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이 문제야"

[이광욱 변호사]

2014-10-03     김진원
Window95가 출시된 무렵이다. 당시 사법시험 1차 시험과목에는 영어가 있었는데, 지문 중 Window95를 설명하는 내용이 있었다. 지금에야 유치원생도 알 수 있는 'Window', 'Mouse', '휴지통'이지만, 도서관에 틀어박혀 시험 준비하던 법대생 중에는 'Window'가 창문이 아니라 OS(Operating System)이고 'Mouse'가 쥐가 아니라 책상 위에서 조작 가능한 컴퓨터 입력장치이며, '휴지통'이 책상 밑 휴지통이 아니라 컴퓨터 화면상의 휴지통이라는 것을 몰랐던 이들이 적지 않았다(나도 그런 이들 중 한 사람이었다). 그들은 "Open the window and click on the recycle bin with your mouse."를 '창문을 열어서 당신의 쥐로 재활용 휴지통을 찰칵 소리 나게 때린다.'와 같이 엽기적으로 번역할 수밖에 없었고, 당연히 영어 성적도 엽기적이었다.



이렇듯 일상 용어가 IT 용어로 전이된 경우는 상당히 있는데 플랫폼(platform)도 그 중 하나다.

플랫폼=plat(구획된 땅)+form(형태)

안나 카레리나가 브론스키를 처음 만난 모스크바 기차역의 '플랫폼'이 구글의 안드로이드OS, 애플의 애플스토어, 페이스북의 SNS를 지칭하는 의미로 바뀐 것이다. 기차역 플랫폼이 왜 이런 데 쓰일까 의아할 수도 있지만, 플랫폼이 plat(구획된 땅)과 form(형태)의 합성어인 점을 알게 되면 IT 생태계에서 서비스의 바탕이 되는 마당(場) 또는 울타리를 플랫폼이라고 부르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울타리는 다양한 서비스를 품을 수 있으므로 유튜브는 동영상의 플랫폼이고 아이튠즈는 음악의 플랫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플랫폼은 온갖 과일나무를 심고 수확하고 팔 수 있는 터를 제공하는 임대형 과수원이라고 할 수 있다. 빌린 터에 심은 과일나무는 흉년이 들거나 새로운 품종의 과일(서비스, 컨텐츠)이 생기면 교체될 수 있으나, 과수원(플랫폼)은 지속 가능하게 존속하면서 이익을 얻을 수 있다. 튼실한 과수원을 만들기 위해서는 맛있는 과일을 맺는 과일나무를 심는 사람(서비스, 컨텐츠 업체)과 종자/비료(소프트웨어, 하드웨어)를 대는 사람뿐만 아니라 과일을 그때그때 사주는 충성도 높은 소비자(서비스 이용자)가 있어야 한다.

일종의 임대형 과수원

이런 과수원을 일구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나, 일단 궤도에 오르게 되면 과수원 경영자는 임대형 과수재배자, 종묘상과 고객 등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시장지배적 지위)을 갖게 되고 심지어는 이웃 과수원까지 모조리 살 수도 있다(인수합병). 그 결과 세상에 과수원이 몇 개밖에 남지 않게 되면 과수원 경영자는 과수재배자, 소비자를 차별하거나 임료를 높여 폭리를 취할 수도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과수재배자를 내쫓고 자신이 직접 재배할 수도 있다(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또는 불공정거래행위).



한편 과수원을 경영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으로 물을 공급받을 수 있는 관개시설이 필요한데, 이러한 시설을 제공하는 사람(네트워크 사업자, 통신업체)은 제한적 자원인 물의 흐름(망, 네트워크)에 무리를 준다는 이유로 특정 과수원에 물 공급을 중단할 수도 있다. 이 때 과수원 경영자는 관개시설업자에게 부당하다고 주장하며 차별적 취급을 하지 말라고 주장한다(망 중립성 · Network Neutrality). 반면 과수원 경영자가 (잠재적) 과수재배자나 비료업자(하드웨어 사업자)와 계약 체결을 거부, 중단하거나 특정 업체에 특혜를 주면 이번에는 과수재배자 등이 과수원 경영자에게 부당하게 차별하지 말라고 항의한다(플랫폼 중립성 · Platform Neutrality).



현재도 그렇지만 미래에는 플랫폼을 가지는 자만이 승자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플랫폼을 갖지 않는 자는 플랫폼에 종속되고 결국에는 도태된다는 예상이다. 모바일 사업만 보더라도 애플은 iOS라는 플랫폼을 기반으로 아이폰 왕국을 세웠고, 구글도 안드로이드OS라는 플랫폼을 기초로 안드로이드 세상을 만들었다. 전 세계 기업들은 강력한 플랫폼 구축의 필요성을 실감하며 스스로 플랫폼 사업자가 되고자 하면서도 기존의 플랫폼 사업자에 대해서는 경쟁법 이슈를 제기하고 있다.



플랫폼 관련 경쟁법 논의 활발

최근 국내에서도 플랫폼과 관련한 경쟁법적 논의가 활발하고, 국회와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문제된 구체적인 사례도 있는데, 두 가지만 살펴보겠다.



첫째, 국내 모바일 플랫폼 시장의 최강자인 구글(안드로이드OS로 국내 모바일 OS의 85.4%, 구글플레이로 국내 앱마켓의 49%의 시장점유율을 갖고 있다)의 시장지배력 논란이다. 구글은 안드로이드가 무료로 공개되는 완전 개방형 플랫폼이며 플랫폼 중립성을 지키고 있다고 주장하나, 통신사, 단말기제조사, 서비스사는 개방정책으로 OS 플랫폼 시장에서 시장지배력을 형성한 구글이 다른 관련시장(앱 시장 등)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불공정거래행위를 하고 있다고 이의를 제기한다.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경쟁사의 앱마켓을 검색할 수 없도록 하고, 수수료율이 과도하다는 등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구글 신고했으나 무혐의 결정

실제로 공정위 신고로 이어진 경우도 있는데, 2011년 NHN과 다음은 구글이 국내 스마트폰 제조사에 안드로이드OS를 공급하는 과정에서 구글의 검색엔진만을 선탑재하고 다른 회사의 검색 프로그램을 배제하도록 하는 불공정거래행위를 했다며 신고했다(이에 대해 공정위는 2013년 '구글의 선탑재 전후에도 다음은 국내 시장점유율이 10% 내외에 머문 반면 네이버는 여전히 70%대의 점유율을 유지해 경쟁제한성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혐의결정을 하였다). 그리고 국외사업자인 구글의 불공정거래행위를 공정거래법이 효과적으로 규제할 수 없다는 인식 아래 공정거래법과 전기통신사업법에 실질적인 반독점 규제 조항을 신설하자는 입법론도 제기되고 있다.



둘째, 모바일 상품권 판매와 관련한 카카오에 대한 공정위 신고 사건이다. 2011년부터 4개 회사가 카카오의 모바일 상품권을 발행하여 카카오톡 내의 '선물하기'를 통하여 모바일 상품권을 판매하여 왔는데, 카카오는 올해 6월30일부로 기존 4사와의 플랫폼 사용에 관한 계약 갱신을 거절함으로써 기존 사업자들이 더 이상 모바일 상품권을 판매할 수 없도록 하고 올 7월부터 카카오가 단독으로 직접 모바일 상품권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에 기존 모바일 상품권 사업자들은 모바일 메신저 시장에서 90%의 시장점유율을 가지는 카카오가 모바일 메신저 시장에서의 절대적인 시장지배력을 모바일 상품권 시장에 전이하여 모바일 상품권 시장을 독점화함으로써 소비자의 이익을 저해하였고, 필수요소 사용거절 및 부당한 거래거절로 기존 모바일 상품권 사업자들의 사업활동을 방해하였다는 등의 내용으로 카카오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모바일 상품권 사업자들, 카카오 신고

이 사건은 모바일 메신저가 모바일 서비스의 플랫폼으로서 자리 잡으면서 모바일 메신저를 활용하여 서비스를 제공하는 여타 사업자들의 사업영역으로 자신의 사업영역을 확대하려는 플랫폼 사업자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행위를 문제 삼은 건으로 향후 공정위가 관련시장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 플랫폼의 소비자 후생 증대 기여를 어떻게 볼 것인지 등 귀추가 주목된다.



구글이나 애플과 같은 플랫폼 공룡이 없는 우리나라로서는 규모와 경쟁력을 갖춘 플랫폼 사업자를 육성함과 동시에 IT 생태계를 교란하는 플랫폼(행위)에 대해서는 적절한 규제를 해야 한다. 1998년 개봉한 영화 '고질라'가 "크기가 문제야(Size Does Matter)"라는 광고 카피를 전면에 내세웠듯, 우리 정부와 기업 그리고 이를 지원하는 변호사도 "플랫폼이 문제야(Platform Does Matter)"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면 어떨까.

이광욱 변호사(kwlee@hwawoo.com)

◇이광욱 변호사는 공정거래 분야 전문가로, 퀄컴을 대리한 시장지배적지위남용 사건, 프랑스, 일본 기업을 대리한 카르텔 사건, SKT를 대리한 SMS, 단말기 보조금 관련 사건 등 경쟁법 분야의 다양한 사건에서 자문한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펜실베니아대 로스쿨에서 LLM을 했으며, 미국의 Steptoe & Johnson 뉴욕사무소에서 외국변호사로 근무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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