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과 국제경쟁력
로스쿨과 국제경쟁력
  • 기사출고 2007.08.03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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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재천 교수]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는 2002년 개교한 한동대 로스쿨의 초대 교학실장으로서 미국식 로스쿨을 한국에 정착시키는 데 힘을 보태 왔다. 물론 한동대 로스쿨은 미국 변호사가 미국법을 가르쳐 미국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게 하는 미국식 로스쿨이지만,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고자 노력해 온 지난 5년간의 경험이 한국 로스쿨의 나아갈 방향에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이 글을 쓴다.

◇원재천 교수
초기에는 과연 토종 한국인을 대상으로 영어로만 공부시켜, 미국 변호사로 양성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있었지만, 한동 로스쿨은 현재까지 1~3기의 졸업생의 50% 정도(30여 명 이상)를 미국 변호사로 키워냈고, 졸업생들은 이미, 미국 법원, 국내외 로펌과 기업, NGO, 정부기관 등으로 진출하고 있다. 몇 사람이 꿈을 가지고 시작한 실험이 어느새 현실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성공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첫째, 학벌을 파괴한, 합리적이면서도 파격적인 입학 정책이다. 우리 로스쿨은 초기부터 영어를 비롯한 어느 정도의 수학능력이 검증되면, 학벌과 관계 없이 학생들을 선발했다. 그들의 인생경험, 리더십 역량, 법률가로서 앞으로 사회공헌에 대한 의지를 보고, 수험생 전원을 개인적으로 인터뷰하면서 선발한 것이다. 서울에서 좋은 학교 나오고 외국 기업에 근무했던 사람은 떨어지고,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방은행에서 근무하면서 방송대학교를 나온 학생은 합격이 된 적도 있었다. 학생의 85% 이상이 법학 비전공자로서 그 중에는 공대출신 연구원, 디자이너, 피아노, 발레 전공자도 있었다. 외국 출신 학생들도 20% 정도를 뽑았는데,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서로 격려하고 도전하며 약 일 년 반을 함께 공부하고 나면 누구나 제법 '리걸 마인드'를 가진 예비 법률가로 변화되었다. 참고로, 방송대 출신 학생은 당당히 미국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여 현재 지금 미국실무연수를 준비하고 있다. 로스쿨의 입학 과정은 공평하면서도, 동시에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의 기회를 주는 인생역전의 과정이 되어야 한다.

둘째, 독특한 로스쿨 교과 과정이다. 우리 로스쿨은 미국 변호사 시험을 목표로 하고 있기에, 민법, 형법,헌법, 재산법 등 미국 로스쿨의 기본 과목을 커리큘럼의 기본 틀로 하고 있지만, 거의 반 정도의 나머지 학점을 다음과 같이 다양하게 배분하고 있다. 1) 거시적으로 법을 이해할 수 있는, 법철학, 법 역사 같은 perspective와 jurisprudence 과목들을 필수로 하고, 2) 재판실무, 협상실무, 중재조정실무, 국제 계약서 작성 등 실무과정을 운영하고 있으며, 3) 국제 공법과 사법 등 국제법을 필수로 하여 졸업생이 국제인권과 난민법 분야에서 일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고, 4) 중국법 등 비교법을 가르치며, 5) 다양한 교환학생 프로그램과 국내외 인턴십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협상, 지적재산, 국제조정, 국제공법, 헌법 등 5개가 넘는 국제모의 재판에도 참가하고 있는데, 자체 경선을 통해 학생들의 전 학생의 20% 정도가 참여하게 된다. 결국 졸업 학점이 105학점이나 되는데, 미국 과정에 덧붙여 학생들의 국제경쟁력을 겸비시키려 하다 보니, 미국 로스쿨보다도 20여 학점이 많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2년 차까지는 여름학기도 정규 학기로 운영이 된다. 그만큼 교수들의 업무량이 많아지게 되고, 강의뿐만 아니라 국제 모의재판 지도 등으로 인해 방학을 다 보내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셋째, 로스쿨은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춘 인재 양성소가 되어야 하며, Global Standard를 충족시켜야 한다. 올 초에 사법연수원에서 미국 형사법 특강을 한 적이 있는데, 미국 형소법의 가장 중요한 이론 중의 하나인 미란다 원칙을 강의하면서, 그 원칙을 탄생 시킨 "Miranda v. Arizona"라는 판례를 설명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판례를 원문으로 읽어 본 연수생들은 거의 없었다. 지금까지 영문으로 된 판례를 한 건도 읽지 않고, 국제 계약서를 한 번도 안 보아도 한국에서 법률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각종 국제 협상과 분쟁에서, 우리나라 법률가들이 어느 정도 역할을 하고 있는지 검토해 볼 때가 된 것 같다.

아울러 우리가 하나의 모델로 보고 있는 일본 로스쿨 제도의 근본적인 문제도 지적하고 싶다. 그들의 교과 과목 편성표를 보면 국제 경쟁력의 증거를 찾을 수 없다. 현재 일본 로스쿨의 교과 과목에서 영미법, 국제계약법 등의 국제실무 과목의 수는 2~3개에 불과하며 그나마도 선택과목이며 강의도 일본어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일본은 앞으로 훌륭한 일본형 변호사를 배출할지는 몰라도, 일본 경제력을 지켜 줄 국제경쟁력을 가진 법률가는 양성하기 어려운 것이다.

앞으로 한-미 FTA나 한-EU FTA를 통해서 국제 업무를 제대로 처리할 수 있는 법률가의 필요는 더욱 절실하다. 한국의 로스쿨은 질 좋은 한국형 법률가 양성뿐만 아니라 국제 경쟁력이 있는 국가인재 양성의 요람이 되어야 한다.

한동대학교 국제법률대학원 교수(jwon1938@hotmail.com)

◇대한변협신문에 실린 글을 변협과 필자의 양해아래 전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