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보이스피싱범에 체크카드 양도…공소사실 특정 안 되면 무효"
[형사] "보이스피싱범에 체크카드 양도…공소사실 특정 안 되면 무효"
  • 기사출고 2023.01.24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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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범행 장소 · 교부 상대방 · 방법 '불상' 기재"

점조직 형태로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보이스피싱 범죄라도 공소사실이 지나치게 특정되지 않은 경우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에 지장을 초래하여 무효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제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12월 29일 자신 명의 계좌에 연결된 체크카드 1장과 비밀번호를 보이스피싱범에 양도한 혐의(전자금융거래법 위반)로 기소된 A씨에 대한 상고심(2020도14662)에서 이같이 판시, A(62)씨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과 사회봉사 200시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며 의정부지법으로 되돌려보냈다.

A의 공소사실에는 범행 일시가 '2018년 11월 4일경부터 11월 15일경까지 사이'로, 범행 장소는 '불상'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아울러 양도 방법과 상대방 역시 불상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1심과 항소심 재판부는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하고, A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등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사건과 같은 보이스피싱 조직에 의한 범행의 경우 각각의 역할을 하는 공범 사이에도 서로 인적사항을 알지 못하는 점조직 형태로 범행이 은밀하게 이루어져 범행 일시, 장소, 양도 상대방 등을 특정하기 어려운 것이 보통"이라며 "공소사실이 특정되지 아니하였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그러나 공소제기가 무효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종전의 대법원 판결(2021도11454 등)을 인용, "공소사실의 기재는 범죄의 일시, 장소와 방법을 명시하여 사실을 특정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하고(형사소송법 제254조 제4항), 이와 같이 공소사실의 특정을 요구하는 법의 취지는 심판의 대상을 한정함으로써 심판의 능률과 신속을 꾀함과 동시에 방어의 범위를 특정하여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를 쉽게 해주기 위한 데에 있다"고 전제하고, "공소사실 기재 범죄의 성격 및 관련 증거의 내용에 비추어 범죄의 일시 · 장소 등에 관한 개괄적 표시가 부득이한 경우가 있을 수 있으나, 검사는 가능한 한 기소나 공소장 변경 당시의 증거에 의하여 이를 특정함으로써 피고인의 정당한 방어권 행사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도록 하여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범죄의 일시 · 장소 등을 특정 일시나 상당한 범위 내로 특정할 수 없는 부득이한 사정이 존재하지 아니함에도 공소의 제기 혹은 유지의 편의를 위하여 범죄의 일시 · 장소 등을 지나치게 개괄적으로 표시함으로써 사실상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에 지장을 가져오는 경우에는 형사소송법 제254조 제4항에서 정하고 있는 구체적인 범죄사실의 기재가 있는 공소장이라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이 사건 공소사실은 범행 일시가 12일에 걸쳐 있고, 범행 장소가 불상으로 기재되어 있을뿐더러 접근매체의 교부 상대방과 교부 방법이 불상으로 기재되어 있는 등 형사소송법 제254조 제4항이 규정한 요소의 상당 부분이 사실상 특정되지 않는 내용으로 구성, 표시되어 있다"고 지적하고, "전자금융거래법은 획일적으로 '접근매체의 교부'를 처벌대상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교부의 태양 등에 따라 접근매체의 '양도', '대여', '전달', '질권 설정'을 구분하는 등 구성요건을 세분화하고 있고(제6조 제3항, 제49조 제4항), 접근매체의 '양도', '대여', '전달'의 의미와 요건 등은 구별되는 것이어서 그 판단기준이 다르다고 해석되므로, 범행 방법에 있어서도 가능한 한 위 각 구성요건을 구별할 수 있는 사정이 적시되어야 하는데, 공소사실에 기재된 피고인의 행위는 '체크카드와 비밀번호를 성명불상자에게 건네주었다'는 것으로서, 대여 · 전달 등과 구별되는, 양도를 구성하는 고유한 사실이 적시되지 않았는바, 피고인이 자신의 의사로 체크카드 등을 건네준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공소사실을 부인하는 이 사건에서 위 공소사실 기재는 피고인에게 방어의 범위를 특정하기 어렵게 함으로써 방어권을 행사하는 데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공소사실의 기재가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충분히 특정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