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실적 압박감에 뇌출혈 사망' 증권사 부지점장, 산재
[노동] '실적 압박감에 뇌출혈 사망' 증권사 부지점장, 산재
  • 기사출고 2022.10.16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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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행법] "병원 입원 후에도 전화 · 문자메시지로 업무 지속"

증권사 부지점장으로서 금융상품을 매매하는 업무, 상장법인 고객을 관리하는 영업 업무 등을 담당하던 A(사망 당시 41세)씨는 2020년 10월 12일 오후 4시 30분쯤 어지럼증과 구역질을 느껴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오피스텔에서 잠을 자던 중, 경련과 구토를 동반한 오른팔과 다리에 마비증세 등이 있어 119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졌다. 병원에 입원해 뇌CT를 촬영한 결과 뇌동맥류 파열로 인한 지주막하 뇌출혈이 발견된 A씨는 응급 코일색전술, 요추 천자술과 배액술을 받았으나, 10월 16일경부터 해열제 투약에도 불구하고 열이 나기 시작, 결국 상태가 악화되어 10월 19일 사망했다.

이에 A씨의 부인과 아들이 A씨의 사망이 업무상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한 재해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으나 거부되자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부지급 처분을 취소하라며 소송(2021구합85273)을 냈다.

서울행정법원 제7부(재판장 정상규 부장판사)는 9월 15일 "A의 업무상 과로와 스트레스가 뇌동맥류의 파열로 인한 지주막하 뇌출혈의 발생 또는 악화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되므로, A의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유족급여와 장의비 부지급 처분을 취소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A의 사망은 업무상 재해라는 것이다.

재판부는 "피고가 A의 근로계약서, 컴퓨터 전원의 ON/OFF 시간 등에 기초하여 A의 발병 전 1주간 근무시간을 32시간 04분, 발병 전 4주간 1주당 평균 근무시간을 30시간 12분, 발병 전 12주간 1주당 평균 근무시간을 32시간 12분으로 각 산정하였고, 이렇게 산정된 A의 근무시간이 뇌혈관 질병 또는 심장 질병 및 근골격계 질병의 업무상 질병 인정 여부 결정에 필요한 사항(고용노동부고시)에 따른 과로 인정기준에 미치지 못하기는 하나, A는 증권사 지점의 부지점장으로서 주식 등을 매매하고 상장법인 고객을 관리하는 영업 업무를 수행하였고, 업무의 특성상 고객들과의 전화통화, 문자메시지 수 · 발신 등을 통해 수시로 업무를 처리한 것으로 보인다"며 "따라서 피고가 A의 사무실 출 · 퇴근 시간, 컴퓨터 전원이 켜져 있던 시간 등에 기초하여 산정한 근로시간이 A의 실제 근로시간을 정확하게 반영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에 따르면, A씨가 근무한 증권사는 거래실적에 따라 성과급을 지급하는데, A는 2020. 상반기 동안 성과급이 1,500원 전후로 거의 없다시피 하다가, 2020. 7. 14. 성과급으로 1,641,076원, 2020. 8. 14. 성과급으로 2,827,871원, 2020. 9. 14. 성과급으로 4,585,703원, 2020. 10. 14. 성과급으로 3,999,963원을 각 지급받았다. 재판부는 "이렇듯 A가 사망하기 전 4개월 동안 성과급이 급증한 추이에 비추어 볼 때, 비록 해당 기간 주식시장이 호황이었음을 감안하더라도, A가 수행한 업무의 양 역시 크게 증가하였을 것으로 추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A는 고객을 관리하면서 주식 권유, 매매 시점 등에 관해 상담하는 업무를 수행하였는데, 영업 실적에 따라 지점의 수익금과 A의 성과급이 결정되는 구조로 인한 실적에 대한 부담과 압박감, 영업 활동의 특성상 고객과의 응대나 그 준비가 근무시간에 한정되는 것이 아닌 점, 2020년 상반기의 저조한 실적, 거래 결과가 좋지 않을 경우 언제든지 고객으로부터 항의와 비난을 받을 수 있는 상황, A가 원고들(처와 만 10세의 아들)을 부양하고 있는 가장으로서 점차 증가하고 있는 가정생활비용을 조달해야 하는 처지였던 점은 총체적으로 A의 업무상 스트레스를 가중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며 "이는 A가 이 사건 상병이 발병하여 병원에 입원한 이후에도 고객들에게 전화를 걸고 주식 매수와 관련된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등으로 업무를 지속하였던 점에 비추어 보더라도 넉넉히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와 법원 감정의는 A의 근무시간이 고용노동부 고시에서 정한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점에 근거하여 A에게 상병의 발병 및 악화에 영향을 줄 만한 과로가 없었다는 판단을 하였으나, 고용노동부 고시는 행정규칙으로서 대외적으로 국민과 법원을 구속하는 효력은 없고, 위 고시에서 정하고 있는 업무시간에 관한 기준은 업무상 과로 여부를 판단하는 데에서 하나의 고려요소일 뿐 절대적인 판단 기준은 될 수 없다(대법원 2020. 12. 24. 선고 2020두39297 판결 참조)"며 "오히려 앞서 본 사정들에 비추어 보면, A가 상병의 발병 전 심한 정도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으며 상당한 양의 업무를 수행해 온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