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소개] 박형남 판사의 《법정에서 못다 한 이야기》
[신간소개] 박형남 판사의 《법정에서 못다 한 이야기》
  • 기사출고 2021.11.23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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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고 삼가는 일이야말로 형사재판의 근본이다"

서울고법의 박형남 부장판사는 법정에서 소송 당사자의 말을 경청하고 분쟁 이면에 존재하는 원인을 헤아리는 재판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법관 중 한 명이다. 박 판사는 2013년 자살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달라는 소송에서, 유가족, 직장 동료에 대한 면접과 주변 조사 등 심층 분석을 통해 자살의 원인을 규명하는 '심리적 부검'을 사법사상 처음 실시하고 업무상 재해로 인정했다. 법조경력 37년의 현직 법관인 그가 한국 사법의 현실을 들여다보는 단행본 《법정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출간했다. 책의 부제도 "판사에게는 당연하지만 시민에게는 낯선 법의 진심"이다.

"삼가고 삼가는 일이야말로 형사재판의 근본이다", "무거운 죄를 저질렀다고 꼭 구속되는 것은 아니다"란 제목을 붙인 형사재판에 관한 내용을 발췌해 소개한다.

◇박형남 판사의 《법정에서 못다 한 이야기》
◇박형남 판사의 《법정에서 못다 한 이야기》

-사회규제의 최후 수단이어야 할 형벌은 어떤 상황에서나 사용되는 마스터키가 되었다(형벌 만능주의). 문제가 터지면 정치권은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보다 처벌 조항을 신설하거나 법정형을 올리는 손쉬운 방법에 흔히 의존했다(입법 만능주의, 중형주의). 하지만 법조문상 처벌 대상은 넓지만 실제 처벌은 선별적으로 집행되면서, 시민의 준법정신은 약화되고 법의 실효성은 의심받으며 범죄 예방과 억제 기능은 사라진다.

-형사재판에서 법원의 판단은 유죄 아니면 무죄뿐이다. 법리적으로 무죄를 선고하면 '국가 형벌권을 동원할 사안이 아님'을 선언한 것이지만, 사람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음'으로 받아들이고 문제 해결을 위한 추가적인 노력을 하지 않는다. 법원이 유죄를 선고하면 사람들은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착각하고, 국가는 자기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하면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데 소홀할 수 있다.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는 사건일수록 시민은 편을 나누어 구속 여부로 사법적 정의를 판단한다. 검사는 엄벌에 처하라는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지금도 영장을 청구해서 구속하는 것을 수사 성패의 기준으로 삼는다. 그러나 영장이 발부되었다고 다 유죄로 선고되는 것이 아니고, 영장이 기각되었다고 처벌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수사 기관이 본래 의도한 사건(본건)을 수사하기 위해 다른 사건(별건)을 이유로 구속하는 '별건 구속'은 본건 사실에 대한 자백을 강요하는 것으로 부당하다. 검사는 영장을 청구할 때 범죄 사실을 언론을 통해 기정사실화하고, 이 때문인지 시민은 정작 법원의 공판에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어느 영화에서 나온 대사처럼 '무엇이 중한디' 되돌아볼 때, '개 꼬리가 몸통을 흔들어대는' 후진국형 본말전도의 형사재판은 이제 끝내야 한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