 있던 그 회사가 아니라면 아무 소용이 없지 않겠는가? 더구나 생각지도 않았던 여러 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는 회사라면 그 인수는 그야말로 악몽의 시작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아직도 실사과정을 시간의 낭비, 비용의 낭비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이제 그 인식이 많이 바뀌기는 하였지만.

필자가 외국의 소위 global company를 대리하여 국내회사의 인수를 대리할 때 일이다. 당시 국내외적으로 주목을 받았던 그 딜(deal)의 실사를 위하여 필자의 클라이언트(client)인 global company는 변호사는 물론 회계사, 변리사 등 수십 명의 국내외 전문가들을 활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본사에서도 서울에 수십 명이 출장을 와서 장기간 호텔에 묵으며 실사를 진행했다.

수십 명 출장 와 실사 진행

그러다가 여러 가지 사정을 이유로 갑자기 실사를 중단하고 한국에서 철수하면서 그 딜에서 손을 떼게 된다. 잘은 모르지만 당시 실사를 위하여 외부 전문가들에게 지불한 비용, 본사 사람들이 서울에 머물면서 지출한 비용(더하여 상실한 기회비용까지)을 합하면 엄청난 액수가 나왔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나중에 그 건에서 필자와 일을 같이 하였던 사내변호사와 대화를 나눠보니 그 global company는 이를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러 사정으로 딜을 완결하지는 못하였지만 성공적인 M&A를 위해 실사는 반드시 하여야 하므로 그 실사비용은 필요경비일 뿐이고 이를 아까와 하는 자세로 접근하면 나중에 큰 코 다칠 수 있다는 것이다. 역시 global company는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하면서 매우 인상 깊었던 기억이 새롭다.



대상회사의 현황 중 어떤 내용에 대하여 실사를 하여야 하는지는 이미 많은 분들이 알고 있을 것이므로, 또한 자세한 실사목록을 구하는 것도 어려운 것이 아니므로 구체적인 실사항목에 대하여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필자가 경험을 통하여 중요하다고 느낀 점 몇 가지를 설명 드리면 다음과 같다.

목적 염두에 두고 접근해야

우선 매수실사의 경우 '우리가 왜 이 회사를 인수하려고 하는가?' 하는 목적을 염두에 두고 접근을 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만약 그 회사의 뛰어난 기술력을 보고 인수를 하려는 경우라면 당연히 그만한 가치를 가지는 기술력을 제대로 가지고 있는 지, 인수 후 그 기술을 우리가 제대로 사용할 수는 있는 것인지 등을 무엇보다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강한 영업력/고객관계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인수를 하려고 한다면 과연 영업조직/고객관계가 정말로 생각한 대로 탄탄한가에 대하여 확실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실사를 하여야 한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점은 Post Merger Integration(PMI, 사후통합)을 미리 고려하면서 실사 자료를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실사는 회사의 현재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여 문제점을 알아내서 그 해결책이 있는지, 그 문제를 어떤 식으로 계약에 반영하여야 할지 등을 알아내기 위하여 하는 것이 기본 목적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관계를 근거로 M&A후 통합작업에 어떤 문제가 있을지를 미리 생각해 보는 것도 매우 유익한 일이다. 성공적인 M&A는 단지 좋은 매물은 적당한 가격에 인수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전혀 다른 부모와 다른 환경에서 자란 남녀가 결혼을 하여 한 가정을 이루어 가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처럼 서로 다른 두 조직이 하나가 되어 가는 과정 또한 그리 녹록한 일은 아니다. 순조로운 통합에 문제는 없는지, 그 해결방안은 과연 존재하는지 등에 대하여 미리 생각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실사를 거치면 생각지도 못한, 사후통합에 관련된 문제를 발견하고 그 해결책을 미리 준비할 수 있게 되는 경우도 있다.



회사 사정 공개 범위 갈등

매수인으로 실사를 하는 경우와는 달리 매도인의 입장에서 실사를 준비하면서 제일 애매한 대목은 과연 회사의 사정을 매수 희망자에게 어느 정도까지 알려주어야 하는 지이다. 어떤 회사든 나름의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데 그 내용을 있는 그대로 다 알려줄지, 어느 정도만 알려줄지 아니면 상대방이 찾아내는 경우라면 몰라도 일단 덮고 갈지 등 갈등을 하게 된다.

또 회사에 대한 내용 중에는 회사의 기술력, 영업조직 및 거래상대방, 회계/재무자료, 제품정보 등 소위 영업비밀(trade secret)로 분류될 수 있는 것들도 많은데 이를 어떻게 다 알려줄 수 있느냐고 항의를 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매수 희망자가 다수인 경우 결국은 하나의 매수인하고만 계약을 체결하게 될 것이므로 쓸데없이 많은 상대방들에게 회사의 귀중한 현황을 알려 주게 되면 불필요한 자료누출이 생기게 되어 회사에 손해를 끼칠 수도 있으므로 되도록이면 실사자료를 줄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틀린 생각은 아니다. 걱정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필자가 관여하였던 M&A 사례에서 실제로 이러한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된 적이 있다. 회사 관계자들이 '(매수 상대방이) 실제로 M&A를 할 생각도 없으면서 여러 회사들과 접촉하여 당해 회사들의 관련 자료만 받아 보고 실제로 딜을 마무리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우리의 경우도 괜히 귀한 회사 자료만 주고 결국은 딜이 성사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걱정을 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 딜은 실제로 성사되지 않았다.

매도인의 진술보장 책임

그러나 자료를 주지 않는다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매수인은 진술보장(representations & warranties)을 통하여 매도인에게 일정한 책임을 지우게 되는데, 제대로 된 자료를 주지 않고 덜컥 진술보장을 하였다가 나중에 책임을 모면할 수 없는 경우도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미리 문제를 알려주고 당사자간에 적절한 해결책을 찾아 사전에 정리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일 수 있다.



여자들의 화장과 관련하여 들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일정한 기간 연애를 하고 결혼에 골인한 신랑에 관한 우스갯소리다. 신혼여행을 가서 아침에 일어났다가 옆에 모르는 여자가 자고 있어서 깜짝 놀랐다는 것이다. 화장을 지운 부인의 얼굴을 처음 보았기 때문이라나. 새 회사를 인수한 후 위의 신랑처럼 깜짝 놀라지 않기 위해서라도 실사는 반드시 거쳐야 한다. 시간과 비용이 들더라도 진지하게 진행을 하여야 한다.

매도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실사자료를 제대로 준비하고 매수인의 의문이나 걱정을 미리미리 상의하여 처리할 수 있다면 M&A가 끝난 후에 예상치 않았던 분쟁이나 송사에 휘말리는 낭패를 피할 수 있다. 적절한 소통은 언제나 필요하다.



이규화 변호사(kyuwha.lee@leeko.com)

◇법무법인 광장의 M&A팀을 이끌고 있는 이규화 변호사는 한글과컴퓨터 인수, 금호생명 인수, 대우조선해양 매각 자문 등 수많은 M&A 거래를 수행했다. 사법연수원 수료 후 미 튤레인대 로스쿨(JD)로 유학, 뉴욕주 변호사 자격까지 갖췄으며, 국내외 매체로부터 M&A 분야를 대표하는 리딩 로이어로 단골로 소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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