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시대' 맞는 한국법률시장 영, 미 대형 로펌 몰려온다

[9월호 Cover Story]한-미 이어 한-EU FTA 타결…호주 로펌도 관심 높아시장개방 영향 전망 엇갈려…법률서비스 발전 계기돼야

2009-09-16     지향영


지난 7월13일 EU(유럽연합) 의장국인 스웨덴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한-EU FTA(자유무역협정)협상의 타결을 선언했다. 가서명-정식서명-우리 국회와 EU 의회 비준의 순서로 향후 절차가 진행될 한-EU FTA는 이르면 내년 상반기 중 발효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내년 상반기 발효

이로부터 20여일 지난 8월7일. 이번에는 한국과 인도가 FTA에 해당하는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CEPA)'에 정식 서명했다. 한-인도 CEPA는 지난 2월 가서명에 이어 이번에 정식 서명이 이뤄진 것으로, 양국 국회의 비준을 거쳐 내년 1월부터 발효될 예정이다.

FTA, CEPA가 속속 타결되며, 국내 법률시장도 더 이상 국경의 제한이 없는 '개방의 시대'의 옮아가고 있다.

아세안, EFTA 이미 발효

한-미 FTA가 한-EU FTA에 앞서 2007년 4월 타결돼 두 나라 의회의 비준절차를 남겨두고 있으며, 한-EFTA FTA는 2006년 9월부터, 한-아세안 FTA는 지난 5월부터 발효되고 있다. 한-EFTA FTA, 한-아세안 FTA에도 법률서비스 개방협상은 들어 있다. 베트남 등 동남아 10개국의 아세안 회원국이나 아이슬란드, 리히텐슈타인, 노르웨이, 스위스 등 EFTA 회원국에 적을 둔 외국 법률사무소가 현실적으로 한국에 상륙하지 않았을 뿐 한국 법률시장은 이미 대문을 활짝 열어 놓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뿐만이 아니다. 정부는 페루, 호주, 뉴질랜드 등과도 FTA 협상을 진행 중에 있다. 호주의 경우 특히 법률시장 개방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법률서비스 시장개방 협상에 참여하고 있는 법무부 국제법무과의 황병주 검사는 "호주 로펌들의 경우 세계 100대 로펌에도 몇몇 로펌이 이름을 올릴 만큼 발달한 가운데 특히 해외 진출 의지가 강하다"고 지적하고, "동남아 지역 진출에 이어 동북아 시장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귀띔했다.

시장개방에 대비한 국내 입법절차도 마무리됐다. 국내에서 활동할 외국변호사와 외국로펌 등에 대한 상세한 조항을 두고 있는 외국법자문사법이 시행령과 함께 9월26일부터 본격 시행에 들어간다. 100년 이상의 역사가 쌓인 한국의 재야법조계가 바야흐로 법률시장 개방이란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대를 맞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국법자문사법 9월26일 시행

법무부는 본격적인 시장개방 시대를 맞아 외국법자문사법 등에 대한 문의가 잇따를 것에 대비해 법무부 홈페이지에 관련 Q&A 코너를 마련하기로 하는 등 관련 홍보를 강화하기로 했다. 또 외국법자문사법의 시행에서 드러나는 개선사항을 모아 추후의 법개정 과정에 반영하고, FTA 협상에도 참고한다는 방침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여러 나라와의 통상협상이 진전되며 법률시장 개방 즉, 외국변호사와 외국 로펌의 상륙이 점점 현실화되고 있다"며, "국내의 로펌 및 변호사들도 시장개방을 현실적으로 인정하고, 이에 걸맞는 발전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EU FTA=아직 가서명이 이뤄진 단계가 아니어 정부가 공식적인 자료를 내놓고 있지 않지만, 법률시장 개방에 관한 한 한-미 FTA 수준의 개방에 합의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즉, 3단계 개방원칙으로, 국내 로펌과의 제휴와 조인트벤처 합작사업체 설립은 각각 2단계, 3단계에 가서야 허용된다.

한-미 FTA와 동일 수준 개방

한-미 FTA에 따르면, 1단계에선 미국 로펌의 국내 대표사무소 즉, 외국법자문법률사무소의 개설이 허용된다. 미국변호사는 외국법자문법률사무소나 국내 로펌 등에 소속돼 원자격국 법령, 원자격국이 당사자인 조약 및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관습법에 관한 자문과 영업을 할 수 있다.

물론 시장이 공식 개방되기 전인 지금도 미국변호사 등이 국내 로펌 등에 고용돼 미국법 등에 관한 조언을 제공하고 있어 FTA 발효와 함께 본격적으로 달라지는 점은 외국 로펌의 국내 상륙에 있다고 할 수 있다.

EU는 특히 영국 등이 중심이 돼 법률서비스 시장의 단계적 개방이 아닌 즉시의 전면적인 개방과 함께 처음부터 한국변호사를 고용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미국과의 형평성 등을 들어 3단계 개방원칙을 고수, 관철시켰다는 후문이다.

'변호사' 명칭 병기 가능

또 한국에서 활동할 외국변호사의 명칭과 국내 체류의무, 외국법자문사로서의 자격승인을 얻기 위한 직무경력 요건 등 개별적인 쟁점과 관련해서도 EU측의 줄기찬 요구가 이어졌으나, 이들 쟁점도 한-미 FTA 수준으로 타결됐다. 다만, 한국에서 활동할 외국변호사는 외국법자문사(Foreign Legal Consultant)란 명칭을 사용하되, 괄호 속에 원자격국어로 된 해당 외국변호사의 명칭과 국어로 된 원자격국의 명칭에 '변호사'를 덧붙인 변호사 명칭을 병기할 수 있도록 했다. 한-미 FTA엔 이런 내용이 명시돼 있지 않지만, 외국법자문사법에 같은 내용이 들어있어 미국변호사들도 한국에 진출했을 때 마찬가지로 변호사 명칭을 병기할 수 있다. 예컨대 한국에서 활동할 미국변호사의 경우 '미국법자문사'라는 공식 명칭 외에 괄호의 형태로 'U.S. Attorney-at-law', '미국변호사'의 명칭을 병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180일 이상 국내 체류해야

또 한국에서 활동할 외국법자문사는 1년에 180일 이상 한국에 체류해야 하는데 이런 내용은 다음 달 시행예정인 외국법자문사법과 시행령에 그대로 반영돼 있다.

◇누가 먼저 들어올까=한-EU FTA가 타결됨에 따라 그동안 한국시장 진출에 높은 관심을 보여 온 영국 로펌들의 움직임에 뜨거운 관심이 쏠리고 있다. EU 회원국 27개국 중 영국의 로펌, 영국변호사들이 한국의 법률서비스 시장개방에 가장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리걸타임즈가 다각도로 취재한 결과에 따르면, 세계 최대 규모의 로펌이라고 할 수 있는 클리포드 찬스(Clifford Chance)나 한국 관련 비즈니스가 활발한 링크레이터스(Linklaters) 등이 한국시장 진출에 관심이 큰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클리포드 챤스 등 관심

영국 로펌들은 특히 전통적으로 해당 지역에 대표사무소 등을 설 치하고, 현지 변호사를 고용해 해당 지역법에 관한 서비스(local law service)까지 수행하는 적극 진출 전략을 채택하고 있어 한국시장이 개방되면 곧바로 대표사무소를 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클리포드 찬스 홍콩사무소에서 한국시장 관련 일을 많이 하고 있는 김현석 변호사는 "200명 이상의 변호사가 포진하고 있는 클리포드 찬스 홍콩사무소만 해도 홍콩변호사를 두고 홍콩 법정까지 커버하며 홍콩법에 관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며, "한국시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고, 대표사무소 개설 등 한국시장 진출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또 "FTA가 발효되기까지 아직 시간이 남아 있는 만큼 그동안 한국 비즈니스의 교두보처럼 기능해 온 홍콩사무소를 중심으로 한국시장 진출에 앞선 본격적인 검토와 준비가 있을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나 시장이 열리더라도 당장 그렇게 많은 영국 로펌이 한국에 진출할 것으로는 보지 않는 신중론도 없지 않다. 주한 EU상공회의소(EUCCK)의 한 관계자는 "한국시장에 대한 영국 로펌들의 관심은 굉장히 크지만, 그동안 중국시장이 워낙 커진데다 영국 로펌들이 세계경제위기 이후 규모를 줄이는 등 사무소를 긴축적으로 운영해 온 현실적인 측면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미 2년여 전 한국와의 FTA가 타결된 미국의 로펌 중엔 Paul Hastings Janofsky & Walker, Thompson & Knight, Sidley Austin 등이 순서대로 M&A와 대형 기업거래(major corporate transactions), 에너지, 국제중재 시장에 관심을 갖고, 한국시장 진출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어 White & Case, Simpson Thatcher, Baker McKenzie, Reed Smith 등이 특정분야를 떠나 전반적으로 한국시장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국 법률시장 개방과 관련, 또 하나 흥미를 끄는 대목은 영국 로펌과 미국 로펌 중 어디가 먼저 한국시장에 상륙할 것인가의 시기문제. 비준절차를 남겨 두고 있는 한-미 FTA와 이르면 내년 상반기로 예상되는 한-EU FTA중 어느 FTA가 먼저 발효될 것인가와 관련돼 있다.

비준 통보 60일후 발효

한-미 FTA는 양국이 의회 비준 등 국내절차를 완료하였음을 서면으로 서로 통보한 날로부터 60일 후 또는 양국이 합의하는 일자에 발효되며, 한-EU FTA도 양국간 FTA 이행을 위한 국내절차를 완료했다는 확인서한 교환으로부터 60일 경과 후 발효된다.

한-EU FTA가 속도를 내면서 비준절차가 답보돼 있는 한-미 FTA보다 먼저 발효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으나, 한국 시장 개척과 관련, 미국이 영국 등 EU에 선수를 빼앗기는 식으로 방치하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또 FTA 발효라는 대전제가 있긴 하지만, 영국 로펌이든 미국 로펌이든 어느 한 로펌이 한국에 사무소를 열면, 한국시장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로펌들도 서울에 사무소를 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란 전망도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누가 먼저 서울에 입성할지는 모르지만, 결국 한국시장에 관심이 있는, 현실적으로 홍콩 등지에서 한국 관련 비즈니스를 펼치고 있는 영, 미 로펌이라면 서울사무소 개설에 합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란 분석이다.

◇한국로펌 경쟁력 강화 계기 삼아야=한국의 로펌들은 전문화와 대형화로 압축되는 경쟁력 강화 프로그램을 가동하며, 시장개방에 따른 대응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중소 로펌의 경우 합병을 통한 규모 확대와 시너지 제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대형 로펌들도 꾸준히 변호사를 영입하며 부족한 부분을 보강하고 있다.

시장개방 영향 의견 분분

다만 영, 미계 로펌이 막상 상륙했을 때 국내 로펌업계 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몇몇 대형 로펌을 제외하면 사실상 비즈니스가 많이 위축될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부터 오히려 발전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적극적인 접근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견해가 나오고 있다. 2단계 이후 가시화될 외국 로펌과의 업무제휴 및 합작법인 설립과 관련해서도 일부 로펌에선 이를 국제업무를 보완하는 기회로 삼자는 역발상의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한 대형 로펌에선 얼마 전 시장개방 이후 토종 로펌들이 사실상 와해됐다는 독일을 방문, 실태파악에 나서기도 했다. 그만큼 시장개방이 미칠 영향을 다각도로 분석하며 대응방안 마련에 골몰하고 있는 게 본격적인 시장개방을 앞 둔 한국 로펌업계의 현주소라고 할 수 있는 셈이다.

시장개방이 몰고 올 영향을 미리 정확하게 분석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법률시장 개방이 한국 로펌업계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는 발전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게 법률회사와 변호사들은 물론 법률시장 개방을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바람이다.

법무부의 황병주 검사는 "우리 로펌업계가 경쟁력을 강화하는 발전적인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두고 FTA 협상에 임했다"며, "시장개방을 한국의 법률서비스 수준이 한단계 더 선진화, 국제화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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