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 전문 이인재 변호사

병원 대리 거쳐 환자 측 변호사로 이름 날려연수원때부터 관심…대학원 의료법 과정 다니며 의학공부재판 지고도 배상 미루는 '배째라' 의사들 환자 두번 울려

2010-05-11     고유미
"음식점도 이것저것 메뉴가 다양한 곳 보다는 김치찌개면 김치찌개, 칼국수면 칼국수 하나만 특화시켜 잘 하는 곳이 음식 맛이 좋지요. 변호사 사무실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법무법인 CS의 이인재 변호사(36)는 의료과오 쪽으로 특화해 성공한 젊은 변호사 중 한 사람이다. 2002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하자마자 변호사로 나서 의료사고 전문변호사의 한우물을 파고 있다.

고려대 법대에 다닐 때인 1999년 제41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곧바로 사법연수원에 입소한 이 변호사에겐 다양한 진로가 기다리고 있었다. 판, 검사 임관의 경우 사법연수원 성적이 좋아야 한다는 변수가 있었지만, 28세의 청년 변호사인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적지 않았다.

고대 법대 재학중 합격

그는 전문화를 선택했다. 2002년 봄 의료과오소송 전문으로 유명한 한 중견변호사가 이끄는 H법률사무소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중소 법률사무소의 고용변호사로 출발한 셈인데, 의료사고 전문변호사가 되겠다는 장기 플랜 아래 선택한 결과였다.

"제 스스로 전문분야를 정해 그 분야의 최고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리고 꾸준히 사건이 늘어나고 있는 의료사고 분쟁을 블루오션(blue ocean)으로 삼아 도전했습니다."

그는 또 "의료 쪽은 대형 로펌보다는 중소 법률사무소나 개인변호사 위주로 관련 시장이 형성돼 있어 부지런히 전문성을 연마하면 충분한 승산이 있다고 보았다"며, "개인변호사가 전문화를 추구할 수 있는 분야 중 한 곳이 의료사고 분야"라고 소개했다. 실제로 의료사고의 경우 사건 수는 적지 않지만, 손해배상액수 등 규모가 크지 않아 대형 로펌들은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의료사고 해마다 늘어

대법원에 따르면, 매년 전국 법원에 접수되는 의료사고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이 약 1000건에 육박할 만큼 의료사고가 빈발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 의료사고로 인한 1심 손배소가 2002년 671건에서 2003년 755건, 2004년 802건, 2005년 867건, 2006년 979건, 2007년 1104건, 2008년 748건으로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변호사의 선택은 성공적으로 나타났다. H법률사무소에서 3년 6개월간 경험을 쌓은 이 변호사는 2005년 9월 지금의 법무법인 CS로 옮겼다. 일종의 독립을 한 셈으로, 그는 모두 8명의 변호사가 포진하고 있는 법무법인 CS에서 의료 쪽을 전담하고 있다.

물론 그가 다루는 사건의 절반이상이 의료사고에 따른 손해배상청구소송일 만큼 이 분야의 전문가로 맹활약하고 있다. 그는 특히 의료사고의 피해자인 환자 또는 유가족을 대리해 병, 의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받아내는 원고 변호사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종아리근육 퇴축술 사건' 승소

그가 승소판결을 받아낸 대표적인 사건이 2008년 11월 1심 승소판결이 내려진 일명 '종아리근육 퇴축술 사건'.

서울 강남의 한 성형외과에서 종아리가 날씬해지는 종아리근육 퇴축술을 받은 뒤 통증과 종아리 함몰, 양쪽 다리 비대칭 등의 부작용을 겪은 피해자 27명이 의사 2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24명이 승소한 사건이다. 피해자 1명당 400만~500여만원씩 모두 1억3000만원의 손해배상을 명하는 판결이 내려져 피고 측이 항소했으나, 나중에 항소를 취하해 원고 승소로 확정됐다.

이 변호사는 이 외에도 서울 강남의 또 다른 성형외과를 상대로 5명의 피해 환자를 대리해 성형 부작용으로 인한 손배소를 추진 중에 있다. 그는 "성형수술이 유행하며 성형 부작용에 따른 상담을 해오는 피해자들이 많다"고 말했다.

병원 원장이 의료법 전공 권유

그가 의료사고를 전문분야로 선택한 것도 사법연수원 시절에 겪은 아내의 유산이 계기가 됐다. 아내를 진료한 병원 원장이 사법연수원에 다닌다는 얘기를 듣고 당시 연수생이던 이 변호사에게 "의료법을 전공해 보라"고 권유한 것. 이 변호사는 "아내의 경우는 의료사고와 거리가 멀었지만, 아내를 따라 병원을 드나들며 억울하게 의료사고를 당한 환자들의 피해구조를 위해 활동할 수 있다면, 변호사로서 작지 않은 보람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의료 쪽에 관심을 가지게 된 사연을 얘기했다.

연수원 2년차에 편성돼 있는 전문기관 연수를 대한의사협회로 선택한 것도 나중에 변호사가 되면 의료사고를 전문분야로 선택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임은 물론이다. 이 변호사는 의사협회 연수를 받으며, 의료사고 분야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H법률사무소의 대표변호사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인연이 이어져 이듬 해 초 사법연수원을 수료하자 H법률사무소에서 의료사고 전문변호사를 지향하며 변호사 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H법률사무소는 특히 의료사고 소송의 피고 측인 병원 쪽을 대리하는 경우가 많아 피고 입장에서 의료사고를 바라 볼 수 있었다. 이 변호사는 "H법률사무소에 근무하며 병원 측을 대리해 본 경험이 환자 측을 변론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나름대로 준비와 각오를 거쳐 선택한 길이지만, 의료소송 전문변호사가 되는 길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회의시간에 선배변호사들과 의료전문가들 사이에 오가는 생소한 의학용어는 물론 무슨 글씨인지 알아보기도 힘든 병원의 각종 진료차트와 기록들이 이 변호사를 주눅들게 했다.

"물러설 수 없었죠. 의학서적을 뒤적이다 밤을 새는 날도 많았고, 선배와 동료 변호사 등의 도움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는 또 한번의 사법연수생 과정을 거쳤다고 할까요."

의료법 석사과정 수료

의사 출신이 아닌 이 변호사는 특히 시간을 쪼개 대학원의 의료법 과정 등을 수강하며 부족한 의학지식을 메워나갔다. 변호사가 된 이듬 해 연세대 보건대학원에 등록해 6개월 기간의 ‘의료와 법' 과정을 수료했으며, 모교인 고려대 법무대학원에서 의료법을 전공, 2년 6개월 후인 2006년 법학석사과정을 마쳤다. 2009년에는 또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과 같은 대학의 생명의료법연구소가 공동주최한 각각 3개월씩의 보건의료법 연구과정과 생명·의료법 연구과정을 이수하기도 했다.

의료사고 전문 9년째인 지금은 진료차트를 읽어 내는 것은 물론 웬만한 증세는 진단(?)도 할 수 있을 만큼 의학에 관한 지식을 많이 축적했다고 한다. 또 환자를 상담해 보면, 소송을 제기했을 때의 승소가능성과 원, 피고의 과실비율까지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을 만큼 전문성을 쌓아 나가고 있다.

이 변호사에 따르면, 성형 부작용에 따른 손배소 뿐만 아니라 산모나 아기가 다치며 피해가 커질 수 있는 산부인과, 수술이 많은 외과 등에서 의료사고가 많이 일어난다. 또 치과도 피해는 작지만, 의료사고를 둘러싼 분쟁이 많은 분야이며, 한방에서도 의료사고 시비가 적지 않다고 한다. 신속하게 뇌경색을 진단하지 못해 전원(轉院)이 늦어진 경우나 침을 맞고 쇼크가 일어났을 때 등이 한방에서 의료사고 시비가 이는 대표적인 경우다.

한방도 의료사고 시비 적지 않아

그러나 병, 의원의 25개 전문과목 어느 분야도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될 만큼 의료사고가 적지 않다는 게 이 변호사의 설명. 이 변호사는 이어 "변호사의 경우 아직 성형외과, 산부인과 등 전문과목별로 세부 전문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며, "의사들은 자기 전공과목만 잘 알면 되지만, 변호사는 의사들의 전문과목이 무엇이든 진료과정 전반을 이해해야 해 그만큼 공부해야 할 게 많다"고 의료 전문변호사의 고충을 이야기했다.

서울 서초동에 있는 그의 사무실엔 법학서적 못지않게 여러 전문과목으로 나뉜 의학서적이 빼곡히 꼽혀 있어 의료사고 전문 법률사무소의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그에 따르면, 의료과오로 인한 손배소의 경우 승패의 관건은 의사 측에 과실이 있느냐 없느냐의 과실입증에 있다. 이어 과실입증에 성공하더라도 환자 측에도 과실이 없지 않다며 의사 측의 책임을 깎는 과실상계를 하기 때문에 배상액이 많이 줄어든다고 한다. 이 변호사는 "피고 측의 과실을 10~15% 밖에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피해구제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환자 과실 85~90% 인정도

이 변호사는 그러나 얼마 전부터 전혀 새로운 고민을 하고 있다. 병, 의원들의 경영이 어려워지며 소송에 이기고도 손해배상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변호사가 승소해 유명해 진 종아리근육 퇴축술 사건만 해도 아직 손해배상을 모두 받지 못했다고 한다. 또 경기도의 한 병원은 경영난에 빠져 화의절차가 시작되는 바람에 소송에 이긴 환자들의 피해구제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영세 의원이나 부도 위기에 처한 의사 등을 상대로 소송을 낼 때는 미리 가압류를 걸어 놓고 소(訴)를 내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으나, "일종의 '배째라식'으로 나오는 의사도 없지 않아 주의가 요망된다"고 이 변호사가 설명했다.

의대생들에 의료사고 예방 강의

실제로 한 성형외과는 환자가 성형부작용에 따른 소송을 내 대법원까지 가는 송사 끝에 1억원을 주라는 승소판결이 확정됐음에도 병원 측에서 돈을 주지 않고, 오히려 집회 등으로 병원의 업무를 방해했다며 환자를 상대로 형사고소와 함께 손배소를 내 별도의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이 변호사는 "피해자를 두 번 울리는 셈"이라고 분개했다.

이 변호사는 2008년 발족한 의변 즉, '의료문제를 생각하는 변호사의 모임'의 일원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또 한양대와 중앙대 의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의료사고 예방에 관한 강의도 나가고 있다.

"의료사고 피해자들은 다른 소송의 당사자들보다도 더욱 피폐해져 변호사 사무실을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변호사는 "의료사고로 인한 피해구제를 담보하는 제도적인 방안이 시급히 강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몸담고 있는 법무법인 CS의 CS는 'client satisfaction' 즉, 고객만족을 가리킨다. 이 변호사가 2005년 9월 이 법률사무소의 세 번째 변호사로 합류하며 이름을 이렇게 바꿨다.

글 최기철 기자(lawch@legaltimes.co.kr) ㅣ 사진 지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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