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 "쌍무계약 쌍방미이행 상태에선 도산해제조항 무효"
[민사] "쌍무계약 쌍방미이행 상태에선 도산해제조항 무효"
  • 기사출고 2023.03.15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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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법] "특정 채권자에 우선권 관철 부당"

계약의 당사자들 사이에 회생절차의 개시신청이나 회생절차의 개시 그 자체를 계약의 해제 · 해지사유로 정하는 특약인 도산해제조항을 두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회생절차의 개시신청이나 회생절차의 개시 당시 쌍방미이행 상태에 있는 쌍무계약의 경우 원칙적으로 도산해제조항에 의한 해제 · 해지의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보증보험은 2018년 6월 A사와 보증보험한도거래약정을 체결했고, B씨는 이 한도거래약정에 관해 A사가 부담하는 채무를 연대보증했다. 이후 A사는 2019년 1월 17일 비씨카드와 'AI분석 지원 솔루션 라이선스 도입계약'을 체결했다. 이 계약에는 '비씨카드는 A사가 압류, 가압류, 가처분, 경매, 파산, 회사정리 절차가 진행된 경우 등에는 본 계약의 전부 또는 일부를 해제 · 해지할 수 있다. 이 경우 계약보증금 전액인 2,673만원을 비씨카드에 귀속시키고, A사는 계약보증금의 반환을 청구하지 못한다'는 도산해제조항(8조 2항 3호)이 들어있었다. 서울보증보험은 같은날 A사와 한도거래약정에 기초하여 '피보험자 비씨카드, 보험가입금액 26,730,000원, 주계약 AI분석 지원 솔루션 라이선스 도입계약'으로 정한 이행보증계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12일 후인 1월 29일 A사가 서울회생법원에 회생신청을 했고, 이틀 뒤 자산 등에 대한 보전처분결정을 받았다. 같은해 2월 회생절차개시결정이 내려졌으며, 회생계획 인가를 거쳐 2019년 8월 회생절차종결결정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A사는 2019년 2월 7일 비씨카드에 '회생신청을 하여 서울회생법원으로부터 자산 등에 대한 보전처분결정을 받았고, 임시적으로 비씨카드에 대한 채무를 변제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통지했다. 그러자 비씨카드는 나흘 후인 2월 11일 주계약 8조 2항 3호의 사유가 발생했음을 이유로 A사에 주계약의 해제 통지를 했고, 4개월 뒤 A사의 계약불이행을 이유로 서울보증보험에 계약이행보증금을 청구했다. 이에 서울보증보험은 비씨카드에 보험금 2,673만원을 지급한 뒤, B씨를 상대로 "A사와 체결한 이행보증계약 및 한도거래약정에 따라 보험금 2,673만원에 대한 연대보증채권을 갖게 되었다"며 2,673만원에서 일부 변제받았다고 자인하는 990여만원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을 지급하라며 소송을 냈다.

서울고법 민사18부(재판장 정준영 부장판사)는 그러나 1월 13일 "비씨카드의 A에 대한 해제 통지는 효력이 없으므로, 이 사건 주계약의 해제를 전제로 하는 연대보증채권은 발생하지 아니하였다"며 서울보증보험의 청구를 기각했다(2021나2024972). 연대보증채권의 발생을 전제로 하는 원고의 청구는 이유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먼저 "쌍무계약으로서 회생절차의 개시신청이나 회생절차의 개시 당시 쌍방미이행 상태에 있는 계약에 대해서 별도의 법률규정이 없는 한 도산해제조항에 의한 해제 · 해지의 효력을 인정할 수 없고, 다만 회생절차 진행 중에 계약을 존속시키는 것이 계약상대방 또는 제3자의 이익을 중대하게 침해할 우려가 있거나 회생채무자의 회생을 위하여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도산해제조항에 의한 해제 · 해지가 허용된다고 보아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렇게 판단하는 이유로, "채무자회생법 제1조는 '이 법은 재정적 어려움으로 인하여 파탄에 직면해 있는 채무자에 대하여 채권자 · 주주 · 지분권자 등 이해관계인의 법률관계를 조정하여 채무자 또는 그 사업의 효율적인 회생을 도모하거나, 회생이 어려운 채무자의 재산을 공정하게 환가 · 배당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같은 법 제119조 제1항은 쌍방미이행 쌍무계약의 경우 관리인에게 계약의 이행 또는 해제(해지)를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을 부여하고 있다. 그리고 민법 제2조는 '권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하여야 한다. 권리는 남용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같은 법 제103조는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고 전제하고, "도산해제조항의 경우 채권자들이 경쟁적으로 강제집행에 나서는 것을 중지시키고 영업을 계속하면서 공정하게 회생을 도모하고자 하는 회생 절차에서 특정 채권자가 부당하게 우선권을 관철시키는 것이고, 회생채무자가 계약을 이행함으로써 영업을 계속하여 그 수익으로 채권자들에게 변제할 의도로 회생신청을 하였다고 해도 회생신청 그 자체를 해제 · 해지의 사유로 삼는 것이어서 위와 같은 채무자회생법 제1조, 제119조 제1항, 민법 제2조, 제103조를 위반하여 무효라고 보아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도산해제조항의 효력을 부정하더라도 계약의 상대방은 회생채무자의 채무불 이행을 이유로 한 법정해제 · 해지권을 행사하여 회생채무자와의 계약에서 벗어날 수 있다"며 "관련 국제기구의 입법지침이나 다수의 외국 입법례에서도 도산해제조항의 효력을 제한하고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가 인용한 대법원 2007. 9. 6. 선고 2005다38263 판결도 "쌍방미이행의 쌍무계약의 경우에는 계약의 이행 또는 해제에 관한 관리인의 선택권을 부여한 회사정리법 제103조의 취지에 비추어 도산해지조항의 효력을 무효로 보아야 한다거나 아니면 적어도 정리절차개시 이후 종료시까지의 기간 동안에는 도산해지조항의 적용 내지는 그에 따른 해지권의 행사가 제한된다는 등으로 해석할 여지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판시, 적어도 쌍방미이행 쌍무계약의 경우 도산해제조항을 무효로 볼 여지가 있다고 했다.

재판부는 이어 "이 사건 도산해제조항은 A가 회생절차에 들어가는 등의 사유가 발생한 때에 비씨카드에게 주계약을 해제할 수 있는 해제권을 부여하는 내용으로서 도산해제조항에 해당하고, 도산해제조항은 앞서 본 바와 같은 이유로 쌍방미이행 쌍무계약의 경우 원칙적으로 효력이 없다고 할 것인데, 이 사건 주계약은 A가 비씨카드에게 AI 분석 지원 솔루션 라이선스를 공급하고 위 라이선스가 계약 기간 동안 유지되도록 할 의무를 부담하고, 비씨카드는 A에게 그에 대한 대가지급의무를 부담하는 내용의 쌍무계약이고 쌍방미이행 상태에 있었다"고 지적하고, "도산해제조항에 근거한 해제 통지는 효력이 없다"고 밝혔다.

법무법인 대율이 B씨를 대리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