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의 기업간대출

[김종길 변호사]

2014-03-08     김진원
중국의 법제에 한국과 다른 부분이 적지 않지만, 그 배경과 운용현황을 보면 나름의 이유가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경우도 없지 않은데, 가장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기업간대출의 효력을 무효로 하는 것이다. 기업이 기업에 유휴자금을 빌려줄 수도 없고, 기업이 기업으로부터 돈을 빌릴 수도 없다는 것이다. 외국에서 비지니스나 법률에 종사하던 사람들로서는 어리둥절하고, 황당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



중국에서 기업간대출이 무효라는 점은 중국인민은행이 1996년 6월 28일 제정한 과 최고인민법원의 사법해석들에 명문으로 규정되어 있다. 제61조는 "기업간에 국가규정을 위반하여 차입대출 혹은 우회적 차입대출융자업무를 할 수 없다"고 규정했다. 기업간대출을 금지하는 이유에 대해 중국인민은행은 최고인민법원에 대한 회신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대출총칙 등에 명문 규정

"기업간의 대출, 차입행위는…정상적인 금융질서를 교란시키고, 국가의 대출정책, 계획의 집행을 관철하는 것을 방해하며, 국가의 투자규모에 대한 통제를 약화시켜, 경제질서를 문란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기업간에 소위 대출계약(혹은 차입계약)을 체결하는 것은 국가 법률과 정책에 위반되는 것이므로 무효로 하여야 한다."



최고인민법원은 1990년부터 1996년까지 여러 건의 사법해석을 통하여 다음과 같은 원칙을 확립했다.

첫째, 기업간대출은 중국금융관련법규에 위반되어 무효이다. 둘째, 원금은 반환해야 한다. 셋째, 약정이자(이자약정이 없으면 은행대출이자)는 지급여부를 불문하고 몰수한다. 넷째, 이자상당액의 벌금을 부과한다.



계획경제 시대 산물 비판

중국의 이러한 사법실무에 관하여는 비판적인 견해가 압도적으로 많다. 우선 기업간대출을 무효로 하는 것은 계획경제 시대의 산물인데, 현재는 이미 경제시스템이 시장경제로 바뀌어 더 이상 맞지 않는 옷이라고 비판한다.

국무원에서도 여러 번 현재 경제시스템에 맞지 않는 대출총칙을 수정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고, 대출총칙 수정안의 의견징구본에도 기업간대출을 무효로 하는 내용은 삭제되어 있다.

기업간대출 무효는 법이론적으로도 문제가 많다. 에서 계약이 무효로 되기 위하여는 '법률, 행정법규의 강행규정을 위반한 경우'에 해당하여야 하는데, 여기서 법률은 전인대 및 전인대상무위원회가 제정한 것을 말하고, 행정법규는 국무원이 제정한 것을 말한다. 대출총칙은 중국인민은행이 제정한 것이어서 행정법규가 아니라 행정규장에 해당한다. 따라서 대출총칙에 위반한다고 하여 계약을 무효로 할 수는 없다는 논리다.

사법해석 근거 법규 폐지

최고인민법원이 기업간대출에 대한 사법해석을 하며 근거로 든 금융법규는 의 "비금융기관인 기업간에는 상호차입, 대출행위를 할 수 없다"는 조항이었다. 그러나 그 후 는 폐지되었고, 이를 대체한 , 에는 기업간대출을 무효로 하는 조항이 명시적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다. 사법해석의 근거가 된 법규가 폐지된 경우에는 당해 사법해석의 효력도 상실되는 것이어서 위 사법해석에 근거하여 기업간대출을 무효로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또 비즈니스 거래에서 차입을 한 후에 차입인이 무효를 주장하며 계약이행을 거부하고, 이를 회피하기 위하여 거래방식을 복잡하게 만들다보니 관련 법적 분쟁이 증가하는 등 문제가 하나 둘이 아니다.

기업간대출을 무효로 하는 것은 법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부적절해 보인다. 그러나 기업간대출은 무효라는 사법해석은 명문으로 폐지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근 20년간 사법실무를 통하여 기업간대출은 무효라는 사고가 법관들 사이에 뿌리 깊게 박혀 있어 아직도 법원의 실무상 기업간대출을 무효로 보는 것이 여전한 현실이다.



여러 우회적 방안 고안

하지만 중국에는 "위에 정책이 있으면 아래에 대책이 있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정책이나 법률법규가 불합리한 경우 여러 수단을 통하여 그러한 불합리한 점을 제거하는 데 출중한 면모를 보여왔다. 기업간대출은 무효라고 판결받게 되는 곤란을 피하기 위하여 법률전문가와 기업들이 여러 우회적인 방안을 고안해냈다.

첫째, 위탁대출이다. 위탁대출은 대출인과 차입인이 대출조건을 모두 정한 후 은행에 위탁하여 은행을 통하여 대출하는 것으로 은행은 대출리스크는 전혀 부담하지 않고 위탁대출수수료를 받는다. 둘째, 신탁대출 혹은 PE(사모기금)를 이용하는 것이다. 셋째, '선예금 후대출' 방식이다. 대출인이 은행에 예금을 하고, 그 예금에 질권을 설정하여 차입인이 은행으로부터 대출받는 것이다. 이 경우 은행은 예대마진만큼의 이익을 얻을 수 있고, 예금담보가 있으므로 대출리스크도 없앨 수 있다. 대출인은 예금이자 외에 차입인으로부터 담보제공료의 명목으로 추가 수익을 취할 수 있다. 차입인의 입장에서는 일반적인 대출에 비하여 비용이 많이 든다는 불리한 점이 있다.

기업-개인간 대출 유효

넷째, 개인을 중간에 끼우는 형태이다. 중국법상 기업간대출은 무효이지만 기업과 개인간의 대출, 차입은 유효하다. 그러므로 중간에 개인을 끼워 대출기업이 개인에게 대출하고, 다시 개인이 차입기업에 대출을 하며, 개인의 대출에 대하여 차입기업이 연대보증을 제공하는 것이다.

다섯째, 매매계약 등 다른 형태의 계약에서 환매조항 등을 이용하여 실질적으로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도 한다.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매수인이 매도인으로부터 상품을 구매하는 것으로 규정하면서 선급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하고, 일정한 기한이 되거나 환매조건이 성취되면 매수인은 상품을 돌려주면서 선급금 및 위약금(이자상당)을 회수하는 내용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기업간대출과 관련한 중국 법원의 실무를 보면 재미있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대부분의 법원은 기업간대출을 무효로 판결한다. 무효로 판결하는 경우, 원금을 반환하도록 판결하는 점은 일치한다. 그러나 이자몰수에 관하여는 대부분의 법원이 판결하지 않는다. 일부 경제가 낙후된 지역에서는 이자몰수를 판결하는 경우가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최고인민법원을 비롯한 경제가 발달된 지방의 법원에서는 이자몰수를 판결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또 벌금을 부과하는 법원도 원칙적으로 없다.

이자몰수, 벌금부과 거의 없어

최고인민법원과 상당수의 지방법원에서는 기업간대출에 대하여 이자를 몰수하고 벌금을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차입원금을 돌려줄 때 공평의 견지에서 반환자금점용기간의 이자를 지급하도록 판결하고 있다. 다만, 이자계산은 약정된 이율이 아니라 은행의 대출이자율을 기준으로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은행의 예금이자율을 기준으로 하는 경우도 있다.



이상을 종합하면, 기업간대출이 유효하다고 보는 경우와 기업간대출이 무효라고 보는 경우의 차이는 최고인민법원의 사법해석상 문구만 보았을 때는 엄청나지만, 실제의 사법실무상으로는 그다지 크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기업간대출을 무효로 취급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점에는 공감하지만 지방의 법원들은 최고인민법원의 사법해석을 존중하여 직접적으로 기업간대출을 유효로 인정하지는 않아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기업간대출을 무효로 취급하지 않으려는 시도가 지방의 법원들부터 조금씩 시작되고 있다.



2005년 우후(蕪湖)시중급인민법원에서는 을 내놓았다. 기업간대출이 모자회사간의 차입인 경우, 관련 업체간의 차입인 경우, 대기업이 협력업체인 중소기업에 대출하는 경우 등에는 유효한 것으로 취급하도록 규정했다. 저장성고급인민법원도 2010년 5월 에서 "기업간의 자체자금의 임시융통행위는 무효인 대출계약으로 처리하지 않을 수 있다"고 규정했다.

최고인민법원 유효 판결

최고인민법원에도 변화의 조짐이 나타난다. 최고인민법원은 2012년 12월 20일자 대출분쟁사건에 대한 판결에서 직접적으로 기업간대출을 유효하다고 인정했다. 요녕성고급법원이 1심이고, 최고법원이 2심인 대출분쟁사건에서 상소인은 "기업간대출이어서 관련 금융법규에 위반하여 무효"라고 주장했다. 최고법원은 그러나 "채권자가 약정이자율이 지나치게 높고, 기업간의 위법한 대출이라는 등의 이유로 대출계약의 무효를 주장하였으나, 근거가 부족하여 인용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2013년 9월 25일자 는 최고인민법원 부원장 시샤오밍(奚曉明) 이 전국상사재판회의에서 발언한 내용을 정리한 를 실었다. 거기에는 기업간대출과 관련하여 이런 내용이 있다.

첫째, 금융업무라이선스없이 실제로 대출업무를 진행하고, 대출수익이 기업의 주요 이익 원천인 경우에는 대출계약을 무효로 하여야 한다. 그러나 대출, 차입 쌍방에 과실이 있으므로, 차입인이 의외의 이익을 얻어서는 안 된다. 공평원칙에 따라 차입인은 차입원금을 반환하는 동시에 현지 은행의 같은 기간 같은 류의 대출평균이자율로 계산하여 자금점용기간의 이자를 반환하여야 한다.

자금점용기간 이자 반환해야

둘째, 금융업무라이선스가 없지만, 생산경영의 필요에 따라 일시적으로 자금대출차입행위를 하는 경우 만일 자금을 제공한 측이 자금융통을 통상적인 업무로 하지 않고, 국가금융관리감독의 강행법규에 위반하지 않았다면 차입계약을 무효로 인정하여서는 아니 된다.



이상의 여러 점에 비추어 보면, 기업간대출을 무효로 보는 중국의 대출총칙과 사법해석은 이미 시대에 뒤떨어져 조만간 폐지될 것으로 보인다. 정식으로 폐지되기 이전이라고 하더라도 사법실무상으로도 이미 대출총칙과 사법해석은 그 의미를 대부분 상실했다. 또 기업간대출로 무효가 되지 않도록 하는 우회적인 방안도 이미 많이 마련되어 있다.

기업간대출이 중국에서는 무효라는 말에 망연자실할 필요는 없다. 관련 전문가의 적절한 조력만 받는다면, 기업간에도 얼마든지 유효하게 대출, 차입할 수 있다.

김종길 변호사(중국 글로벌로펌 한국팀장, jonggil.kim@globallawoffice.com.cn)

◇김종길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와 북경대 법대(LL.M)를 졸업한 중국법 전문가로, 중국 글로벌로펌의 한국업무부를 이끌고 있다. 지용천, 김승봉 중국변호사 등과 함께 한국 기업의 중국 진출은 물론 중국 내 법인 운영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법률문제에 대해 자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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