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연재] 외국변호사의 기술⑥ 한국변호사 멘토링
[특별연재] 외국변호사의 기술⑥ 한국변호사 멘토링
  • 기사출고 2023.03.09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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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변호사들에게 자기소개서, 영문 추천서 써주며 멘토링 토양 다져

얼마 전 오후 늦게 사무실에서 한창 일하고 있는데 어소 한국변호사가 조니 워커 블루 한 병을 들고 약간 미안한 표정으로 불쑥 내 방으로 들어왔다.

"아, 그때가 되었나 보다"라고 생각하면서 "변호사님, 이번에 유학 가세요?"라고 묻자, "네, 변호사님, 바쁘시겠지만 이번에 LLM 지원하는데 좀 도와주실 수 있으세요?"라고 겸연쩍은 듯이 대답하면서 위스키병을 답례 선물로 미리 건네줬다. 보통은 미국 로스쿨에 합격하고 나서 선물을 들고 오는데 시작도 하기 전에 선물부터 먼저 건네주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

20년간 韓 변호사의 美 로스쿨 유학 도와

이렇게 사무실의 한국변호사들이 미국 로스쿨 LLM 과정을 지원하는 것을 도와주기 시작한 지 벌써 20여년이 되었다.

◇은정 외국변호사
◇은정 외국변호사

1998년 우리 사무실(법무법인 김장리)에서 처음 일하기 시작했을 때, 미국에서 LLM 과정을 갓 마치고 귀국한 선배 한국변호사와 식사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변호사님, 사무실 지원으로 유학 다녀오셨으니 의무적으로 몇 년 근무하셔야겠네요?"라고 농담조로 얘기하자 그때까지 웃으면서 미국 얘기를 들려주던 그 선배가 갑자기 정색하면서, 한국 로펌에서 유학을 지원하는 것은 보상 차원에서 하는 거라고 강조했다.

조금 무안해져 고개를 그냥 끄덕거리기는 했지만, 속으로는 로펌의 소속 변호사 유학 지원은 여러 해 동안 힘들게 근무한 변호사에 대한 보상 차원뿐만 아니라 유학을 다녀와서 국제적인 업무에 도움이 될 영어 능력과 영미법 노하우를 쌓게 하는 투자 차원도 있는, 복합적인 혜택이라고 생각했다.

사무실 입장에서는 소속 변호사들이 좋은 학교로 유학 가면 그만큼 홍보효과가 있으니 한국변호사들이 유학을 앞두고 나에게 도와 달라고 할 때마다 사무실의 중요한 일이라 생각하고 마다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

대부분 영어로 써야 하는 추천서(recommendation letter), 자기소개서(personal statement), 이력서(resume) 작성을 도와주는 일이었다.

처음 몇 해는 사무실의 선배 한국변호사들을 도왔는데 거의 매년 이 일을 하다 보니 우리 로펌의 외국변호사들 중에서 내가 붙박이로 계속 이 일을 하게 되었다. 어느 해는 어떤 선배 한국변호사를 도와줬더니 마음에 들었는지 "저기, 은 변호사님, 사실은 우리 애 아빠도 이번에 같이 로스쿨 유학가기로 했는데 애 아빠 서류도 도와줄 수 있어요?"라고 하면서 남편 서류도 들고 왔길래 기꺼이 도와줬다.

여러 해에 걸쳐 한국변호사들과 이런 작업을 계속하면서 그들이 유학을 앞두고 로펌 변호사 커리어에 대해 어떤 꿈과 희망을 갖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고민과 우려가 있는지 알게 됐고, 미국 로스쿨에 합격한 후 출국하기 전 미국 생활에 대해 기대 반, 걱정 반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진솔하게 나누는 과정에서 한국변호사들의 커리어 고민을 깊이 이해하게 됐다. 이런 오랜 기간의 경험은 나중에 주니어 외국변호사든 한국변호사든 후배 변호사들을 위해 의미 있는 멘토링을 할 수 있는 노하우의 원천이 되기도 했다.

유학을 앞둔 대다수의 한국변호사들은 유학을 다녀온 후 파트너로 승진하면 생길 영업 스트레스와 미국에 가서 영어로 다시 공부를 해야 한다는 학업 부담에서 오는 고민, 한편으로는 한국에서의 바쁜 생활을 뒤로 하고 한동안 외국 생활을 하면서 가족들과 미국 각지를 여행하며 기분전환을 할 수 있게 됐다는 설레임, 이렇게 서로 비슷하지만 다른 자기만의 얘기들을 해주곤 했다.

연차가 어느 정도 쌓인 후에는 선배들이 아닌 후배 한국변호사들을 위해 직접 내 이름으로 영문 추천서를 써주거나 그들이 써온 영문 자기소개서를 교정해줬다. 그 과정에서 재미있는 일화도 많았다.

영문 추천서 직접 써주기도

어느 해는 어떤 어소 변호사의 영문 추천서에 "그는 스타 어소 변호사다. 유학 가 있는 동안 그를 항상 찾던 파트너들이 무척 아쉬워할 것이다."("He's a star associate highly sought after by all the partners and will be missed by them while he’s on his educational sabbatical.")라고 썼더니, 해당 변호사가 "제가 '스타' 맞나요?"라고 겸연쩍어 하면서도 무척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원하던 미국 로스쿨에 합격한 것은 물론이다. 그렇게 쓴 '스타변호사' 문구는 유학을 계획하던, '스타'가 되고 싶은 사무실 내 다른 어소 변호사들 사이에서 두고두고 회자되었다.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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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사법시험에 합격하기 전 광고회사에서 일한 적이 있었던 변호사가 LLM 과정 지원용 영문 자기소개서를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미국 어디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뉴욕에 가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영어로 써온 자기소개서를 보니, "나 예전에 광고회사에서 광고기획 일을 하던 사람인데 변호사가 돼서 이제 미국 로스쿨에 유학 가려고 한다"라는 정도로 밋밋하게 써와서 별 임팩트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좀 '뉴욕스럽게' 자기소개서를 다시 쓰는 작업을 같이하면서 첫 부분을 이렇게 고쳤다.

"때로는 짙은 색의 보수적인 양복 차림을 한 변호사들과 고객사 담당자들로 가득 찬 회의에 참석하다 보면, 변호사로서의 지금 내 모습이 10여 년 전에 비해 얼마나 달라져 있는지를 생각하며 스스로 놀란다. 그 당시에 나는 광고회사에서 광고기획자(Account Executive)로 일하면서, 광고쟁이답게 머리를 붉은 톤으로 염색하고, 노란색 틴팅 된 안경을 쓰면서 첨단 패션 트렌드에 맞춘 화려한 옷차림으로 일했다."

(Sometimes, when I sit in meetings full of lawyers and clients, who are usually dressed in dark, conservative suits, I often marvel at what a different setting I now work in compared to more than 10 years ago. At that time, working as an account executive at a large advertising agency in Korea, I wore my hair in Burgundy red, wore glasses with a yellow tint and dressed in flamboyant clothing to stay in line with the hottest trends in fashion.)

이 변호사는 원하던 뉴욕의 명문 로스쿨에 합격했다.

모교인 LA의 USC 로스쿨이 내가 JD 과정 졸업생으로서 우리 사무실의 한국변호사들에 대한 추천서를 계속 보내주는 걸 눈여겨 봤는지 USC 로스쿨 로고가 들어간 티셔츠를 고맙다며 보내주기도 했다.

강점은 부각, 약점은 희석시켜

한국변호사들과 함께 영문 추천서, 자기소개서, 이력서 작성 작업을 여러 해 동안 계속해오면서 해당 변호사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한 후 지원 서류상 강점을 부각시키고 약점은 마이너스로 작용하지 않게 희석시키는 법을 섬세하게 코칭하다 보니 그 과정 자체가 그들을 위한 커리어 멘토링이 되곤 했다.

물론 본인의 학교 성적과 영어 시험 성적, 로펌 경력 등이 좋은 미국 로스쿨 합격을 결정하는 주요 요소이지만, 합격 기준선에 약간 미달하는 지원자(borderline candidate)라면 인상적인 추천서나 자기소개서가 합격권으로 밀어 올릴 수 있는 동력이 될 수 있다.

그런 미묘한 부분에서 힘을 발휘하는 멘토링이 의미 있는 멘토링이 아닐까 싶다.

역설적이지만 이렇게 한국변호사들을 멘토링 하면서 외국변호사 멘토링의 토양을 다졌다. '외국변호사의 기술'은 결국 한국변호사들과 같이 일하는 과정에서 그들을 이해하면서 터득하는 것이다.

은정 외국변호사(법무법인 김장리, jun@kimchanglee.com)

◇은정 외국변호사는 누구=한국에서 활동하는 외국변호사 중 한 명인 은정 외국변호사는 USC 로스쿨(JD)을 나와 1996년 캘리포니아주 변호사가 되었으며, 1998년부터 김장리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민 · 국적 업무에 탁월한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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