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 "영업비밀 침해 합의금에 부가세 부과 위법"
[조세] "영업비밀 침해 합의금에 부가세 부과 위법"
  • 기사출고 2023.03.16 18: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행법] "손해배상금 성격…'용역 대가' 아니야"

영업비밀 등을 침해당해 받아낸 합의금에 부가가치세를 부과한 것은 위법하다는 판결이 나왔다. 합의금은 손해배상금의 성격을 가지므로 '용역의 공급대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서울행정법원 제5부(재판장 김순열 부장판사)는 2022년 12월 22일 실리콘 제품 업체인 A사가 "영업비밀 침해에 따른 합의금으로 받은 3,400만 달러에 대한 30억여원의 부가가치세 부과처분을 취소하라"며 역삼세무서장을 상대로 낸 소송(2021구합60304)에서 이같이 판시, "부과처분을 취소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A사는 미국에 본점을 두고 있는 B사의 자회사다.

이 사건은 B사에서 약 15년 동안 태양광사업부 부장 등으로 근무하다가 퇴사한 D씨가 2012년 4월 C사의 본사 실리콘영업부 부장으로 영입되면서 발생했다. B사가 2012년 6월경 수사기관에 D씨와 C사의 임직원들에 대한 수사를 의뢰, D씨와 C사의 실리콘 분야 담당 부장이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영업비밀 누설 등) 혐의로 기소되었고, 이후 두 사람은 서울중앙지법에서 유죄 판결을 받아 확정되었다. B사는 위 형사사건의 수사가 진행되자 C사에 지적재산 침해 등에 대한 손해배상 등을 요구했다. C사는 수차례의 협상을 거쳐 2015년 4월 1일 B사와 C사의 B사 전직 직원 채용과 영업비밀 등 침해와 관련된 C사와 그 임직원의 모든 민 · 형사상 책임을 면책하고, 그 대가로 C사가 합의금 총 3,400만 달러를 B사와 A사에 절반씩 지급하기로 하는 합의서를 작성했다. 이어 2015년 4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4회에 걸쳐 B사와 A사에 각 1,700만 달러씩을 지급한 다음 이를 '지급수수료(기술자문료)'로 회계처리한 후 이 합의금에 대해 사용료소득으로 15%의 법인세를 원천 징수했다.   

그러나 이후 서울지방국세청이 C사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한 뒤 '이 합의금은 지적재산 사용에 따른 사용료에 해당한다'며 합의금 합계액을 C사의 지적재산 사용기간에 안분하여 손금산입하도록 조정해야 한다는 취지로 C사의 관할세무서장에게 통보하는 한편, 피고에게도 부가가치세 매출누락 자료로 통보했다. 이에 따라 역삼세무서가 A사에 2014년 1기분과 2015년 2기분, 2016년 2기분, 2017년 2기분 부가가치세 4건 합계 30억여원을 부과하자 A사가 소송을 냈다. A사는 "합의금은 C사의 '지적재산 침해'라는 위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금일 뿐 '용역의 공급에 대한 대가'로 볼 수 없으므로, 부가가치세 부과처분은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A사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대법원 판결(2017두61119 등)을 인용, "부가가치세법 제29조 제1항 제1호 등 각 법령의 문언 내용과 체계에 의하면, 부가가치세의 과세표준이 되는 공급가액이란 금전으로 받는 경우 재화나 용역의 공급에 대가관계가 있는 가액 곧 그 대가를 말한다 할 것이므로 재화나 용역의 공급대가가 아닌 위약금이나 손해배상금 등은 공급가액이 될 수 없다"고 전제하고, "합의금은 지적재산 침해에 따른 손해배상금의 성격을 가진다고 봄이 타당하고 단순히 지적재산에 대한 장래의 사용료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려우므로, 이와 달리 '용역의 공급대가'라는 전제에서 이루어진 부가가치세 부과처분은 위법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합의서가 체결된 배경을 보면, B는 C가 D를 채용하여 영업비밀 등을 전달받는 방법으로 손해를 입혔다고 주장하면서 C와 그 임직원들에게 민 · 형사상 책임을 묻겠다는 의사를 표시하였고 이 사건 합의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즉, C가 D를 직원으로 채용하여 실리콘 기반 제품에 대한 영업비밀 등을 취득함으로써 발생한 B의 손해를 배상하고, 대신 B가 C와 그 임직원들에 대하여 민 · 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도록 하기 위한 손해전보의 목적이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피고 측은 "합의서에 기재되어 있는 효력발생일, 확약기간, 확약사항과 같은 내용은 일반적인 손해배상금에 관한 합의서라면 존재할 수 없는 내용"이라는 취지로 주장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합의서 제3조는 '합의서의 효력발생일 전까지 C가 B의 기밀지적재산을 침해하여 발생한 책임 등을 면제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바, 합의에 따라 면책되는 책임의 시적 범위를 정하기 위해서 효력발생일에 관한 규정을 두는 것은 당연하다"며 "C는 B에게 사용권을 부여해 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B는 C에게 '어떠한 특허권이나 지적 재산권 사용권도 부여할 의사가 없다(not willing to give C a patent or intellectual property license of any kind)'라고 밝히며 C의 위 요청을 거부하였다"고 밝혔다. 이어 "C는 사용권은 부여하지 않더라도 최대한 광범위한 면책을 부여하여 줄 것(we needed the release to be as broad as possible)을 요청하였고, 협상을 거쳐 B와 C는 합의서 제4조 c항에, B의 C에 대한 청구권이 유보되어 있음을 명시하여 사용권을 부여하는 것이 아님을 명백히 하되, 제4조 a항으로, 다만 C가 위법상태를 해소하는 확약기간 동안 B가 C에게 청구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규정하게 된 것"이라며 "이처럼 B는 C에게 사용권을 부여하여 주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하면서, 다만 C의 실리콘 제품 중 B의 지적재산권과 관련된 제품을 정확히 특정하는 것이 어려운 등의 이유로 광범위한 면책을 허용하여 주었고, 이에 따라 합의서에 확약기간 및 확약사항과 같은 규정이 포함되게 된 것"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무법인 율촌이 A사를 대리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