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 양성해 국제 지재담론 리드하자

[한상욱 변호사]

2014-08-05     김진원
2008년 10월 제주도에서 'IP5' 회의가 개최되었다. IP5의 정식 명칭은 '세계 주요 5개 지식재산기관 포럼(A Forum of the five largest intellectual property office in the world)'이다. 미국, 중국, 유럽, 일본, 한국만이 회원국이고 이들 5개 나라의 지재권 수장들(특허청장)이 정기적으로 회의를 가진다.

2007년 5월 미국 하와이에서 처음 5개 청장회의가 개최된 이후 매년 특허청장, 특허청 차장급 회의가 개최되고 있다. 이들 IP5 국가들의 특허출원이 전 세계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므로 이들이 모여서 특허정책을 정하면 반대할 나라도 별로 없다.



IP5 특허출원 90% 이상 차지

얼마 전 전직 특허청장님께 들은 이야기이다. 1990년대 후반 우리나라 특허청장이 미국 특허청장을 면담하기 위하여 워싱턴 방문을 추진하게 되었다. 미국 특허청 입장은 굳이 한국 특허청장을 만나서 할 이야기도 없고 현안도 없다고 생각했는지 면담할 생각이 없다는 응답을 보내왔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무슨 이유 때문에 그렇게 미국 특허청장을 만나려고 무리를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여러 실무적 논의사항을 미국에 전달하면서 "그래도 꼭 만났으면 좋겠다. 논의사항이 적절하지 않으면 say hello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전언을 했다고 하고, 미국의 반응은 "알겠다. 그럼 인사만 하자"라는 것이었다.

우리 특허청 준비팀은 미국 특허청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실질적 논의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많은 준비를 하였다. 드디어 워싱턴에서 미국 특허청장 및 관련팀과 한국 특허청장 및 준비팀이 회의를 하게 되었다. 미국 특허청장이 회의장에 들어오더니 간단한 인사만 하고는 "원래 약속이 say hello였으니 다른 일정 때문에 먼저 실례한다"고 하면서 자리를 떴다는 것이다. 그때 그 자리에 있었던 한국 특허청 관계자들 대부분은 많은 실망감과 심지어는 모멸감을 안고 한국에 돌아오게 되었다.



인사만 하고 자리 떠

그로부터 약 10여년 후인 2008년 10월 제주도에서 IP5 특허청장 회의가 열렸다. 한국이 주최하고 준비한 회의이다. 미국 특허청장이 손을 들고 사회를 보고 있는 한국 특허청장에게 발언을 요청했다. 한국 특허청장이 발언을 허락하고 이에 따라 미국 특허청장이 발언을 했다. 한국 특허청장이 논의를 리드했다.

1990년 후반 미국 특허청 방문을 준비하고 방문했던 직원 중 일부는 2008년 10월 제주도 회의때도 적극 관여하였었는데 이들 중 많은 분들이 우리나라 특허청의 위상 변화를 실감하고, 옛날 분했던 기억을 상기하면서 눈물을 글썽였다고 한다.



10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변화의 주역은 정부도 물론 열심히 하였지만 뭐니뭐니해도 삼성전자, SK 하이닉스, 엘지화학 등 기업들이다. 이들이 미국, 유럽 등에서 특허 출원의 10위내에 그것도 상위권에 자리를 잡게 되니 각국의 특허청은 한국을 다시 볼 수밖에 없게 되고 IP 청장 회의에 한국을 끼어준 것이다.

삼성전자 등 특허출원 상위권

정부기관 수장들의 정기적인 회의가 얼마나 많은지 잘은 모르지만 IP 분야처럼 IP5만의 회의는 없을 것으로 생각되고, 나아가 그 논의 내용을 보면 IP5 회의와 같이, 각국이 업무분장을 하고 각국이 맡았던 업무를 전체 회의에서 보고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회의는 없는 것 아닌가 한다.

예들 들면 특허출원의 분류를 어떻게 할지는 EPO(유럽특허청), 검색 및 심사결과 공유는 일본 특허청, 한국 특허청은 기계 번역과 심사관 교육 정책을 담당하고 있다. 마치 한국의 특허청 내부의 업무분담 같은 분위기이다.

외교장관 회의가 있는데 위 5개국에서만 참여하면서 중동평화 대책은 미국에서 검토하고, 한국 외교부는 외교부들간의 정보공유 시스템을 점검한다는 식으로 각 외교부 사이에 업무분담을 한다는 것은 아직 상상하기 어렵다. 유독 지재 분야에서 그런 현상이 생기고 그 중요한 모임에 우리가 적극 관여하고 기여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자랑스러운 일이다.



이렇듯 각국이 업무를 분담하고 이를 전체회의에서 공유하다 보니 각국 특허청의 수준이 자연스럽게 비교될 수밖에 없다. 나아가 이러한 회의를 리드해 나가는 특허청장과 특허청내 실무진들의 수준도 비교될 수밖에 없고 어느 나라가 어떤 주제를 담당할지, 이를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갈지 등을 둘러싸고 보이지 않는 경쟁도 당연히 있다.

나는 이 2000년 후반에 우리가 IP5 회의에 들어가게 된 것은 하늘이 주신 기회라고 생각한다. 1990년대에 이런 모임이 조직이 되었다면 한국이 끼기는 쉽지 않았으리라.



'지재입국'은 과거 구호

IP5와 같은 회의가 가능한 것은 지재권이 통합의 시대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지재권의 역할이 달라지고 있다. '지재입국'이란 말을 들어 보셨으리라. 지재는 그 동안 각국의 산업을 발전시키는 수단으로서의 역할이 강조되어 왔다. 이제 지재입국은 과거의 구호이다. 이를 넘어 '지재를 통한 국제적 리더십의 획득'으로 이미 방향이 틀어졌다. IP5 각국의 2013, 2014년 지재 정책을 유심히 보면 읽을 수 있다. 지재라는 창을 통하여 자국의 지재 실무를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규범으로 상승시키기 위한 노력이 치열하게 진행 중이다.



지재를 통한 영향력 확대 노력도 눈여겨보자. IP5 이외의 국가와의 협력 및 지원이 더 늘어나게 될 것이다. 일본이 미얀마에 특허청 직원을 파견한 것이라든지 우리나라가 최근 아랍에미리트의 특허 심사업무 지원차 국장급 직원을 파견한 것들이 이러한 움직임의 징후이다. 더 늘게 될 것이다. 남미, 아시아 각국, 아프리카의 지재 정책이 논의되는 시대가 곧 올 것이고 그러한 나라들이 어느 나라의 지재 정책을 참고했는지가 국가의 리더십의 징표가 될 것이다.



특허에 대한 여러 담론을 한국이 리드하고 지재권을 통하여 한국의 발전 및 국제적 리더십을 획득하기 위한 인재양성이 시급하다.

특허청장은 지재의 최고 전문가 출신이 항상 되어야 하고 필요하면 임기를 4년 이상으로 연장할 필요도 있다. IP5의 논의를 리드해 나갈 수 있는 국제적인 역량과 지재권에 대한 혜안을 가진 인물이 지속적으로 특허청장이 되어야 한다. 이제는 특허청장 자리에 지재권 비전문가가 다른 고려에 의하여 임명되는 관행은 그만두어야 한다. 한국의 특허청장은 단순히 여러 차관급 정부 관료 중의 한 명이 아니다. 특허청장은 IP5의 일원으로서 국제적인 거대한 지재담론을 이끌어가야 한다. 준비된 지재 전문가가 특허청을 이끌지 않으면 우리 장래는 어둡다. 우리가 지지부진하면 어느 순간 우리를 빼고 IP4가 될 가능성이 상존한다.



모처럼 들어간 IP5에서 역동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지재권 관련 국제적인 논의를 리드하여야 한다.

한상욱 변호사(swhan@kimchang.com, 김앤장 법률사무소)

◇한상욱 변호사는 1991년부터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활동하고 있는 지적재산권 분야의 전문가다. 서울대 법대를 나와 하버드대 로스쿨(LLM)과 동경대 법과대학원에서 공부했으며, 한국변호사와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갖추고 있다. 《지적 재산법의 미래》 등 지적재산권 관련 여러 권의 저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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