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 대법관 임명 이후
김영란 대법관 임명 이후
  • 기사출고 2004.09.01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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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 대법관이 임기를 시작했다.

사법사상 최초의 여성대법관 시대를 연 그에게 사회, 시민단체들의 높은 관심과 기대가 쏟아지고 있다.

◇김진원 기자
그의 말대로 그의 소명이 곧 시대적 소명일 것이며, 약자와 소수, 여성 등 혹시 가려졌을 지 모를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을 공정하게 비추는 명판결이 쏟아지기를 모두들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이런 기대와는 별도로 법조 특히 법원 내부엔 우려와 혼란스러워 하는 모습이 실재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여성대법관 임명이라는 고려가 있었을 지 모르지만, 김 대법관의 임명이 몰고 온 서열파괴 인사의 여파가 여전히 남아있다고 해야 겠다.

판사들의 관심은 벌써 다음 대법관 인사로 옮겨가고 있다.

내년 2월에 있을 변재승 대법관 후임의 제청과 3월로 예정된 김영일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임의 지명에 관심을 보이며, 참여정부 들어 변화를 겪고 있는 대법관 제청 절차가 어떤 식으로 자리잡게 될 지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관심의 핵심은 김 대법관처럼 젊고 기수를 대폭 낮춘 서열파괴식의 대법관 제청과 재판관 지명이 앞으로도 이어질 것인지, 아니면 그래도 사법연수원 기수를 존중하며 경륜을 갖춘 법원장급 인사가 발탁될 것인가로 압축된다.

아예 내년 9월로 임기가 끝나는 최종영 대법원장의 후임 인사가 중요하다며, 이에 관한 나름대로의 추측과 분석을 내놓는 성급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재야의 모 변호사가 "내가 대법원장이 되면 사법부도 개혁할 수 있다"고 했다는 등, 누가 참여정부와 친하다는 등 대법원 주변엔 그 어느때 보다도 추측과 설이 난무하는 요즈음이다.

인사 문제는 어느 조직, 어느 집단이나 대단히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에 이런 관심과 논란 자체를 이상하게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법원의 특성상 이런 논란이 인사 결과에 관한 단순한 호, 불호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데 있다.

개개인의 생사여탈이 걸려있는 송사를 주관하는 판사들이 대법관 등 승진에 대한 기대를 저버린 나머지 행여 재판에 대한 긴장을 늦추고, 소홀히 임하기라도 한다면 그 파장은 간단치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특정 성향의 판사여야 대법관 제청때 유리하다고 생각한 나머지 그 방향으로 재판과 판결이 기우는 경우가 있다면 이는 얼마전 법원을 떠난 한 고위직 법관의 지적대로 매우 우려할 사태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일선 법원의 판사들에게서 나오는 얘기를 들어보면 단지 '그럴 수도 있다'는 우려의 수준만은 아닌 것 같아 이를 둘러싼 논란의 귀추가 더욱 주목된다.

한 중견 법관은 "그래도 한 기수에서 대법관 한, 두명은 바라볼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고 기록도 한번 더 보아가며 열심히 해 왔는데, 그런 기대가 무너진다면 과연 힘이 나겠느냐"고 판사들의 분위기를 간접 전달했다.

또다른 판사는 "법원이 더 바뀌기 전에 떠나야 하는 것 아니냐"고 최근의 흐름에 대해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내며, 변호사 개업 문제를 진지하게 따져보고 있다고 했다.

잘못된 관행이나 제도가 있으면 고쳐야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공정하면서도 정의로운 재판'을 추구하는 사법의 본령이 훼손되어선 안될 일이다.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본말이 전도되는 실수를 범하는 것이며, 사법의 존재 가치 자체를 뒤흔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본지 편집국장(jwkim@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