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과 보도자료
판결문과 보도자료
  • 기사출고 2004.08.03 17:5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얼마전 서울고법의 한 재판부가 송두율 교수에 대한 항소심 판결을 선고하면서 A4 용지 몇장 분량의 보도자료를 냈다.

◇김진원 기자
어떤 혐의를 유죄로, 또 어떤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는지를 간단 명료하게 설명하고, 양형때 고려한 사정과 함께 이 사건의 적용 법률인 국가보안법의 규범성에 대한 재판부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보다 앞서 대법원은 이른바 '양심상 병역 거부'사건에 대한 전원합의체 판결때 다수의견과 소수의견, 보충의견을 상세하게 소개한 보도자료를 냈다.

서울고법의 또다른 재판부는 강삼재 전 한나라당 의원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면서 여러 페이지의 보도자료를 내고, 공보관의 역할을 겸하는 서울고법 수석부장이 기자들을 상대로 간단한 질문에 답변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요즈음 법원에선 재판부에 따라 좀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어 보이는 판결이다 싶으면 판결문 외에 별도의 보도자료를 내는 경우가 많다.

판결의 내용을 정확하게 알리자는 취지에서 보도자료를 제공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기사를 쓰는 기자들로서는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표현 하나 하나가 '아' 다르고, '어' 다른 식으로 까다로운데다 판결문이 장문으로 된 경우가 많아 그 내용을 제대로 파악해 마감 시간안에 정확하게 기사를 쓰려면 여간 품이 드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혹 트집을 잡을 사람이 있을 지 모르지만, 이는 또 '법관은 판결로 말한다'는 법언(法彦)과도 전혀 배치되지 않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기자는 그러나 보도자료 제공에 따른 기사 작성에서의 도움보다도 그만큼 사회적으로 보도 가치가 높은 판결이 이어지고 있는 데 주목하고자 한다.

인터넷에 들어가 최근의 뉴스를 검색해 보면 법원에서 타전된 뉴스가 전에 비해 엄청나게 늘었음을 알 수 있다.

사법개혁위원회를 중심으로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사법개혁 등에 관한 뉴스도 많지만 판결 기사의 증가가 특히 눈에 띈다.

워낙 떠들썩했던 사건이 많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대검에서 수사가 계속되고 있는 공적자금비리사건에 연루된 피고인들의 재판이 진행중에 있으며, 대선자금의혹사건에서 기소된 정치인과 기업인에 대한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

이와함께 일반 시민 생활에 직접 연결돼 있는 민사, 상사와 행정소송 등에서도 주목되는 판결이 많이 나오고 있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변화의 시대'라는 말로 이를 설명한다.

변화의 시대이다 보니 전에는 별 주목을 끌지 못했던 사안이 오히려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고, 그러다 보니 보도자료도 제공되고 언론의 주목도 받는 것 아니냐는 뜻으로 들린다.

또 변화의 시대엔 법관의 법 해석도 좀 달라질 수 있을 텐데, 이를 정확하게 알리기 위해 보도자료를 낼 필요가 있지 않느냐는 의미로도 들렸다. 기사가 뒤따르는 것은 물론이다.

기자의 추측이 맞는지 모르지만, 사회적으로 관심이 높은 이슈에 대한 법원의 판결이 이어지고, 이어 그 내용이 그때그때 정확하게 보도되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임에 틀림없다.

최종적인 사법적 판단은 법원이 내려야 하며, 이를 통해 우리 사회의 공감대를 다시한번 다지는 과정이 변화의 시대 일수록 더욱 필요하다고 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사로 처리해야 할 판결이 좀 많다고 느끼면서도 더욱 열심히 판결문을 뒤지고, 보도자료를 다시한번 읽어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본지 편집국장(jwkim@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