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절반, "신변 위협 받은 적 있다"
변호사 절반, "신변 위협 받은 적 있다"
  • 기사출고 2022.06.29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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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변협 실태조사 결과 발표…사법 불신 해소 시급

"밤길 조심해라", "가만두지 않겠다".  

용의자를 포함해 모두 7명이 숨진 대구 변호사 사무실 방화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변호사에 대한 신변 위협이 심각한 상황이다. 대한변협이 6월 15일부터 약 2주간 전국의 변호사들을 상대로 긴급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절반 가까운(48%) 변호사가 의뢰인, 소송 상대방 또는 법원과 검찰을 제외한 단체 등 제3자로부터 신변을 위협받은 일이 있다고 답했으며, 위협의 내용도 방화, 살인 고지, 폭력 등의 위해 협박과 폭행 등 직접적 · 물리적 행사가 시도되는 등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변협에 따르면, 이번 설문조사에 1,749명의 변호사가 참여했다.

◇변호사에 대한 신변 위협의 주체
◇변호사에 대한 신변 위협의 주체

신변 위협을 한 사람은 의뢰인(266건, 33%)보다도 소송 상대방이 309건, 38%로 가장 많았다. 또 신변 위협 행위는 폭언, 욕설 등 언어 폭력(448건, 45%)이 가장 많은데 이어 과도한 연락 등 스토킹 행위(143건, 15%), 방화, 살인 고지, 폭력 등 위해 협박(139건, 14%)의 순으로 조사되었다. 복수 선택이 가능한 조사에서 자해, 자살 등을 암시하는 위협도 84건(9%)이 회신되었다.

변호사들은 응답자의 72%가 변호사 등에 대한 신변 위협 행위가 심각하다고 답했다. 그러나 신변 위협 행위를 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수사기관에 신고하는 등 적극적인 대응을 취했다는 변호사는 14%에 불과했다. 반대로 앞으로 업무와 관련하여 신변을 위협받을 경우 적극적인 대응을 할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엔 84%가 '예'라고 답했다. 변호사들은 '변호사 등에 대한 신변 위협 행위가 앞으로 더욱 심각해 질 것으로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90%가 '예'라고 대답했다.

또 사무실에 안전을 위한 방호 · 방범 시설이 설치되어 있다는 변호사도 28%에 불과하고, 72%는 무방비 상태인 것으로 조사됐다. 변호사들이 설치한 방호 · 방범 시설은 CCTV 설치(230건, 35%)가 가장 많고, 그다음이 캡스 등 사설경비업체 및 경비원(195건, 30%), 건물 경비원 상주(193건, 29%) 등의 순서로 나타났다.

변호사들은 대한변협이 추진 중인 방호 장구 공동구매와 관련, 분사형(스프레이식) 가스분사기(427건, 38%)를 가장 많이 공동구매하고 싶은 방호 장구로 꼽았다.

◇이종엽 대한변협 회장이 6월 28일 대구 법률사무소 방화 테러사건과 관련해 실시한 변호사 신변 위협사례 실태조사 결과를 공개하고, 대책 마련 등에 관한 기자회견문을 발표하고 있다.
◇이종엽 대한변협 회장이 6월 28일 대구 법률사무소 방화 테러사건과 관련해 실시한 변호사 신변 위협사례 실태조사 결과를 공개하고, 대책 마련 등에 관한 기자회견문을 발표하고 있다.

이종엽 대한변협 회장은 6월 28일 이같은 내용의 변호사 신변 위협사례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법률사무소 종사자 대상 정기적 안전교육 실시 ▲방범 · 경비 업체와의 업무제휴 등의 계획과 함께 경찰청 등과 협조하여 구체적인 신변안전 확보를 위한 실효적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또 "금번 실시된 신변 위협 사례 설문조사에서 법률사무소 종사자 상대 범죄의 근본적 원인이 무엇인지와 관련하여 의미 있는 사실이 확인되었는데, 바로 신변 위협 사례 중 49%가 사건의 상대방측(소송 상대방 또는 소송 상대방의 가족 ‧ 친지 등 지인)으로부터 받은 위해라는 점"이라며 "이에 대해 좀 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겠으나, 법률사무소 종사자 등 법조인들을 향한 범죄의 동기에 변호사의 역할에 대한 오해, 재판 등 사법에 대한 불신이 자리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6월 9일 대구 법률사무소 방화테러 사건도 소송 사건의 상대방 당사자가 저지른 범행이었다.

디스커버리 제도 등 공론화 필요 

이 회장은 "사법 불신 해소를 위한 과제로 과거 70년 이상 유지되어 온 지금의 소송 및 재판제도를 소송당사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제도로 개혁하는 방안을 공론화하여 함께 논의하고 고민하여야 할 시점"이라며 "재판 전 양측 당사자들이 가진 증거를 상호 공개하여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확인하는 미국식 '디스커버리(증거개시 제도)' 등이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엔 이석화 대구지방변호사회 회장도 참석했다. 이석화 회장은 "이번 사건은 가해자의 분노감과 충동성의 결과라고 하지만, 근본적으로 변호사제도와 법치주의를 부정하는 사법 테러라는 점과 법원 판결을 신뢰하지 못하는 사법 불신에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며 "이러한 사법 불신의 풍토는 법조계가 자초한 면도 분명히 있다"고 말해 주목을 끌었다. 그는 또 "정치권의 잘못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며 "대법원판결이 확정되어도 판결을 부정하고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거나 정치보복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피해자인 양 행세하는 정치인들의 태도가 전 국민에게 영향을 주고, 잘못된 사회풍토를 만들어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음은 이번 설문조사에 회신된 변호사 신변 위협 사례 중 일부를 추린 것이다.

▲법원에서 고성으로 "저 변호사는 거짓말을 한다. 거짓말로 불쌍한 사람 죽게 만든다. 우리 죽으라는 거다"는 내용의 폭언
▲법정 안에서 소송상대방의 가족으로부터 "돈 주면 무슨 사건이든 변호하냐"는 내용의 폭언
▲"인간쓰레기로 분류하여 소각처리 해야 할 것" 등의 폭언을 회사 팩스로 발송
▲수감자가 "출소 후 찾아가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내용으로 협박한 사례
▲상담료, 성공보수, 소송과정 또는 소송결과에 불만을 품고 칼, 엽총 등 흉기를 들고 사무소로 찾아오거나 "죽여버리겠다"는 내용의 직 · 간접적인 협박을 당한 사례
▲당사자 등으로부터 피가 묻어있는 협박 편지, 사진 등으로 보복을 하겠다는 협박

▲상대방으로부터 "사람을 시켜서 죽이려고 중국인 알아보고 다녔다"는 등 청부살인 협박
▲상대방이 직접 112에 전화하여 "재판 가서 염산을 뿌려버리겠다"는 내용의 협박
▲사람을 동원하여 법원, 법률사무소 등에서 위력을 행사하며 협박
▲소송상대방이 소송과정 또는 소송결과에 불만을 품고 전화 또는 직접 법률사무소에 찾아와 "찾아가서 불을 질러버리겠다"는 취지로 협박한 사례
▲이번 대구 방화 테러 사건을 언급하며, 변호사에게 위해를 가할 것처럼 협박한 사례
▲위임사무를 모두 완료하였음에도 수임료 반환을 요구하며 반환하지 않으면 자살 또는 살해하겠다는 내용의 협박을 당한 사례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았다며 수임료 반환을 요구하는 의뢰인으로부터 반환하지 않으면 1인 시위를 하거나 사무소에 찾아가겠다는 내용의 문자 협박을 당한 사례
▲블로그,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유튜브 등 SNS로 변호사의 신상을 조사하여, 변호사 또는 변호사의 가족, 지인 등에게 위해를 가할 것처럼 협박한 사례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 의뢰인 또는 소송상대방이 변호사의 거주지 또는 법률사무소의 소재지를 묻고, 직접 찾아가 해악을 입힐 것을 암시한 사례
▲사건 종결 후에도 사무실을 이동할 때마다 알아내어 연락하고, 선물인 척 물건을 보내어 재직사실을 확인하는 등의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한 사례
▲의뢰인이 새벽마다 문자를 보내고, 회사 앞에 찾아와 몰래 집으로 따라오는 등의 스토킹을 당한 사례
▲국선변호인 사임요청에 불만을 가진 피고인이 고소, 협회 진정, 인터넷 게시 등의 협박을 하고, 법률사무소에 수차례 전화하여 직원과 타 변호사에게 신상정보를 캐내는 듯한 행동을 하는 등 스토킹에 준하는 신변 위협을 당한 사례
▲소송상대방이 법정에서부터 주차장까지 따라 나와 변호사가 탄 차량의 뒷좌석에 침입하여 고성을 지르며 내리지 않아 신변의 위협을 느낀 사례
▲의뢰인을 방어하다가 소송상대방으로부터 삿대질이나 어깨 밀침, 멱살잡이 등 직접적인 폭행을 당함
▲상담 또는 소송 진행 과정에 불만은 품은 의뢰인 등으로부터 서류 던지기, 주먹질, 목조름 등을 당함
▲사건 상대방이 술 또는 약에 취한 채로 사무실에 약 10회 정도 찾아와 난동을 부려 경찰에 신고하였고, 결국 사임하게 된 사례
▲상대방으로부터 "소송결과에 따라 자살하겠다, 죽으면 변호사 탓이다"라는 내용의 자살 암시
▲의뢰인이 "패소하면 사무실에 불을 지르고 나도 분신자살하겠다"는 발언 및 우편을 송부한 사례
▲의뢰인이 "패소하면 여기서 자살하겠다"며 사시미 칼을 소지하고 사무실을 내방한 사례
▲'직권남용', '사기' 등으로 의뢰인 또는 상대방으로부터 형사고소를 당한 사례
▲업무수행에 불만을 품고 SNS에 변호사의 얼굴과 이름을 공개하여 비방글을 올리겠다거나 방송에 제보하겠다고 협박한 사례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