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꽌시와 준법

[노정환 검사]

2011-11-29     김진원
중국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 중 '꽌시(關係)'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반적인 통상의 '관계'보다 훨씬 더 '친밀한 관계' 정도로 그 의미를 이해하면서, 구체적으로는 "선물 또는 뇌물(?)을 주고받으며 이권에 개입하여 도움을 줄 수 있는 관계"로 받아들이고 있다. 쉽게 말하여 한국식으로 '후원자 내지 빽'이 되는 관계를 꽌시라고 이해하는 것이다.

혈연 뛰어넘는 동지적 관계

하지만 중국의 꽌시는 한국인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깊은 친분관계이다. 비록 이해관계를 기반으로 하여 형성되는 관계이지만, 그 깊이에 있어서는 혈연을 뛰어넘는 끈적끈적한 동지적 관계이다. 중국의 꽌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중국문화와 역사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중국은 역사 이래 한국보다 훨씬 커다란 강가에서 공동체를 형성하고 대규모의 수리, 경작시설을 관리하다 보니 그 취락의 규모 또한 훨씬 더 컸었다. 이러한 까닭에 중국은 한국과 달리 혈연중심의 소규모 촌락이 아닌, 여러 성씨가 함께 거주하는 지연중심의 대규모 공동체를 형성하여 수천 년을 살아왔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순수한 혈연관계를 넘어 타인과의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신의(信義), 의리(義理)를 중시하게 되었다.

하지만 중국은 춘추전국시대 이래 근세까지 내내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일개 왕조의 통치기간은 길어야 200년, 평균 100년을 넘지 않았으며, 그나마 한족보다 이민족의 통치기간이 더 길었다. 이러한 까닭에 혈연관계를 뛰어넘는 인간관계를 갈구하는 '꽌시'의 문화와 함께 빈번한 정권교체와 전쟁에서 유발되는 배신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쉽게 남을 믿지 못하는 '불신'의 문화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형성되었다.

쉽게 남 믿지 못해

이처럼 중국에서 '꽌시와 불신'은 '빛과 그림자'와 같은 존재이다. 빛이 강해지면 그림자가 짙어지듯이, 인간관계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현대 경쟁사회에서 꽌시는 더더욱 강맹한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

한국인이 생각하는 것처럼 꽌시는 쉽게 형성되지 않는다.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중국인과 함께 술을 마시고 서로를 '펑요(朋友, 친구)'라 부르며, 값비싼 선물을 수차례 주고받은 사이라 할지라도 최소한 2∼3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오랫동안 서로를 관찰하며 상호 신뢰를 형성하며 장기간의 검증을 통해 무한히 신뢰하는 단계에 이르게 되면 비로소 진정한 꽌시가 형성된다.

이러한 단계에 이르면 중국인은 상대방을 자신의 친구들의 그룹, 이른바 거먼얼(可門ㄦ)에게 소개하고 교우관계를 공유하고 평생을 진정한 친구로서 살아가게 된다. 즉, 개인적인 꽌시에서 집단적인 거먼얼로 발전하는 것이다.

펑요에서 거먼얼로 발전

그렇다면 외국인인 한국인은 어떤 단계에까지 가야 상대방으로부터 진정한 신뢰를 받는 꽌시를 형성했다고 할 수 있을까? 경험에 의하면 춘절기간 중 저녁식사 초대를 받는가 여부가 가장 중요한 잣대가 아닐까 싶다. 중국인은 음력 12월 31일 저녁 즉, 이른바 추시(初夕) 만찬을 가장 친한 친구들과 형성된 거먼얼과 함께 한다. 그리고 춘절 기간 중 3∼4일 정도는 가족 친지들과 보내지만, 그 후 춘절 휴가가 끝날 때까지 며칠 동안 재차 다른 거먼얼 그룹들과 식사를 함께 한다. 이 과정에서 교집합이 생기는 경우 같은 사람과 중복하여 식사를 하기도 한다.

중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꽌시는 일종의 '사회적(社會的) 자본(資本)'이다. 상대방이 동원한 막강한 꽌시로 인해 경쟁에서 패배하더라도 그 결과에 승복하며, 오히려 꽌시가 미약한 자신의 처신을 반성하는 것이 중국의 현실이다. 즉, 중국에서 꽌시는 일종의 사회적 문화현상일 뿐 선(善)도 악(惡)도 아니다. 따라서 중국에 진출한 한국인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되도록 넓은 '꽌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고, 최소한 수년간의 시간동안 긴 호흡을 갖고 뚝배기처럼 사람을 사귀는 지혜가 요구된다.

법 테두리 벗어나면 낭패

하지만 어려운 과정을 거쳐 훌륭한 꽌시를 구축하였다 하더라도 이를 과신하여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부분까지 꽌시로 해결하려 해서는 커다란 낭패를 볼 수 있음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개혁개방 이래 법치주의 건설을 목표로 수많은 법령을 만들어 내고 있으며, 이에 따라 종래 인치에 의존하던 영역이 점차 법치로 전환되고 있어 꽌시로도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내국기업과 외국기업간의 분쟁이 발생할 경우 내국기업에게 더 유리한 것은 당연지사(當然之事)이며, 외국기업이 쌓은 꽌시가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내국기업을 뛰어넘기가 어려운데다가 더 나아가 법률까지 위반하였다면 그 결과는 명약관화(明若觀火) 하기 때문이다.

결국 중국에서 한국인이 형성하는 꽌시는 법률의 허용범위 내에서 더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서, 준법을 전제로 함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하겠다.

노정환 검사(주중대사관 법무협력관, lawfire200@lyc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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