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회식 다음날 출근길 과속 운전으로 사망했어도 산재"
[노동] "회식 다음날 출근길 과속 운전으로 사망했어도 산재"
  • 기사출고 2021.06.05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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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행법] "업무와 인과관계 단절 안 돼"

근로자가 회식 다음 날 술이 깨지 않은 상태에서 차를 몰고 출근하던 중 과속 운전으로 사고가 나 숨졌다. 법원은 업무상 재해를 인정했다.

리조트에서 조리사로 근무하던 A씨는 2020년 6월 9일 근무를 마친 후 주방장의 제안으로 함께 저녁식사를 하던 중 협력업체 직원이 합석하여 오후 10시 50분쯤까지 술을 마셨다. A씨는 다음날 승용차를 운전하여 출근하다가 오전 5시 10분쯤 충남 태안군에 있는 제한속도 시속 70km의 편도 3차로 도로의 2차로를 주행하던 중 반대방향 차로 연석, 신호등, 가로수를 연달아 들이받고 19분쯤 지나 도로에 엎드린 채 맥박이 없는 상태로 발견되어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숨졌다. 혈액 감정 결과 A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077%. 수사기관은 당시 A씨의 차량이 제한속도인 시속 70㎞를 크게 웃도는 시속 약 151km로 교차로를 통과하면서 중심을 잃고 미끄러져 사고가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A씨의 사고가 난 6월 9일 근무시간은 오전 5시부터이고, 근무지까지는 거주지에서 약 15.6㎞ 떨어져 있으며, 운전하여 약 20분이 소요된다.

근로복지공단이 A씨의 아버지에게 'A씨는 출근 중 사고로 사망하였으나, 음주와 과속운전에 따른 범죄행위로 사망하여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사유로 유족급여와 장의비 부지급처분을 하자 A씨의 아버지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부지급처분을 취소하라는 소송(2020구합83805)을 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 37조 2항은 "근로자의 고의 · 자해행위나 범죄행위 또는 그것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부상 · 질병 · 장해 또는 사망은 업무상의 재해로 보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서울행정법원 제7부는(재판장 김국현 부장판사)는 5월 13일 "타인의 관여나 과실의 개입 없이 오로지 근로자가 형사책임을 부담하여야 하는 법 위반행위를 하였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산재보험법 37조 2항의 '범죄행위'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 없고 그 위반행위와 업무관련성을 고려하여야 한다"며 "이 사건 사고가 오로지 고인의 과실로 발생하였다고 하여도 출근하는 과정에서 발생하였고, 고인이 일한 주방에서의 지위, 음주 · 과속 운전 경위를 고려할 때 고인의 업무와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가 단절되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고인의 사망은 업무상 재해로 봄이 타당하다"고 판시, "유족급여와 장의비 부지급처분을 취소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채용된 지 약 70일이 지난 조리사인 고인이 주방장과의 모임을 사실상 거절하거나 종료시각 등을 결정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고인은 사고일인 2020. 6. 10. 근무시간이 시작된 05:00경 상급자의 전화를 받고 잠에서 깨어 출발, 고인으로서는 지각시간을 줄여야 했고 이를 위해서 과속을 하였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하고, "사고는 자동차를 이용한 통상적인 출근경로에서 발생한 것으로 자동차를 운전하여 출근하는데 수반하는 위험이 현실화 된 것이고, 사건 전날 음주나 과속이 사고의 우연성을 결여시켰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음주 · 과속 운전에 따른 사고에 관하여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에 따른 징벌에서 나아가 업무상 재해성을 부정하여 산재보험법상의 보험급여를 부정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산재보험법 37조 2항의 '범죄행위'는 법문 상 병렬적으로 규정된 고의 · 자해행위에 준하는 행위로서 산재보험법과 산재보험수급권 제한사유의 입법취지에 따라 업무와 재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단절시키고 재해의 직접 원인이 되는 행위로 해석 · 적용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