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에 '경쟁 문화' 전파하는 윤호일 변호사

한, 중, 일 전문가 참여 ACA 초대회장 피선"공정하게 경쟁하면 소비자, 기업에 이익""경쟁법 규제는 선예방 후대응으로 풀어야"

2010-10-17     최기철
"아시아경쟁연합(Asia Competition Association)이 경쟁문화의 확대와 향상,그래서 궁극적으로 세계 경제의 발전에 기여하길 바랍니다."

지난 9월 16일 오전, 서울 소공동의 롯데호텔 사파이어룸.

'ACA 2010 국제회의'를 주재하는 윤호일 변호사는 상기된 표정이었다. 2년 전인 2008년 9월 출범한 ACA가 아시아 지역의 유력한 경쟁법(competition law) 연구 및 교류단체로 성장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연례회의인 이번 회의만해도 한, 중, 일 등 아시아 지역의 유명한 경쟁법 학자와 변호사 등 약 160명이 참석했다.

2008년 9월 발족

한, 중, 일을 대표하는 공동대표(contact person)를 지정, 일종의 집단지도체제로 운영해 온 ACA는 이 날 회의가 끝난 후 윤 변호사를 초대회장으로 선출했다. ACA 출범 때부터 주도적인 역할을 해 온 윤 변호사가 지휘부를 맡아 본격적인 발전의 시동을 걸게 된 것이다. 부회장 2명은 일본과 중국 측 인사가 각각 나눠 맡았으며, 사무총장엔 숙명여대 이기종 교수가 선출됐다.

경쟁법, 국제거래, 국제소송과 중재 등 여러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 온 윤호일 변호사가 반독점과 공정거래로 압축되는 경쟁법 분야의 국제공조, 민간외교 분야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서울에서 두차례 회의를 가진 ACA에서의 활동이 대표적인 경우다.

그는 ACA 회의가 끝난 다음 날인 9월 17일엔 공정거래위원장을 역임한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의 권오승 교수 등과 함께 중국 상하이로 날아갔다. ACA 회장을 맡고 있는 한국의 경쟁법 변호사로서 중국의 경쟁법 연구단체인 '아시아 경쟁법 포럼'이 주최하는 회의에 참가해 행사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윤 변호사의 설명.

그는 이어 "국제화시대를 맞아 기업의 반경쟁적 행위가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며, 국제협력을 통한 각국 경쟁법의 조화로운 수렴과 발전을 다시한번 강조했다.

한국경쟁포럼 명예회장

경쟁법의 발전과 경쟁 문화의 확산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윤 변호사를 9월 16일 롯데호텔의 ACA 국제회의장에서 만나 그 발전방향에 대해 들어 보았다. 그는 ACA 회장 외에도 한국경쟁포럼 초대 회장에 이어 명예회장을 맡고 있으며, 변호사들의 모임인 서울지방변호사회 공정거래 커뮤니티 위원장도 겸하고 있다. 또 미국 변호사협회(ABA) 경쟁법 섹션의 지도부인 국제 태스크 포스 위원이자 세계 100여 나라가 참가하고 있는 경쟁당국 네트워크(International Competition Network)의 민간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윤 변호사는 먼저 "한국이 아시아 국가로는 가장 적극적으로 경쟁법을 잘 집행해 온 모범적인 나라"라며, "한국 공정거래위원회에 대한 국제적인 평가도 매우 고무적"이라고 소개했다. 그에 따르면, 영국 런던에 있는 유명한 공정거래 전문지인 'Global Competition Review'는 지난 6월 한국 공정위의 위상을 세계 7위권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만큼 1981년에 설립된 공정위의 경쟁법 집행이 성공적이라는 반증이다. 윤 변호사는 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가 "G7을 G5수준으로 끌어 올려야 한다"며, "지금 여러 분야에서 이런 노력이 진행 중"이라고 고무적으로 이야기했다.

한국 공정위 세계 7위권

"일본은 일찌감치 미국이 만들어 준 경쟁법을 도입했지만, 현실적인 시행은 1981년 4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을 시행하기 시작한 한국보다 늦어요. 또 중국은 2년 전인 2008년 8월부터 독점금지법을 시행, 최근 부쩍 관심이 쏠리고 있는 실정입니다."

윤 변호사는 "공정위의 결정에 대한 사법심사 등을 담당하는 법원의 역량이 상당히 강화되고 있고, 검찰이 카르텔에 대한 형사처벌을 차츰 강화하는 등 경쟁법 분야의 공적 집행이 활발하게 가동되고 있다"며, "국제사회에서도 한국 경쟁당국의 조사와 집행, 사법심사에 대해 깊이 신뢰하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한국 경쟁법의 발전을 위해 더욱 보완해야 될 대목은 없을까.

윤 변호사는 무엇보다도 경쟁법의 사적(私的) 집행이라고 할 수 있는 기업 등의 공정거래법 위반행위에 대한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소송 활성화를 주문했다.

"미국에선 공정거래법 집행의 대략 90%가 민사상 손해배상청구를 통해 해결되고 있다고 해요. 우리도 공정거래법에 손해배상제도를 보장하고 있지만, 손해를 입증하는 것이 어렵고, 피해자가 많아도 개별 피해자의 손해액이 소액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손해배상제도가 많아 활용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90%가 손배청구로 해결

윤 변호사는 "불공정행위 등이 손배소 등 시장 메커니즘에 의해 자동적으로 억제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공적 집행 못지않게 사적 집행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연장선상에서 그가 도입을 주장하는 제도는 공정거래법 위반행위, 특히 공정거래법 23조가 규정하고 있는 다양한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한 금지청구. 금지청구제도가 도입되면, 그만큼 공정위의 자원과 인력을 보다 중요한 경쟁법 이슈라고 할 수 있는 카르텔,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경쟁제한적 기업결합 등의 억제를 위해 활용할 수 있어 일석이조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지금은 불공정거래행위를 발견하더라도 대상 기업을 상대로 법원에 직접 금지를 청구할 수는 없고, 공정위에 신고하면, 공정위가 중지 또는 시정조치 등을 명하고 있다. 따라서 공정위가 신고사건을 하나하나 조사하고 처리를 해야 해 정작 중요한 사건에 충분한 역량을 집중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윤 변호사가 지적했다.

공적 집행분야에선 물론 카르텔,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경쟁제한적 기업결합의 억제를 위해 더욱 관심을 갖고 법집행을 강화해야 한다는 게 윤 변호사의 지론이다. 이번 ACA 서울회의에서도 이들 3가지 이슈가 세션의 주제로 선정돼 뜨거운 토론이 펼쳐졌다. 윤 변호사는 "그 중에서도 과점기업들에 의한 가격담합 등 카르텔에 대한 효과적인 단속과 집행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1973년 미국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 그때부터 경쟁법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구를 해 왔다는 그는 경쟁법의 발달, 경쟁문화의 확산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었다.

변호사만 38년

원론적인 질문이지만, 그에게 경쟁문화의 확산이 왜 필요한지 물어 보았다.변호사만 38년째 경력이 쌓인 윤 변호사는 철학적인 설명을 곁들여 얘기를 풀어갔다.

"인간의 본성에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하나는 이기심에 기초한 경쟁이고, 또 하나는 이타심에 근거한 봉사와 기부입니다. 이 두 가지를 통해 사회가 진보하고, 발전한다고 할 수 있겠죠. 그 중 하나인 경쟁에 관해서 보면, 경쟁의 올바른 규칙을 만들어 그 규칙과 규범에 따라 공정하게 경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경쟁문화의 확산이라고 하니까, 경쟁을 격화시키자 그런 뜻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그게 아니라 경쟁을 촉진하되 올바른 규칙을 만들고 규칙에 따라서 공정하게 경쟁하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그는 이어 경쟁문화의 확산이 소비자에게 어떻게 긍정적으로 작용하는가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을 계속했다.

"기업이 경쟁을 하게 되면 가격이 하락하거나 증가가 둔화되게 됩니다. 또 기술개발, 이노베이션이 일어나고, 소비자의 선택의 폭이 넓어지게 되지요. 궁극적으로 소비자의 후생을 증대시켜 가계 발전에 기여하게 됩니다."

소비자 후생 증대

기업들 사이의 경쟁이 소비자에게 이익이 된다는 점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경쟁의 직접 당사자인 기업들은 어떨까. 담합 등으로 경쟁법에 따른 제재를 받는 기업이 적지 않은 것을 보면, 기업은 경쟁을 선호하지 않는 것처럼 비춰지기도 한다. 윤 변호사는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기업도 소비자와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경쟁이 정답이라고 역설했다.

"경쟁을 하되 규칙에 따라 공정하게 하는 것입니다. 품질, 서비스, 가격, 기술 등 이런 분야에서 잘 하는 기업, 즉 경쟁력이 높은 기업이 살아남고, 시장에서 우수한 기업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거꾸로 품질, 서비스, 가격, 기술 등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경쟁을 하게 된다고 생각해 보세요. 엉뚱한 회사가 살아남고, 시장이 왜곡되게 될 겁니다. 경쟁력 있는 회사들이 장기적으로 피해를 보게 됩니다. 단기적으론 경쟁이 피곤할 수 있지만, 공정한 룰에 의한 경쟁이 궁극적으로 소비자나 기업, 사회 전체에 유익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각국 경쟁당국 긴밀 협조

여전히 활발하게 의뢰인들을 만나며 자문에 응하고 있는 그는 세계 곳곳에서 경쟁당국의 감시와 규제에 노출돼 있는 일선 기업에 대해서도 조언을 빼놓지 않았다. 완벽에 가까울 만큼 정확한 용어를 구사하는 그가 제시하는 해법을 요약하면, 한마디로 '선예방 후대응'이다.

그는 "각 나라의 경쟁당국이 정보 교환 등 긴밀하게 협조하면서 법집행을 하고 있기 때문에 경쟁법 위반 행위가 있을 경우 발각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지적하고, "무엇보다도 자율준수 프로그램의 강화와 직원 등을 대상으로 한 철저한 사전교육을 통한 예방이 우선"이라고 당부했다.

그래도 문제가 터져 조사가 시작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리니언시(leniency) 즉, 감면신청제도를 활용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게 윤 변호사의 주문이다. 리니언시란 담합에 참여한 기업이 자진신고할 경우 책임을 면제하거나 줄여주는 제도로, 거의 모든 나라에서 채택하고 있다. 윤 변호사는 특히 "미국은 가장 먼저 신고한 1위 한 사람만 감면해주고, 한국에선 1위는 완전 면제, 2위는 절반 감면"이라며, "감면신고가 유리하다고 판단되면, 빨리 움직여서 신속하게 신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 변호사는 이어 "물론 잘못한 것이 없어 적극 대응해야 한다면, 외부의 유능한 전문변호사를 활용해 철저하게 방어하라"고 조언했다. 또 경쟁법의 이론과 실무가 워낙 빨리 발전하고 있으므로 사전교육 단계부터 전문가와 함께 체계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쟁법 위반 사실이 드러나 과징금이나 벌금을 얻어맞고, 임직원이 형사처벌을 받게 될 경우 금전적인 손해는 물론 기업의 명예 실추라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윤 변호사는 "비즈니스를 잘 해서 기업의 수익성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불공정거래 행위를 슬기롭게 피해가는 노력 또한 결코 소홀히 해선 안된다"며, "경쟁법 이슈에 잘 대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서울민사지법 판사 역임

1970년 서울민사지법 판사를 시작으로 약 40년간 법조 일선에서 활약, 원로의 소리를 들을 법한 연조이지만, 윤 변호사는 여전히 왕성하게 현장을 누비고 있다. 화우에서도 가장 많이 사건을 처리하는 변호사 중 한 사람이라고 한다. 특히 경쟁법 분야 민간외교의 일익을 맡아 미국, 유럽 및 아시아 대륙을 바쁘게 뛰어 다니고 있는 그는 법조 선배로서 후배변호사들에게 또 다른 귀감이 되고 있다.

글 김진원 기자(jwkim@legaltimes.co.kr) l 사진 지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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