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매가격유지행위 원칙적 금지"

[구상모 변호사]

2014-09-06     김진원
신혼살림 장만을 위해 전자제품을 구입하려는 A씨, 같은 TV인데도 대리점마다 판매하는 가격이 모두 다르고, 어느 대리점에서는 TV를 싸게 팔지만 세탁기는 또 다른 대리점에서 싸게 파는 등 분명히 같은 물건인데 왜 대리점마다 가격이 다른 것인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같은 가격으로 팔면 어디에서 사든 바가지를 썼다는 생각도 들지 않고 오히려 편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화장품을 만드는 B사는 요즘 고민이 많다. 해외 명품브랜드의 화장품과 경쟁하기 위해서 고기능성 화장품을 출시하여 브랜드의 가치를 유지하고 고정(충성) 고객을 확보하는 정책을 실시하려고 했는데, 대리점에 유통되면서 가격이 천차만별이 되고 일부 인터넷판매점에서는 정상가격의 50%에 가까운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다. B사는 막대한 투자비용에도 불구하고 당초의 정책을 유지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물론 B사만 고민이 있는 것은 아니다. B사의 대리점은 싼 가격으로 판매하는 인터넷판매점에 고객을 빼앗겨 고민이고, 대리점에서 화장품을 구매한 일부 소비자는 자신만 비싼 가격에 산 것 같은 생각에 마음이 불편하다.

50% 할인판매도

만약 전자제품, 화장품을 만드는 제조사가 대리점에게 상품을 판매하면서 상품의 소비자가격을 지정해주고, 대리점에게 제조사가 정해준 소비자가격대로 판매를 하도록 강제할 수 있다면 위와 같은 현상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공정거래법상 제조사가 대리점 등 유통업체(또는 도 ․ 소매업자)가 판매하는 소비자가격을 지정하고 이를 준수하도록 강제하는 행위는 ‘재판매가격유지행위’라고 하여 금지되고 있다.

제조사 개입 금지

제조사들은 자신이 대리점에게 판매하는 가격 외에 대리점이 상품을 유통하는 과정에서 판매하는 가격에 대해서는 개입할 수 없고, 대리점마다 소비자가격을 결정하여 판매하기 때문에 위와 같이 대리점마다 다른 가격으로 상품이 판매되는 것이다. 물론 제조사가 직접 소비자에게 판매를 하거나, 대리점에서 판매를 하더라도 제조사가 ‘판매’만을 위탁하고 그 수수료를 지급하는 형태의 대리점이라면 제조사가 정한 가격대로 소비자에게 판매되나, 위에서 말하는 도소매점, 대리점은 제조사로부터 물건 자체를 구입하여 자신의 책임아래 판매를 하는 대리점을 의미한다.

도대체 공정거래법은 왜 가격을 지정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아래와 같이 3가지 측면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1. 대리점의 가격결정권 침해 금지=도매업자, 소매업자, 대리점 등 사업자는 자신의 비용을 투자하여 자신의 사업을 독자적으로 운영하는 사업자이기 때문에 스스로 가격이나 판매조건을 결정하여 판매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공정거래법은 제조사가 대리점의 가격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재판매가격유지행위를 제한하고 있다.

대리점에 일방적 불리

자신의 책임 아래 도소매업을 영위하는 대리점은 판매가 잘 되는 상품의 경우 가격을 높이고 판매가 잘 되지 않는 상품은 가격을 낮추어 최대한 많은 상품이 판매될 수 있도록 스스로 결정하는 대신 판매가 되지 않을 경우에 발생하는 손해를 모두 부담하는데, 손해에 대한 책임을 거의 부담하지 않는 제조사가 갑의 지위를 이용하여 잘 판매되지 않는 상품도 할인판매를 할 수 없도록 한다면 이는 대리점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다.

2. 브랜드 내 경쟁 촉진=일반적으로 ‘경쟁’이라고 하면 브랜드와 브랜드가 경쟁을 하는 것을 떠올리지만 공정거래법은 이러한 브랜드 간의 경쟁 뿐 아니라 같은 브랜드 제품을 판매하는 대리점 간에도, 즉 브랜드 내의 경쟁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브랜드 간에는 당연히 더 나은 상품을 만들고 판매하기 위한 경쟁을 하여야 하고, 브랜드 내에서는 같은 물건이라고 하더라도 더 좋은 조건으로 소비자들에게 판매하기 위한 경쟁을 하여야 소비자들에게 더 많은 이익이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3. 수직적 담합 방지='높은 가격으로 판매할 수 있고 그 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 판매하는 대리점이 단 한 곳도 없다면' 높은 가격으로 판매하는 것이 제조사, 도소매점 등 대리점 모두에게 유리할 것이다. 따라서 만약 제조사의 재판매가격유지행위를 금지하지 않을 경우 제조사와 대리점이 모여서 가격을 정하고 그보다 낮은 가격으로는 판매하지 않기로 하는 담합을 할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담합을 수직적 담합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될 경우 결국 브랜드 내 경쟁은 물론 브랜드 간 경쟁도 점점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

위와 같은 이유로 공정거래법은 소비자 A와 화장품 제조사 B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재판매가격유지행위를 금지하여 최대한의 경쟁을 이끌어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좀 더 생각해보면 가격을 지정하는 것이 지정된 가격으로만 판매를 하도록 하여 할인을 금지하는 측면도 있지만 더 높은 가격으로 판매하는 것도 막아 주기 때문에 소비자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측면도 있고, 브랜드 내의 경쟁을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면 브랜드의 이미지 하락 등으로 인해 브랜드 경쟁력 자체가 저하되어 브랜드 간의 경쟁을 약화시키고, 이는 제조사의 투자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어(이는 다시 대리점의 손실로 이어질 것임) 무조건 금지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정당한 이유 있으면 허용

이러한 순기능을 고려하여 공정거래법과 관련 판례는 재판매가격 유지행위를 원칙적으로는 금지하지만, 정당한 이유(효율성 증대로 인한 소비자후생 증대효과가 경쟁제한으로 인한 폐해보다 큰 경우)가 있는 경우 가격을 지정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공정거래법의 취지를 최대한 살려 소비자들에게 돌아가는 이익도 극대화하고 제조사 등 기업과 대리점도 상생할 수 있도록 경쟁당국의 신의 한수가 필요하다. 그렇게 할 때 소비자 A는 발품을 팔아 시장정보를 수집하여 최대한 좋은 가격과 조건으로 가전제품을 구입할 수 있을 것이고, 화장품 회사 B는 지속적인 투자로 질 좋은 상품을 생산하고 대리점은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최대한 이익을 창출하며 화장품을 구입하는 소비자도 양질의 상품을 공급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구상모 변호사(smkoo@hwawoo.com, 법무법인 화우)

◇구상모 변호사는 공정거래 분야가 주된 업무분야로, 1999년부터 2007년까지 공정거래위원회 법령 · 제도 전문관과 심결전문관을 역임했다. 2007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각종 카르텔 사건, 시장지배적지위 남용, 불공정거래행위, 불공정하도급거래행위 사건, 공정거래 자율준수 프로그램 컨설팅 등의 자문과 대리를 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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