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 리드하는 나라가 세계 리드한다

[한상욱 변호사]

2014-05-11     김진원
2010년으로 기억한다. 서울대 로스쿨의 정상조 학장, 심영택 교수로부터 주말에 북경에 함께 가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서울대와 인민대가 지적재산권 교류를 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왜 인민대지? 북경대도 있고 칭화대도 있는데?' 나의 첫 반응에 대한 궁금증은 나중에 풀렸다.



정 학장, 심 교수와 함께 참가한 인민대 세미나의 주제는 병행수입, 소진론, 기능식 청구항 등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논란이 한참 되고 있던 내용들이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그야말로 hot discussion이 이어졌다. 중국 측 참석자들은 각 주제에 대한 한국의 판결, 한국에서의 논의에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증액 손배제도 도입 논의

당시 나는 중국의 지재 관련 판결의 수준이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이나 2000년대 초반, 즉 10년 전 수준에 불과하구나 하고 느꼈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도 잠시, 이제는 중국이 증액 손해배상 제도의 도입 논의를 포함하여 우리보다 앞서 나가는 논의도 많다.



서울대가 인민대와 지재 분야의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이렇다. 정상조 학장이 지재 관련 중국 대학과 정식 교류를 하려고 북경대, 칭화대 등에 타진하는 과정에서 인민대와도 연락이 되었다고 한다. 인민대는 주로 공산당 간부의 자녀를 교육시키는 대학으로 알려져 있다. 방문하여 보니 법대가 법학원과 지식재산원 2개로 크게 나뉘어져 있었다. 그만큼 지재권이 매우 중시되고 있는 학교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재권 중시하는 인민대

다른 대학과 달리 인민대는 매우 적극적으로 서울대와의 교류를 원하고 있었고, 이는 정 학장 일행이 방문했을 때 정성을 다한 환대로 이어졌다. 인민대 법대 학장이 식사를 포함해 직접 많은 시간을 정 학장 일행과 함께 하면서 인민대와의 교류 필요성을 강조했다고 들었다. 당시만 해도 인민대가 서울대에 구애를 하는 시기였던 셈이다. 이후 매년 두 번씩 주말을 이용하여 서울과 북경에서 각각 소규모의 전문가 세미나가 열리게 되었다.

2010년 이후 중국은 세계적으로 더 부상을 하게 되어 여러 분야에서 미국과 쌍벽을 이루는 존재가 되었다. 지재권 분야에서도 중국은 국제 출원건수에서 독일을 제치고 2013년 세계 3위를 차지했다. 특히 중국 기업인 ZTE는 2011, 2012년 연달아 세계 1위의 국제출원기업의 영예를 차지했다.

2013년부터 일본도 참가

서울대-인민대의 지재 교류에 일본이 2013년부터 참가하게 되어 지난해 중국의 소주에서 열렸던 세미나는 이름이 '동아시아 IP Forum'으로 변경되었다. 이제는 한국, 중국, 일본의 지재연구 모임으로 발전한 것이다.

지금 인민대의 지재권 전공 교수들은 세계에서 제일 바쁜 교수들이다. 각국에서 공동 세미나를 하자는 제안이 넘쳐난다고 한다. 서울대도 몇 년 전에 인연을 만들어 놓지 않았으면 지금은 쉽지 않았을지 모른다.



중국의 제도와 관련하여 눈에 띄는 것은 중국의 '행정과 사법의 조화 노력'이다. 분쟁 해결의 역할을 사법부에만 부여하지 않고 행정부도 적극 관여한다는 점이다. 우리 대법원에 해당하는 중국의 최고인민법원의 중요 기능 중의 하나가 '사법 해설'이다. 사법부에 제기되는 구체적인 사안만 해결하지 않고 일반적인 법리를 설시한다. 사법의 본질과는 어울리지 않지만 중국 지재권의 큰 방향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다.

지재권 분쟁에서 '행정의 역할 강화'는 중국 제도의 특색으로 보인다. 미국의 무역위원회(ITC)도 어찌 보면 행정 기능에 속하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우리 무역위원회도 지재권 분쟁 해결에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하였으면 하는 바램까지 이어졌다.



지난해 소주에서 열린 동아시아 IP Forum에서 한 나의 발표 내용 중에 아시아 특허청, 아시아 특허법원 설립 제안이 들어가 있다.



속지주의 적용 받는 특허

특허는 속지주의 원칙의 적용을 받는다. 각국이 규정한 특허법에 따라 각국의 특허청에 출원을 하여 등록을 받고 분쟁이 생기면 각국의 법원에서 해결한다. 기본적으로 각국의 특허법은 자국 내에서 생긴 침해에만 관할을 갖는다. 일반적인 법 원리에서 보면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 속지주의이고 특허의 태생이 국왕이 발명자에게 주던 특권이었던 것을 보면 특허는 한 국가의 틀을 벗어나기 어려운 역사적인 배경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발명은 하나이다. 하나의 발명이 미국, 중국, 일본, 유럽에 각각 출원되는 것이어서 동일한 발명이 어느 나라에서는 특허권으로 등록이 되고 다른 나라에서는 특허 등록이 거절되는 현상은 자연스럽지 않다. 물론 각국의 특허제도에 대한 국가적 고려가 다를 수는 있겠으나 발명이 하나이므로 이에 대한 속지주의적인 접근엔 한계가 있다.



유럽 특허청이 설립되어 유럽 단일화에 큰 기여를 하고 있고, 지금은 유럽 특허법원이 논의되고 있다. 유럽의 통합을 가져오는 데 한 축을 담당하는 것이 유럽특허이다.

유럽 특허법원 논의

유럽은 경제 협력이 선행되고 특허의 통합이 이를 좇아 간 경향이 있지만 아시아에서는 특허의 통합을 선행하고 이를 각국의 경제 협력에 활용하는 순서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아시아 3국이 앞장서서 공동작업에 나선다면 세계의 축이 바뀔 수 있다. 한중일 3국의 특허출원건수를 합하면 미국의 두 배, 유럽 18개국과 비교하면 일곱 배가 넘는다.



오는 5월 2일 서울대에서 제2회 동아시아 IP Forum이 열린다. 그 자리에서도 나는 사후적 고찰 방지를 위한 한중일 3개국 공동 연구를 제안하려고 한다. 지재권은 일반 법률과 같이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이 말은 물론 민법, 형법 등이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가 아니다. 미국이 특허제도를 활용하여 국가 경쟁력을 되찾은 전례를 보라. 지재권은 외국과의 경제 협력, 교류에 필수적인 요소이다. 지재권 관련 인력을 더 확충하여야 한다.



지재권에 대한 핵심 논의를 우리가 리드하여야 세계를 리드할 수 있다. 우선은 한중일 3개국 간의 논의부터 잘 준비하여 우리의 역량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미국, 중국, 유럽, 일본의 틈바구니에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우리의 역할은 무엇인지 고민하고 방향을 빨리 잡아야 한다. 시간이 없다.

한상욱 변호사(swhan@kimchang.com, 김앤장 법률사무소)

◇한상욱 변호사는 1991년부터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활동하고 있는 지적재산권 분야의 전문가다. 서울대 법대를 나와 하버드대 로스쿨(LLM)과 동경대 법과대학원에서 공부했으며, 한국변호사와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갖추고 있다. 《지적 재산법의 미래》 등 지적재산권 관련 여러 권의 저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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