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배] 아파트 화재로 2명 사망했으나 화재경보장치 미작동…화재경보기 관리업체 · 경비원에 40% 책임 인정
[손배] 아파트 화재로 2명 사망했으나 화재경보장치 미작동…화재경보기 관리업체 · 경비원에 40% 책임 인정
  • 기사출고 2022.09.07 12:0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고법] "지구경종 꺼놓도록 지시, 경비원은 오작동으로 판단해 주경종 정지시켜"

2018. 8. 10. 03:26경 A씨 가족이 아파트에서 잠을 자고 있던 중 거실에 있던 에어컨과 발코니 사이에서 발생한 화염이 에어컨 주변에 있던 커튼, 요가 매트 등 주변 물건으로 연소되어 화재가 발생했다. A씨 가족의 아파트(면적 약 85㎡)가 있는 B동의 경비를 담당하는 31경비초소 화재수신반(화재정보를 수신하고 화재경보를 제어하는 기계장치)의 주경종이 울리고 화재가 감지된 곳이 'B동 1층 2계단 소화전'이라고 표시되었으나, 야간근무를 하던 31경비초소의 경비원 2명은 위와 같이 주경종이 울리자 이를 오작동으로 판단해 주경종을 정지시켰다. 한편 그 당시 31경비초소 화재수신반은 (각 동의 복도에 설치된) 지구경종이 울리지 않고 화재경보방송이 송출되지 않도록 모두 꺼짐(OFF) 상태로 되어 있었다. 각 세대 호실 또는 각 동의 복도에 설치된 화재감지기를 통해 화재가 감지되면, 해당 위치와 연결된 경비초소 화재수신반의 주경종이 울리면서 모니터에 화재발생 장소가 표시되고, 이와 동시에 각 동의 복도에 설치된 지구경종이 울리며, 각 세대 호실로 화재경보방송이 송출되도록 되어 있었으나, 이러한 화재경보장치가 작동되지 않은 것이다. 이 아파트는 방재실과 4개의 경비초소에 각 화재수신반이 설치되어 있고, 각 동의 복도와 각 세대 호실에 화재감지기가 설치되어 있다. 또 경비초소의 화재수신반은 주경종, 지구경종, 화재경보방송을 제어할 수 있다.

A씨는 방에서 잠을 자다가 부모의 비명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 화재가 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방안에서 휴대전화로 119에 화재 신고를 한 후 발코니 측으로 나 있는 창문을 열고 집 밖으로 나갔다. A씨는 31경비초소로 달려가 그곳에 있던 경비원 2명에게 화재 발생 사실을 알렸고, 신고를 받고 소방서 구조대가 출동해 집안에 있던 A씨 가족 3명을 구출했으나, 2명(42세 여성, 15세 남성)이 숨지고 나머지 1명과 A씨도 화상 등을 입었다. 이에 A씨 등 2명이 손해를 배상하라며 화재 발생 당시 아파트 화재경보기의 유지 · 관리 등 업무를 담당한 C사와 아파트 경비원 2명, 이들의 사용자인 D사 등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이 소송의 항소심(2020나2039854)을 맡은 서울고법 민사4부(재판장 이광만 부장판사)는 7월 21일 도어락 제조사를 제외한 피고들의 책임을 40% 인정, "피고들은 연대하여 원고들에게 5억 4,0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화재나 수재 등으로 인한 인명피해가 빈발하는 가운데 화재경보기 업체, 경비원 등의 책임을 인정한 의미 있는 판결이다.

재판부는 화재경보기의 유지 · 관리업체인 C사에 대해, "이 사건 화재 당시 C 소속 직원들의 업무상 과실에 의한 위법행위가 있었고, 그러한 위법행위와 원고들 가족에 대한 신체적 · 재산적 손해의 발생 또는 확대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존재한다고 할 것이므로, C는 불법행위자들의 사용자로서 원고들에 대하여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다"고 밝혔다. 재판부에 따르면, 이 아파트는 각 세대 호실 또는 각 동의 복도에 설치된 화재감지기를 통해 화재가 감지되면 각 동의 복도에 설치된 지구경종이 울리며, 각 세대 호실로 화재 경보방송이 송출되도록 소방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그런데 C사 방재대리는 이 아파트의 경비원들에게 '화재감지기가 노후화되어 오작동이 많으므로 평소에는 화재수신반의 지구경종과 화재경보방송설비의 기본설정을 꺼짐(OFF) 상태로 해놓으라'는 취지로 지시했고, C사 소속 다른 방재업무 담당 직원들도 이 방재대리의 지시에 따르거나 이를 묵인했다. 이 사건 화재 당시에도 화재수신반의 지구경종과 화재경보발송설비의 기본설정은 꺼짐(OFF) 상태였고, 이에 따라 A씨 가족의 집에 설치된 화재감지기가 화재를 감지해 31경비초소 화재수신반의 주경종이 울렸을 때도 그와 동시에 울려야 할 지구경종이 울리지 않았다. 화재경보방송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경비원 2명과 D사에 대해서도, "화재 당시 경비원 2명의 업무상 과실에 의한 위법행위가 있었고, 그러한 위법행위와 원고들 가족에 대한 신체적 · 재산적 손해의 발생 또는 확대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존재한다고 할 것"이라며 "경비원 2명은 공동불법행위자로서, D사는 경비원 2명의 사용자로서 원고들에 대하여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당시 31경비초소에서 근무하던 경비원 2명은 31경비초소 화재수신반의 주경종이 울리는 것을 들었고 화재가 감지된 곳이 'B동 1층 2계단 소화전'이라고 표시된 것을 보았으므로, B동 1층 2계단 쪽으로 가서 불꽃, 연기 등이 있는지 육안으로 보고 원고 주거 등의 초인종을 눌러 주민들에게 묻는 방법 등으로 화재발생 여부를 직접 확인한 후 화재가 발생하였음을 알게 되었다면 즉시 119 화재발생신고를 하고 화재경보방송을 하는 등 조치를 취하였어야 할 업무상 주의의무가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며 "그러나 피고 두 사람은 위와 같은 주의의무를 위반하여, B동 1층 2계단 부근으로 가서 화재발생 여부를 직접 확인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채, 만연히 화재 수신반의 작동오류로 주경종이 울렸다고만 판단하고 주경종이 더 이상 울리지 않도록 소리를 꺼버리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는 위법행위를 하였다"고 밝혔다.

이어 "31경비초소 화재수신반의 주경종이 울린 시각은 03:26:10이고 A가 119 신고를 한 시각은 그로부터 5분 이상 경과한 03:31:29인 사실, 일산화탄소는 불완전 연소 단계인 화재 발생 초기에 주로 발생하는데, 대기 중에 1% 정도의 일산화탄소가 존재하는 경우 2~3분 내에 혈중 COHb 농도가 50% 이상이 될 수 있고 사망할 가능성이 높아지는바, 만약 경비원 2명이 주경종이 울리는 것을 듣고 화재발생 여부를 확인한 후 필요한 조치를 취하였더라면, 원고들 가족이 일찍 잠에서 깨었거나 경비원 2명 또는 원고들 가족이나 이웃 주민들에 의하여 좀더 일찍 화재발생 신고가 이루어짐으로써 적어도 2~3분 정도 일찍 원고들 가족의 탈출 또는 구조 및 화재의 진화가 이루어졌을 것이고, 탈출 또는 구조 및 진화에 있어 화재 최초 발생시점에 근접한 2~3분의 시간만으로 원고들 가족의 신체적 · 재산적 손해 발생의 여부 또는 발생정도가 상당히 달라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다만, ▲화재가 최초로 발생한 에어컨 주변에 먼지, 낙엽, 요가매트, 커텐 등 연소가 용이한 가연물이 많아 화재가 단시간에 급속도로 확대된 것으로 보이는 점, ▲원고들 가족으로서도 화재발생시 국민행동요령 등 대응방법을 숙지하여 유독가스를 흡입하지 않도록 물에 적신 담요나 수건 등으로 몸과 얼굴을 감싸는 등의 조치를 취하였어야 할 것인데, 숨진 1명은 화재 발생 사실을 알고 위와 같은 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채 곧바로 안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간 것으로 보이는 점, ▲C의 직원들과 경비원 2명의 업무상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가 존재하지 아니하여 원고들 가족의 탈출 또는 구조 및 화재의 진화가 보다 신속하게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화재가 발생하여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었던 이상 원고들 가족에게 어느 정도 신체적 · 재산적 손해가 발생하였을 개연성이 높은 점 등을 종합, 피고들의 책임을 40%로 제한했다. 재판부는 화재가 발생한 에어컨이 원고들 가족이 이 아파트로 이사오기 전인 2008년경부터 사용하던 것으로, 원고들 가족이 이사오면서 개인설치업자에게 에어컨을 설치하도록 하였는데, 실내기와 실외기의 전선을 꼬임 접속 방식으로 연결하였고, 2017년 여름철 에어컨 화재의 약 80%는 전선을 손으로 꼬아 접속하는 꼬임 접속부에서 발생하였는데, 이 사건 화재 역시 에어컨 실내기와 실외기 전선을 연결하는 꼬임 접속부의 전기적 단락에 의하여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점도 과실상계의 한 요소로 참작했다.

◇도어락 제조사의 책임 여부=원고들은 화재 당시 도어락 주변의 온도가 60℃ 이상이었으므로, 도어락의 고온경보 안전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였다면 내부 온도센서에 고온이 감지되어 경보음이 발생하고 자동으로 잠금장치가 해제되었을 것인데, 당시 도어락의 고온경보 안전시스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아니하여 현관문이 자동으로 개방되지 아니하였다는 등의 주장을 하며 도어락 제조사에 제조물책임에 따른 손해배상도 청구했으나, 재판부는 "원고들 가족이 도어락을 정상적인 용법에 따라 사용하였음에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음을 인정하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결과에 의하면, 새 건건지를 사용하여 원고 아파트의 도어락의 작동검사를 한 결과 약 63℃의 온도에서 열림 동작이 확인되었다"고 전제하고, "화재의 최초 발화지점으로부터 도어락까지 사이의 거리, 화재 당시 상황,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결과 등을 종합하면, 화재 당시 도어락의 고온경보 안전시스템이 작동하지 아니한 것은 구조대가 현관문을 강제개방하기 전까지 도어락에 전달된 열이 고온경보 안전시스템의 작동기준인 약 60℃에 이르지 못하였기 때문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소방서 구조대가 도착해 현관문을 강제개방하자 현관문에 기대어 앉아 있던 것으로 보이는, 숨진 피해자 중 한 명이 바로 쓰러졌고, 현관문에는 이 피해자가 문을 개방하기 위하여 노력한 흔적으로 보이는 손자국이 발견되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